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연의 이법과 神과 역사에 대해서'

2) 자연의 이법과 神과 역사에 대해서'

0 개 4,069 김진명

『시간의 목소리 Voice of Time』라고, 시간에 대한 논문을 모아 놓은 20세기 명저가 있다. 거기 보면, 우리들이 쓰는 언어라는 게 전부 시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강의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다.’고 시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내일 보자", "나중에 만나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 등등, 인간 활동의 밑바탕에는 항상 시간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진화론에서 배운 건 직선 시간관이다. 약 3백만 년 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느니 하는 게, 전부 직선 시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직선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게 아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밀도를 한번 생각해 보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또 아주 바쁜 낮의 시간대와, 집에 돌아와서 다리 씻고,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보면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저녁 시간대의 밀도를 비교해 보라. 같은가? 다르다. 또 잠잘 때는 어떤가? 깊은 잠에 빠지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 못 한다. 카오스적이다. 이게 우주 내면 질서의 신비다. 이 세상 모든 진리의 핵심 명제는, 결국 이 시간이 무엇인지, 시간의 비밀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에 대해, 아주 성숙한 얘기를 한 사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다. 그는 『확실성의 종말(La Fin des certitudes)』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시작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최근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이 우주는 이전에 측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백억 년 전에 열린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폭발(Big bang)로 천지가 원시 개벽된 시점 이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곧 천지개벽도 우주가 탄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시작은 없다!" 이 말은 우리의 닫혀있던 의식을 참으로 시원스럽게 해방시켜 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일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 것 아닌가. 끝은 죽음이다. 일찍이 동양사상사에서 그런 멍청한 말을 한 사람이 있는가? 일리야 프리고진의 말대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열려있다. 이 사람은 기존의 서구의 시간론을 다 뒤집는다. 우주에는 시간의 물결, 변화의 현상은 있으나, 시간의 실체는 없다. 과거는 흘러가서 없고, 현재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으며,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러니 시간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자연 변화의 속성은 순환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자연에 대한 변화를 들여다보고 깨달은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곧 음양론이다. 가장 작은 음양의 변화는, 하루 낮과 밤[晝夜]이 바뀌는 것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주기만 좀 다를 뿐이지, 낮과 밤은 어김없이 바뀐다. 한 번 음 운동, 한 번 양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게, 자연의 근원 질서[道]라는 말이다. 낮과 밤의 지속적인 반복, 그것이 순환(circulation)이다. 서양의 철인들도 하루 낮과 밤의 순환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우주 1년으로 확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수천 년 된 고대 그리스문화를 보면, 그들도 우주의 큰봄, 큰여름, 큰가을, 큰겨울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금 과학에서는 지구 탄생 이래로 빙하기가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있었다고 하고, 또 지구의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어지는 큰 변화가 자그마치 2백 회나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 남극대륙의 빙하에 3,623m나 되는 구멍을 낸 러시아, 미국, 프랑스의 공동 탐사팀은 빙하에 남겨진 기록으로부터 335,000년 245,000년 13만5,000년 간격으로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의 전이를 발견하였다. (Bernhard Stauffer. "Climate change: Cornucopia of ice core results". Nature 399. 1999. 412쪽)

 

●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2만에서 2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신기(更新世)의 빙하량 변화를 조사한 SPECMAP(Spectral Mapping Project) 시간 척도는 지난 해빙기 중심을 12만7,000년으로 보고하고 있다. (J. Imbrie. et. al. Milankovitch and Climate. edited by A. L. Berger et. al. Reidel. Dordrwcht. 1984. 269쪽: J. Imbrie. et. al. "On the structure and origin of major glaciation cycles: I. Linear responses to Milankovitch forcing". Paleoceanography 7. 1992. 701쪽)

 

● 더욱이 산호층 단구의 연대는 12만8,000 ~ 12만2,000년 전 해수면이 최대 정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C. H. Stirling. et. al. "Timing and duration of the Last Interglacial:Evidence for a restricted interval of widespread coral reef growth".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 160. 1998. 745쪽)

 

 

지구 1년을 보라. 지구는 하루에 360도 자전한다. 하루의 주야 동정(動靜)은 모든 변화의 기본이다. 이 만물 생명의 기본 변화인 동정의 리듬을 만드는 어머니 지구가, 1년 동안 360회 자전을 지속하면서 태양을 안고 공전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지구 1년 4계절 생장염장의 변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고나면 또 다른 지구 1년이 열리고, 봄이 오는 것이다. 지구 1년의 순환도수는, 자전360도, 공전360도 순환 반복하므로 360°×360° = 12만9천6백 도다. 인간의 몸도 음양으로 변화한다. 즉 맥[陰]이 뛰고 호흡[陽]을 한다. 맥이 뛰는 건 혈맥(血脈)이고, 호흡은 기맥(氣脈)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맥을 합치면, 하루에 12만9천6백 도수이다(하루의 혈맥 수:72×60×24=103,680, 하루의 기맥수:18×60×24=25,920, 도합 129,600). 이 12만9천6백 수는, 천지와 인간 생명 변화의 기본 사이클을 이루는 도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창조 주기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천지와 만물의 생성 변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핵심 비밀이 이 우주 1년의 주기에 있기 때문이다.

 

 

12만9천6백 년! 이 수는 중국 송나라 때, 소강절(1011∼1077)은 『주역』을 한평생 공부하고 "이 천지 밖에 또 천지가 있으면 모르려니와 차천지내사(此天地內事)는 내가 모르는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깼다. 우주의 변화는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없다. 밤하늘을 보라. 별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일천억 개의 별이 모인 게 은하수다. 맑은 날 은하수를 보면, 마치 우유를 뿌려놓은 듯하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밀키 웨이(milky way)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개천(天の川)이라고 한다. 천지의 변화운동으로, 끊임없이 만물이 생멸한다. 최근 화성 탐사 결과, 화성에 물줄기 흔적이 있고, 화성에도 생명이 살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하늘은 하늘대로 생명체가 많고, 우주의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혹성인 지구에도, 수많은 생명의 종이 살고 있다. 인간만 해도 70억이다. 바다는 또 어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현란하게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생명계의 변화의 이법은 결국 단순한 네 글자인 것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 낳아서, 길러서, 거두고, 휴식한다. 그런데 세 번째의‘거둔다!’고 하는 염(斂), 여기서 모든 종교와 인간 역사의 총 결론이 나온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역사를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가을 소식이다.
 
우주는 선천先天 봄여름을 넘어 후천後天 가을이 있고 겨울(빙하기)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소식이요, 우주 1년 선천과 후천 소식이다. 또한 이것이 소위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소식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낳아 길러서 가을에 성숙시킴으로써 우주의 이상을 실현한다. 즉 우주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손을 빌어 천지의 꿈과 이상을 건설한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목적이다. 이 선,후천 우주 1년을 오늘날 과학 용어로 말하면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일년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볼 때, 봄여름 선천 오만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우주 1년은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하루, 지구 1년,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그것이 바로 생장염장의 이법이다.
 

 

 

이 우주 1년 4계절을 전기 후기로 나누어 봄여름을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 가을겨울을 후천(後天, the later heaven)이라고 한다. 우주 1년 12만9천6백 년에서, 선천개벽으로 처음 인간이 태어나 살 수 있는 기간이 선천 5만 년, 또 생명 활동을 쉬는 겨울(빙하기)이 올 때까지, 인간의 생존기간이 후천 5만 년이다. 인간이 탄생하여 성장하는 과정, 인간이 자기계발하는 영성의 성장 과정이 선천 5만 년이고, 인간이 완전한 깨달음의 진리를 통하여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후천 5만 년이다. 갑오 동학혁명 때 동학군들이 이마에다가 붉은 글씨로‘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 오만 년 운수를 받는다고 한, 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의 의미이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지금 역사가들은 천지의 큰 틀, 천지의 이법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천지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천지의 계절이 지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모른다. 천지의 때를 모른다! 하루 낮과 밤, 지구의 1년 사계절 변화 밖에 모른다. 이 우주에서 나를 내서 길러내는 천지부모의 손길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높은 권좌에 있고, 어떤 분야의 대가라 해도 천시天時, 때를 알지를 못한다.

 

 
 
이제 상극의 질서가 문 닫고 상생(相生)의 새 질서가 열린다!‘상생’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우주 만유가 가을천지 개벽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천지에서 인간농사를 짓는데 하늘이 오늘의 우리를 내서 길렀다. 지금도 기르고 있다. 무얼 위해서인가? 바로 이 가을 천지의 천지 부모와 함께 거듭나라고 기르는 것이다. 개벽(開闢)이란 무엇인가? 개벽이란‘열 개開’자,‘열 벽闢’자다. 연다,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열고 또 연다는 것인가? 천지의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열린다는 뜻이다. 하늘도 열리고 땅도 열린다. 그리하여 천지의 새 질서가 열리는 과정에서 인간 문명의 틀이 바뀐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수 성자가“돌멩이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넘어간다.”고 했다.

 

지구촌에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돌멩이가 다 넘어간다, 이 천지 간에 안 넘어가는 게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전하는 새 하늘 새 땅도 개벽문제의 결론이다. 불교『월장경月藏經』의 최종 결론이 "그 때는 우주의 별자리가 바뀐다.” 우주질서가 바뀐다는 것이다.『주역』을 보면, 유가의 결론도 개벽이다. 즉“성언호간(成言乎艮), 간방(艮方)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동북 간방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공자가 서술한『주역』「설괘전」을 보면 앞으로 지구 일년의 날수가 365일이 아닌 360일로 바뀜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乾之策二百一十有六 坤之策一百四十有四 凡三百有六十當期之日.
건지책 이백일십유육 곤지책 일백사십유사 범삼백유육십당기지일『주역』「설괘전」 

그러나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풀지 못한 채 2천여년을 내려왔는데, 이를『정역正易』을 완성한 김일부 선생이 비로소 밝혀낸 것이다. 정역(正易)은 무엇인가. 기존의 주역(周易)과는 어떻게 다른가?
 
정역(正易)은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세상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앞으로 천지의 시공질서가 바뀌어 1년이 360일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지구 자연환경은 360일에서 5와 1/4이라는 윤도수가 붙어서 불안정한 천지질서에 의해 인간은 고통과 번민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본래의 천지의 운행도수인 360도로 천지일월이 운행하게 되면 모든 인간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천지질서 속에서 성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선천 5만년 상극의 주역(周易)시대가 후천 5만년 상생의 정역(正易)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복희팔괘는 천지가 창조된 원 틀을 그려놓은 생역(生易)이고, 문왕팔괘는 선천의 장구한 역사 기간 동안 만물을 키워내는 봄여름의 장역(長易)이다. 그리고 정역팔괘는 만물을 익혀내고 열매 맺는[旣成] 가을의 성역(成易)이다. 이는 복희역와 문왕역에 이어 나온 제3역이며, 다가오는 미래의 세상 이치를 미리 밝혀놓은 미래역이다.
  

 

 

선천의 기울어진 천지의 근본 틀이 바로 서서 선천의 천지비(天地否)의 괘상이 후천의 지천태(地天泰)로 개벽된 후천역이다. 지천태地天泰는 상하가 소통되며, 각색 인종이 서로 평등하고, 각자가 자유롭고 사랑이 충만한 사회, 후천세상을 보여준다. 정역正易은 지금까지 모든 종교와 위대한 예언자들이 말한 우주의 새 시대를 선언하는 가을개벽의 이치를 담고 있다.


연담 이운규 선생의 가르침
김일부 선생(1826~1898)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선생이 태어난 당골의 서쪽에는 띠울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일찍이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이 국운이 쇠미해짐을 보고 서울에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서구(李書九)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천문(天文), 역산(曆算), 역학(易學), 시문(詩文)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는 김일부선생 뿐 아니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남학(南學)의 김광화(金光華)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스승이 된다.
 
김일부 선생이 36세 되던 해, 하루는 연담 선생이 최제우,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말하였다. 최제우와 김광화에게는‘각기 떨어져가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우고 깊이 근신(謹愼)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일부에 대해서는“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는‘너’라 하고 ‘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자네’라 하기도 과만한 터인 즉‘하소’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자꾸 볼 것이 아니라『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노라면 자연 감동이 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후일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 주소.”하고 글 한 수를 내어주니 이러했다.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하고 호행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빛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연담 선생은 이 글을 남겨놓고 마을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공부에 일심한 김일부 선생
일부 선생은 연담 선생의 유훈에 따라 예학(禮學)과 문사(文詞)에 힘쓰던 종래의 공부 방법을 바꿔『서전』을 읽고『주역』을 탐구하였다.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법으로 정신과 육신을 계발하여 천지의 심법을 함양하였다. 그는 요순(堯舜)의 심법을 체득하고, 요순의 기(朞)와 삭망(朔望)의 전도(轉倒)에 따른 천체의 이동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마을 뒤쪽에 있는 용바위, 냇가 등지에서 종일토록 뛰고 청아한 음성으로‘음아어이우’의 오음(五音)을 발하고 그 곡조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이 노래를‘영가(詠歌)’라 하고 춤을‘무도(舞蹈)’라 하였다. 이는 선생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고종제인 권종하(權種夏)가 선생의 공부를 보고 감동하여 옛 성인들의 공부법을 보았다 하여‘영가무도’라 이름붙인 것이다.
 
일부 선생은 조석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어떤 때는 날밤이 새도록 가무(歌舞)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했다 한다. 김일부 선생은 공부에만 정진할 뿐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 살림이 극히 가난하였다. 그 부인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선비들처럼 글만 읽은 것이 아니라 뒷산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자 종문(宗門)에서도 이단지학을 한다하여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에 진력했던 선생은 후에 자신의 마음을『정역』에 이렇게 써놓았다.
 
六十平生狂一夫는 自笑人笑恒多笑라. 笑中有笑笑何笑오. 能笑其笑笑而歌를.
육십평생에 미ㅅ친(狂) 한지아비(一夫)는 스스로 웃고 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고. 능히 그웃음을 웃고, 웃으며 노래하는구나.『 正易 』「十五一言」중에서)
 
선생은‘영동천심월’의 열쇠를 풀기 위해 더욱 정진하여 주야로 가무하면서 탐구에 진력을 다하는 가운데,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ㅅ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이 갈수록 청명해졌다. 일부 선생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36세로부터 19년 만에 드디어 ‘영동천심월’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가 선생이 54세 되던 1879년이었다. 그리고 기묘(1879)년 이후부터는 눈앞에 이상한 괘(卦)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상으로 뒤덮여보였다. 혹시 가무에 너무 집중하여 기력이 쇠한 탓이 아닌가 하여 음식을 먹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역에 그런 괘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여러 차례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신야자(神也者)는 묘만물이위언자야(妙萬物而爲言者也)니라. 신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대목에 와서“ …고(故) 수화상체(水火相逮)하고, 뇌풍이 불상패(雷風不相悖)하고, 산택이 통기(山澤通氣) 연후(然後)에야 능변화(能變化)하여 기성만물야(旣成萬物也)니라. 그러므로 수화가 서로 미치고 뇌풍이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산택의 기가 통한 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이 완성 되느니라”는 말씀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괘도와 완전히 부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성인이 이미 주역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하여 재종질인 김국현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왕괘도의 뒤를 이어 나타난 제3의 괘도인 정역팔괘(正易八卦)이다.
 
팔괘도를 다 그리자 홀연 공자가 나타나 일부에게“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뤘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하고 무한히  찬양한 후‘일부(一夫)’라고 호칭을 했다. 일부라는 호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문득 들은 일이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칭인줄 몰랐다가, 이제 공자가 말씀하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을 꽉 채우던 괘상은 이후로도 3년 동안이나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1881년 선생은 정역正易의 서문격인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였다. 이 글에서 선생은 역(易)은 역(曆)이라는 것과 공자는 천지유형지리(天地有形之理)를 통달했는데, 자신의 도는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까지 통관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59~60세(1884~1885년)에 정역(正易)을 선포하였다. 이후 1886년에 제자들에 의해 목각판으로 초판이 발행됨으로써『정역正易』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은 회갑을 지내고 1887년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로 이사하여 지내다가,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소란을 피하여 충청도 연산 향적산 국사봉으로 옮겨 수십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선생은『정역正易』을 밝힌 이후에도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이해할 사람이 없다고 여겼는지 제자들에게 정역正易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고, 주역의 가르침만 반복해서 이야기했다고 전한다.
 
선생은 항상 너그럽고 포용함이 있었다. 한번은 제자들과 함께 향적산 국사봉에 있을 때 동학도 200여명이 떼를 지어 국사봉 양반들에게 쳐들어 온 일이 있었다.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지극히 청아하게 영가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은 무리들은 감동한 나머지 하나 둘 몽둥이를 내던지고 사죄하거나 혹은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1897년)하고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어 가던 1898년(戊戌) 11월 25일 아침, 선생은 유명을 달리하신다. 그는 부인과 자녀들에게 유언하기를“내가 평생에 공부만 알고 금전을 몰라서 집안이 이 꼴이 되었으니 너희들을 고생시킨 일을 생각하면 딱하고 가엾구나. 참 안됐다. 그러나 성인의 일을 알아보느라고 그리 된 것이니 할 수 없는 일…. 너무 걱정 말고 참고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돕는 사람도 생겨서 그럭저럭 부지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눕지도 않고 조용히 앉은 채 운명하였다.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의 제자 김일부선생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水雲 최제우(崔濟愚,1824 - 1864)선생은 동학혁명 30여 년 전인 1860년 4월 5일, 도통을 받을 때“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동경대전』「포덕문」‘두려워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예로부터 나를 상제라 불러왔는데, 너는 구도자로서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그런데 동학이 3대 교조 손병희 선생에 의해‘천도교’로 바뀌면서 상제관이 완전히 왜곡이 된다. 어린이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배우는 모든 국사 교과서, 국민윤리 교과서에‘천도교의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으로서 인간 존엄의 극치를 외쳤다’고 되어 있다.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포덕문」을 보면, 상제님께서 최수운 대신사에게“주문을 받아라. 대도를 펴라”고 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내려주신 주문이 바로‘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열석 자이다. 최수운 대신사는 또“호천금궐 상제님을 너희 어찌 알까보냐”「安心歌」라고 노래했다.‘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은 나도 상제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세속의 너희들이 어떻게 상제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하는 뜻이다.

 

동학의 핵심은 상제님이 천주, 즉 하늘의 주인이라는 것’과 ‘상제님의 강세와 후천개벽이 올 것’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서구의 천주교가 들어와서 천주와 하느님의 아들을 믿으라고 열을 올리고 있던 백여년 전, 수운 선생께서는 ‘너희는 겨우 하느님의 아들을 믿으라 하지만 나는 하느님이 친히 이 강토에 강림하시게 되므로 사람으로 오시는 그 하느님을 믿으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복음을 5년간 전하신 최수운 대신사께서는 갑자년(1864) 3월 10일 세상을 뜨시면서 전 40 년은 내려니와 후 40년 은 뉘련가 천하의 무극대도가 더디도다 더디도다. 8 년이 더디도다‘하시어 자신이 떠난 지 8 년 후에 하느님께서 강림하실 것을 예고하였다. 동학의 최제우선생의 예고대로 "140여년 전 이땅에 다녀가신 상제님의 말씀이 도道의 원전原典, 道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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