"때르릉~" "어... 누구지? 벌써 9시네' 한참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영수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우씨 뭐해? 오늘 약속 있어? 티포인트 어때?" "물때 좋은가요? 지금 가면?" "그래 내가 10시에 픽업 갈께 몸만 나와~" "예 형님 쿨러 챙겨 오시면 황가파라오아 주유소에서 필차드는 제가 살께요"
예정대로 영수형은 10시에 나를 태우러 왔다.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아 황가레이 방향으로 모터웨이를 1시간 남짓 달렸다. 티포인트는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쯤 가는 곳으로 건너편 모래 여울쪽으로 채비를 던지면 팔뚝만한 스내퍼가 곧 잘 나오는 좋은 명당이었다. 베이트로는 역시 필차드가 잘 먹히는 곳이다.
차를 세워 놓고 갯바위까지 5분 남짓 걷다가 손자와 함께 와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구라이마잇"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쾌청한 하늘에 흰구름 떠있는 더할 나위 없는 명당에서 오늘의 조과를 기대하며 낚싯대를 펼쳐 들었다.
"물때는 맞는데 왜 오늘 이렇게 조용하지?" 영수형은 베이트만 뜯기고 자리를 여러 차례 옮기다가 진우에게 한마디 건넸다. "진우야 쟤 뭐냐? 아까부터 우리 주위를 어슬렁 거리네. 자꾸 신경쓰이게 말야" "아 지난 번에도 봤어요. 여기 몇마리 사는 놈들 같은데 오늘은 아예 자릴 잡고 우리 낚시를 구경하고 있네요."
티포인트에는 가마우지가 산다. 뭐 별 다른 일도 아닌 것이다. 산 좋고 물 좋고 스내퍼가 좋으니 가마우지도 살만하겠지. 근데 오늘은 아예 전을 펴고 구경을 나왔다. 관중이 있으니 뭐라도 잡아 올려야 체면이 살 것 같은데 영 신통치 않다.
'신경쓰지 말자.' 하면서 필차드 굵은 놈을 쿨러에서 꺼내 본다. 깔끔하게 잘라서는 먹음직스럽게 바늘에다 끼우고 미늘이 보이나 다시 확인한 후에 건너편 모래 여울 쪽으로 휙~ 힘껏 던졌다.
'낚시는 역시 던질 때 맛이야' 스내퍼가 잘 나오는 날에는 '낚시는 역시 입질 맛이야' 하던 내가 오늘은 던지는 맛으로 버티고 있다.
10분이 채 지났을까? 아까 할아버지와 손자는 손맛 좀 봤을까? 궁금해 하던 찰라, 낚싯대가 휙~ 하고 바다쪽으로 꺾인다.
"진우야 너 입질 왔다. 스내퍼 같아. 큰놈" 딴 생각을 하다 낚싯대를 잡아 채니, 이거 큰놈 맞다. 묵직한게 손맛이 예전에 보던 맛과는 다르다. 줄이 팽~ 소리를 내며 바다쪽으로 풀린다. 물밖에서, 물안에서 서로 잡겠다고, 살겠다고 한판 제대로 붙었다. '스내퍼가 맞을거야 한 50센티는 되겠는데. 아 뜰채... 뜰채가 없다' 뜰채 찾으랴 줄 감으랴 갯바위랑 수초에 안걸리게 당기랴 정신없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진우야 스내퍼다 와 크다..." '흐흐... 드디어 큰 놈 한마리 잡아 보는구나. 어탁을 뜨랴? 아님 오늘 밤에 영수형네 가서 회를 뜨랴? 뭔들 아니 좋을쏘냐?' 놈은 드디어 밝그스레한 이쁜 얼굴을 보여 주었다. 거리가 한 10미터? 지금부터 본격적인 게임이다. 갯바위 쪽으로 가까이 오면 올수록 수초가 많아서 제대로 꺼내기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닷속에 있던 스내퍼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어~어~ 영수형과 나는 눈앞에 벌어지는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가마우지가 5미터 남긴 시점의 스내퍼를 물고 하늘로 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낚싯대를 들고 있고 낚싯줄은 연줄이 되어 하늘로 뻗어 있고 연이 있어야 할, 줄 끝에는 가마우지가, 가마우지 뱃속에는 스내퍼가 들어 있는 것이다.
뜰채를 찾아 들고선 내 옆에서 스내퍼를 퍼내려고 폼을 잡던 영수형은 잠자리채 마냥 뜰채를 허공으로 젓고있다.
'그래 도랑치고 가재 잡는데 스내퍼도 잡고 가마우지도 잡아 보자' 생각보다 덩치가 큰 가마우지와 생각지도 않던 고투를 5분 여, 결국 나는 낚싯줄을 다 릴에다 감았고 가마우지는 잠자리채, 아니 뜰채에 잡혔다.
"야 이놈아 가로챌 게 따로 있지 티포인트 스내퍼를 가로채? 뱉어~!!" 근데 웬걸? 이놈 벌써 꿀꺽 했다. 낚싯줄을 세게 당겨도 목으로 넘어간 낚싯줄은 빠지지를 않고 입 안으로 삼킨 스내퍼는 비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 10분을 가마우지란 놈에게 설득과 회유, 협박과 폭행을 가했지만 놈은 '뭔일 있슈? 이왕 삼킨 스내퍼 어쩌란 말이냐' 능청을 떨고 있다. 중국 꾸이린에 가마우지 낚시가 있다는 얘긴 들어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첨이다.
결국 우리는 토착민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근데 스내퍼랑 바늘은 포기한다 치고 낚싯줄은 어떡하지? 둘은 상의 끝에 낚싯줄을 끊기로 하고 놈을 보내 주었다.
그날 이후 티포인트에는 입에 낚싯줄을 물고 다니는 가마우지가 한마리 살고 있다고 한다. 이놈 아직도 살아 있나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