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괘에서 시작된 이진법의 원리
서양에서 이진법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역 이론에 이진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체계를 정립시켰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전도사 부베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주역을 배우고 괘상(卦象)을 스스로 연구하였다. 그는 한문으로 쓰여진 주역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동양을 다녀온 신부들의 보고서를 입수하여 주역을 공부하였다. 마침내 1697년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 자신이 구상한 개념을 정리하여 「이진법 정수론 주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주목할 것은 그 역사적인 논문의 부제가 ‘0과 1의 기호를 사용, 고대 동양 태호 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 이라는 것이다. 그 무렵 1701년 부베가 라이프니츠에게 ‘복희 64괘 차서도’와 ‘복희 64괘 방위도’를 보내왔기에 팔괘의 배열이 인류역사상 수학의 ‘이진법’ 원리를 제일 먼저 나타낸 것이라는 발견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1709년에 복희팔괘와 함께 이진수를 나타낸 분석표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주역은 모든 과학의 열쇠이다.”라는 부베 신부의 신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복희팔괘는 세 개의 효(爻)를 이용하여‘건태리진손감간곤’라는 여덟 개의 괘상를 표시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양(1)을 1, 음(0)을 0으로 생각하고 고쳐 쓰게 되는데, 팔괘를 이진수로 나타내면 111, 110, 101, 100, 011, 010, 001, 000과 같다. 이후 부호논리학의 대가가 되면서“나의 불가사의한 이진법의 새로운 발견은 5천여 년 전 고대 동양의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컴퓨터는 0과 1로 ‘계산하는 사람’
18세기 라이프니츠가 세상의 언어 표현을 몇 가지 간단한 기호 속에 모두 담으려는 꿈을 힐베르트, 괴델, 튜링으로 이어지는 수학자들이 실현하려고 애썼고, 그 과정에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38년에 이진법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튜링 기계’를 세상에 소개하면서 현대 디지털 컴퓨터의 추상적인 모델을 제시하게 된다. 또한 튜링은 1943년 12월, 콜로서스(Colossus)라는 세계 최초의 전기로 동작하는 연산 컴퓨터를 만들어 독일군의 무적 암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했다. 이는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미국의 에니악(ENIAC)보다 2년이나 빠른 것이다. 그후 튜링의 아이디어는 1951년 ‘폰 노이만’에 의해 현대 컴퓨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박(EDVAC)이 만들어졌고, 과학자들은 수많은 계산 방식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디지털 컴퓨터의 핵심에 접근하게 된다.
이처럼 음양은 이진법을 낳고 이진법을 응용한 사칙연산 계산기는 컴퓨터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 모든 만물에 수數를 대응시켜서 짝수와 홀수로 분류하여 0과 1로 표시한 것은 주역에서 만물을 음과 양으로 분류시킨 것과 동일하다. 0 이 곧 무극이며 1이 곧 태극이다. 그리고 하나에서 많음으로 많음에서 하나로 귀착시키는 논리의 과정은 전체에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질서가 있음을 보여준다. 태호 복희씨가 상수(象數)와 팔괘(八卦)를 비롯한 주역의 원리로 세상을 크게 밝혀 놓으셨고, 주역을 근간으로 현대문명의 굵직한 주제들인 컴퓨터, 생명공학,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디지털 문명이 융성하게 되었다. 빅뱅 우주론의 거장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이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인 태극,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류문명의 모태가 주역(周易)이다.
인류문명의 아버지, 태호 복희(太昊 伏羲, BCE 3528~ BCE 3413)
복희씨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가?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배달 신시에서 태어나 송화강(추정)에서 팔괘를 그으시고 산동성 어대현(현재 미산현)에 묻히셨다고 하였다.「제왕세기」에 따르면, 복희씨는 ‘구이에서 태어나 성기(成紀)에서 자라고 어대현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신락시에 제곡고신께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세운 최초의 복희묘(墓)’가 있다. 그곳에서 매년 5월 2일부터 5일까지‘복희제의’가 열린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인 태호 복희씨에 대한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이, 이곳에서는 복희씨에 대한 제사는 이미 그들의 생활 일부였고, 인류의 시원문화가 복희씨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자부심이었으며, 그 힘으로 자기네들이 세계를 통일 지배할 수 있다는 역사적 우월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수많은 학자들은 ‘태호 복희씨는 동이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동이족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한족에게 흡수된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에 불과하다.
※ 전 미국 부통령 엘고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며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혁명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발전 기여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19일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
※ 세계적인 석학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독일,1889~1976)는 프랑스를 방문한 서울대 철학과 박종흥 교수에게 내가 당신을 초대한 이유는 당신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명해진 철학사상은 바로 동양의 무(無) 사상인데, 동양학을 공부하던 중, 아시아의 위대한 문명의 발상지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평화적인 정치를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아시아 대륙을 통치한 단군시대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동양사상의 종주국인 한국인을 존경합니다(Martin Heidegger)
※ 수메르 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 같이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썼다. 또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랏이라는 제천단과 한문화의 흔적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들에 뚜렷이 남아있다.(전,한신대교수 김상일,[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
수메르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무수한 점토판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 주인인 인디언이 동북아에서 베링 헤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언어,혈액형, 체질, 치아 모양등의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이미 밝혀진 것으로서 미국인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G. 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선 탄소 측정에 의하면 이것은 약 9천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송호수 교수는 1982년 10월 7일에 현지 조사를 하여 미국 워싱턴 인디언 박물관에는 이외에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와 동일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지적하였다.[(한민족의 뿌리 사상).26쪽) 더욱 놀라운 것은 미 대륙의 인디언이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는 그 모양과 무늬가 한국의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환국의 신석기 토기와 구분 할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1만여년 전 당시에는 베링 헤협이 가교 역할을 하여 이곳을 타고 동방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은 동서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밝(불함)'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장 오래된 개념이라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 한 민족속에 '밝(광명)'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라고 했다.[불함문화론]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을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교일치: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제천의식: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천문학: 인간의 운명이 천체 운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태음력: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요하문명 3 http://www.youtube.com/watch?v=Sr0ML3aaRCQ
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출처: 세계일보 - 2011년7월15일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 2003년 03월 07일
유, 불, 선, 기독교의 뿌리종교 신교(神敎)
1) 유교의 뿌리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하였다. '나는 기술을 한 것이지 창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공자는 누구의 사상을 기술했느냐, 중용 30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 즉 중니(공자)는 요순의 가르침을 기술했으며 문무의 도를 법으로 삼아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요순의 도를 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요임금은 황제헌원의 고손자로서, 황제헌원이 현효를 낳고 현효가 제곡고신을 낳았다. 이 제곡고신의 아들이 바로 요임금이다. 황제헌원은 사기 13권을 보면,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라 해서 동방의 백민에서 출생을 했다고 되어있다. 환단고기에 보면, 황제헌원은 배달국 8대 안부련 환웅 때 이복형인 신농씨와 함께 동이족에서 분파해 오늘날 중화족의 정신적 시조가 된다.
순임금에 대해서는 맹자가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遊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즉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에서 살다 명조에서 죽었으니 동이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나오는 지명인 제풍, 부하, 명조는 모두 동이족의 땅이었다. 서경에 '東巡望秩 肆覲東后'라 해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사지내고 '동방의 임금을 뵈었다'는 구절이 있다. 사근동후(肆覲東后)에서 근(覲)은 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후(東后)는 단군왕검을 말한다. 즉 고조선의 제후 순은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을 보면, "나(공자)는 은(殷)나라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지역의 산동성 일대에서 살던, 흰옷을 입고 백색을 숭상한 은족(殷族)이 전형적인 동방조선족 계열의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중국학자 서량지나 임혜상도 말하고 있다.
2) 불교의 뿌리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으로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만든 불교를 최초의 불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초대 구류손 부처, 2대 구나함모니 부처, 3대 가섭 부처가 있었다. 석가 부처는 네번째 부처이다. 그런데 이 전불(前佛)시대의 유적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다.
◆ <삼국유사: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 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 여기서 일곱 처는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黃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천왕사(天王寺), 담엄사(曇嚴寺)를 가리킨다.
◆ 옥룡집(玉龍集)과 자장전(慈藏傳)과 제가전기(諸家傳記)에 모두 이르기를 "신라의 월성동용궁(月城東龍宮) 남쪽에 가섭불(迦葉佛)의 연좌석(宴坐石)이 있으니 그 곳은 전불시(前佛時)의 절터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본사(本師) 석가불은 제4존불(尊佛)이며 가섭불은 제3존야(第三尊也)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석가불 이전 가섭불(迦葉佛)시대에 이곳이 불국사(佛國寺)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 있다. 하나 더 든다면 화엄경에 바다 건너의 동방나라가 불교의 종주국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화엄경>에 "해중(海中)에 금강산(金剛山)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들이 그 산 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法起)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서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불교의 대웅전(大雄殿)은 본디 환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시던 대시전(大始殿)이었다.'대웅(大雄)'이란 뜻은 큰 스승이란 뜻이다. '환웅(桓雄)은 광명의 스승'이란 뜻이다. 太白逸史(태백일사)의 三神五帝本紀(삼신오제본기)중에서 五帝說(오제설)에 '환웅을 일러 대웅(大雄)'이라 하였으니 불가佛家의 대웅전(大雄殿)이란 본래 환웅전의 별칭으로 환웅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므로 대웅전은 본래 우리나라 밖에는 없는 것으로 아주 극소수 존재하는 외국의 대웅전은 근대에 이르러 우리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역사가 왜곡되고 신교(神敎)가 쇠퇴하면서 대웅전의 환웅 신상은 점점 부처상으로 바뀌었으니, 현대까지 산신각에 주신으로 모셔져 있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단군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신상마저 부처상에 그 주신(主神)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환웅전이 대웅전이 된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유서깊은 사찰에는 아직도 대웅전을 제외하고도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명부전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우리 신교(神敎)의 흔적이라 하겠다.
3) 도교(道敎)의 뿌리
일반적으로 중국의 도교는 황노교(黃老敎)라고 한다. 황제는 그 혈통이 우리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갔다. 갈홍(葛弘)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
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을 부렸다. 부연하자면 일찍이 황제는 14대 자오지 천황(치우천황;서기전 2707-2599) 때, 배달국의 수도인 청구(靑邱: 오늘날의 요령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다가 삼청궁(三淸宮)에 들러 치우천황의 국사(國師)인 자부선사(紫府仙師)를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음부경}이라 불리우는 {삼황내문}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황제 학문의 맥 자체가 우리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계미(B.C. 518)에 노인(魯人) 공구(孔丘)가 주(周)에 가서 노자(老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의 성(姓)은 한(韓)이요, 이름은 건(乾)이며, 그 선조(先祖)는 풍인(風人)인데 서쪽으로 관문(關門)을 나가 내몽고를 경유하여 아유타에 이르러 그 백성을 교화하였다.' 이것은 노자 역시 황제와 더불어 동이족이며, 노자의 성은 원래 한씨로서 李耳의 李는 木의 子, 즉 東方의 子란 뜻이다. 이렇게 도교의 원뿌리도 우리나라 신교(神敎)에서 나왔다.
4) 기독교의 뿌리
슈메르 연구학자인 S.N 크래머 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는 슈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에서 지적했듯이, 서양에 있어서 최고(最古)의 문명은 슈메르 문명이다. 이 슈메르 문명은 동방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삼성기전 하편(三聖記全 下篇)을 보면 환국에는 12환국이 있었는데, 그 중 바이칼호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과 우루국(虞婁國, Ur)이었다. 수밀이국과 우루국 사람들이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가서 문명을 일으켰다. 당시 슈메르 민족이 사용하던 설형문자는 태호복희씨가 사용했던 8괘와 흡사하며,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였다고 한다.
서양 유대교 문화의 뿌리되는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로 슈메르 문명이 자리잡고 있던 갈대아 우르(Ur)이다. 그가 아버지 데라를 따라 서기전 1950년경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의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주하는 과정에서, '강을 넘어온 사람'의 뜻으로 헤브루인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또 유대족이 황인종, 그 중에서도 몽골인과 근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서양의 모체 문명의 뿌리는 바로 우리 환국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슈메르의 종교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이라는 제천단 유적들은,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문화가 환국의 후예인 슈메르인들의 삶과 신앙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바로 슈메르의 지구랏이다. 이처럼 서양의 종교도 그 원뿌리를 신교(神敎)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모세의 5경인 구약의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쓰여진 제사음식.性행위.종족번식.사회규율 등의 율법은 그 제정 유래 및 각 法條의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함무라비法과 같다고 한다. 함무라비法의 기원은 바로 인류최초의 법전인 수메르법전이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거의 같다.
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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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 유(儒) |
金: 불(佛) |
선(仙) |
|
水: 동선(東仙) |
火: 서선(西仙) | |||
도의 전공분야 |
유지범절(凡節) |
불지형체(形體) |
선지조화(仙之造化) | |
우주 주재자 |
상제님 |
미륵 천주님 |
옥황 상제님 |
백보좌 하느님 |
목적(目的) |
대동(對同) |
극락(極樂) |
태청(泰淸) |
천국(天國) |
교리강령 |
충서(忠恕)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
자비(慈悲)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
감음(感應)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
박애(博愛)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
삼극 |
오황극 (五皇極) |
일태극(공) (一太極(空) |
십무극(十無極) | |
(三位一體) |
무극/태극/황극 |
법신/보신/화신 |
옥청/상청/태청 |
성부/성자/성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