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고 자기 조상 4대조 할아버지까지를 다 임금으로 추존(追尊)을 했다. 조상에게 대왕(大王)의 작호를 붙여준 것이다. 옛말에 “이배기근(以培其根)이면 이달기지(以達其枝)라”, 그 뿌리를 잘 북돋아주면 그 가지가 잘 번성한다는 말이 있다. 땅에도 옥토(沃土)가 있고, 박토(<?xml:namespace prefix = daum />薄土)가 있어서 옛날 지리학에서도 좋은 땅에 조상의 백골을 모시면 그 자손이 잘도 되고, 잘못 모시면 그 자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으로 태어난다. 좋은 땅에다 조상을 잘 모시면 그 지리의 음덕을 받아 좋은 자손이 난다는 말이다. 지리학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게 마치 비옥한 땅에서 난 초목은 무성하게 커서 열매도 아주 실하게 여물고, 토박(土薄)한 땅에서 성장한 초목은 제대로 키도 못 크고 열매도 시원찮게 여무는 이치와 같다. 자손이 묘를 잘못 쓴다든지 하면 자손이 잘못될 수도 있다. 조상 묘자리의 영향이 지대한 것이다. 좋은 자리에 묘를 써서 명당 기운을 받아서 나온 사람은 가효국충(家孝國忠)을 한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국가에는 충성하고, 혈 기운을 받아 생겨난 사람은 다 착한 사람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이라는 글을 남겼던 남사고(南師古, 1509년 ~ 1571년)선생이 지리(地理)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좋은 데다 모시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가 부모 묘를 쓰고 나서 보면 명당이 아니다. 그래 아홉 번을 옮겨 모셨건만 끝내 좋은 곳에다 쓰질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구천통곡(九遷痛哭)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아홉 번 옮기고도 통곡을 했다는 소리다. 그게 천지신명들이 눈을 홀려서 못 보게 만든 것이다. 그 아버지가 악행을 그렇게 많이 했다. 좋은 땅에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들어가게 돼 있다.
지리地理라는 것이 여러 천 년, 만 년 동안 “천장지비(天藏地秘)해서 이대복인(以待福人)이라”,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해서 덕을 많이 쌓은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남에게 잘 하고 손해봐가면서 살아야지,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남의 걸 뺏는다든지, 정책적으로 남을 속인다든지 하면 그런 사람은 후대에 자손이 끊어질 수도 있고, 심하면 자기 자신도 앙화殃禍를 받아 죽을 수 있다.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덕을 쌓은 집은 반드시 남은 경사, 남은 복이 있고’, 즉 좋은 복이 자손에게 물려진다는 말이다. 또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악한 것을 쌓는 집은 남은 악이 있다’, 조상에서 지은 악업이 자손에게 돌아간다는 소리다.
만유의 생명이라는 것은 제 뿌리가 있어서 자신이 있는 것이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 자신, 제 몸뚱이가 있음으로써 하늘도 땅도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사회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이 없을 것 같으면, 부모 형제 처자 모든 게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하늘땅 사이에 가장 소중한 것이 내 몸뚱이다. 그러면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를 낳아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내 부모, 조상이다. 내 조상이 하늘땅 사이에서 가장 소중하다. 부모,조상이 없으면 자신이 어디서 생겨나는가? 부모와 조상은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와 열매의 관계다. 누구도 다 자신의 뿌리, 처음 조상 할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아 손자에게 전하고, 그 손자가 또 아들을 낳아서 증손자에게 전하고, 100대조 할아버지가 99대조, 98대조, 97대조, 96대조 그렇게 해서 내 몸까지 내려왔다.
내 몸은 처음 조상할아버지의 유전인자, 씨다. 내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고, 여러 천 년 전 처음 조상 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유전인자는 바꿀 수가 없다. 제 조상은 제 뿌리다. 바로 제 몸뚱이, 제 생명이다. 천년 전, 만년 전 조상 할아버지가 있어서 전지자손 계계승승해서 유전인자를 자기 몸뚱이까지 전해줘서 자신이 생겨났다.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소중하고 높은 존재가 다 자기의 부모,조상이다. 소중한 제 몸뚱이를 낳아준 사람이 자기 조상이다. 그래서 자기 조상은 하늘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수유지간(須臾之間), 잠시라도 제 뿌리, 제 부모와 조상을 망각한다는 것은 천지를 배반하는 것이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부모와 조상이 있은 연후에 하나님도 있고, 땅님도 있고, 뭣도 다 있는 것이다. 부모와 조상의 은혜를 입어서 내 몸이 생겨났다. 그러니 조상을 잘 섬김으로써 조상의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한다. 그 나머지는 다 조상을 잘 섬긴 연후사(然後事)다. 신앙도 그 다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에게는 각자의 부모와 조상이 참하나님, 옥황상제님보다도 오히려 더 거룩하고, 소중한 분이다. 만일 자기 부모, 조상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을 찾는다면 다 가면이다. 제 부모 조상, 제 뿌리도 망각하는 주제에 누구를 찾겠는가?
옛날에 문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제사를 지내려면 자기 조상을 하나님하고 짝을 해서, 같은 동위同位로 해서 모셨다. 그랬건만 누가 시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문왕의 아버지가 왕계(王季)라고 하는 사람이다. 말 많고 시비 많은 세상에 “어떻게 개인을 옥황상제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제사를 모시느냐?” 하는 시비도 있을 테지만 그건 시비거리가 되들 않는다. 왜냐 하면,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조상이 하나님과 똑같은 존재다. 현실적인 내 몸뚱이를 낳아줬기 때문에 그렇게 소중한 부모, 소중한 조상이다. 사람은 그걸 알아야 한다. 자기 조상이 자신에게는 하나님보다도 더 존귀한, 가장 고맙고 높으신 분이다.
종교문화라 하는 것은 윤리와 도덕, 사회질서를 가르치는 데다. 가르칠 교(敎) 자를 보면 효도 효(孝) 자 옆에다가 글월 문(文)을 했다. 그 글월 문文은 둥글월 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르칠 교(敎) 자는 ‘효도하는 글’이라고 한다. 교敎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 사회질서, 사회정의 등을 가르치는 바로 그 교敎다. 옛날 유가에서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일백 가지 행실의 근본은 효라고 했다. 왜 그러냐 하면 가정에서 효도를 못하는 사람은 절대 국가에 충성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제 뿌리를 망각한 사람이 돼서 아무리 국가에 충성을 하고 싶어도 충성이 되어지질 않는다. 그 사람은 탈선된 사람이다. 가정에 효도하는 사람만이 국가에 충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