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일찍이 노자께서 말씀하셨더군요. 이렇듯 쏘다니며 미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만,<?xml:namespace prefix = o />
풀밭에 나가 ‘버디’를 낚으려 저 처럼 미쳐 돌아다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 때가 불러내면 따라나가는 강태공들도 있습니다. 집에 들어서면 버디를 몇 마리 낚았냐고 반기는 식구들은 거의 없지만 서도, 골퍼는 어둑어둑 날 저물면 집으로들 들어는 가지요. 종이쪼가리에 대문짝만하게 ‘버디’를 새겨 들이밀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강태공들의 처지는 다르더군요. 강변,해변,노숙을 하든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식구들 모두가 기다리며 수확을 궁금해 합니다. 냉동고에 그 동안 잡아다 얼쿠어 놓은 생선의 효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쪽 모두에 반은 미쳐(?)있는 ‘정태공’을 따라 나섰습니다.
고긴지 풀 뿌린지는 몰라도 엄청 힘쓰며 잡아 댕기는 외약잡이 몸놀림이 예술입니다.
허나, 저렇게 뒤로 뻐팅기다가 줄이라도 끊어지는 날에는 1.5kg 머리가 먼저 돌팍을 내디딜 텐데, 뇌껍닥을 보호 할만한 센서라도 모자에 매달아 뒀는지 걱정이 듭니다.
봄, 여름의 때를 택하고, 사람이 부리는 가축과 너무 작아 고기 한 점 되지 못하는 것을 택해서 죽이지 않는다는, 세속의 선계 ’살생유택’을 아는지 모르는지 각시가 물 속을 뒤적거리며 밤송이(?)를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속에 한 점도 안 되는 누런 것을 긁어내 라면 끓는 국물에다 풀어제끼니 독특한 맛은 있었습니다만….
몸부림치며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눈, 그리고 뭔가 애원하는 입 모양을 끝내 외면 해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섰습니다. 결국 무자비한 사람의 식욕에 사지가 거덜나고 말았지요.
뭍 구경에 정신이 팔려 집으로 돌아 갈 시간을 놓쳤나 봅니다. 일진이 사납게도 천지간에 제일 무서운 사람에게 들켜버렸으니 바위틈으로 기어들어가 빨판으로 죽기살기로 들러붙었겠지요. 웬만하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지만 너무 강적을 만났습니다. 소녀시절 시골에서 머리끄댕이 움켜쥐고 싸우던 가락이 있으셨는지, 아줌니는 손이 절단 나드락 낙지다리를 휘어 감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역시 시골에서 낫으로 소꼴을 베던 가락으로 밖간 양반이 함께 댐벼드니 낙지다리가 절단 나며 상황이 끝나버렸습니다.
뜨거운 물에다 행주 삶듯 정궜다 뺐다를 너 댓 번 했더니 토실토실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 모두의 체험이 정형네 덕분이었습니다.
9000dong.
*씁쓸한 뒷맛,
강 하구에서 낚시 하던 중, 다른 배들은 엔진소리를 낮추고 서행하며 비껴가는데, 고약한 보트는 고래고래 화를 내며 담뱃불로 낚싯줄을 끊어버리고 지나가더군요. 또 한 번은 산책하던 키위가 다가와서 마오리들만 잡을 수 있다고 점잖게 일러주고 갔지요.
엄격하고 낯선 규칙, 이들의 고양된 의식과 정서에 우리 식 관념은 자칫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계심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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