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건망증 비슷해 보이지만 달라요
65세 주부 정해자(가명)씨.
몇 달 전부터 물건 둔 곳을 가끔 잊어버리는 등 깜박깜박하는 일이 생겨서 치매가 아닌가 걱정이 돼 병원을 찾았다.
정씨는 잊어버린 것에 대해 가족이 알려주면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상태였다.
75세 농부 최부암(가명)씨.
석 달 전부터 멍하니 자꾸 누워만 있으려고 한다며 큰 아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아들에 따르면 최근 밖에도 통 안 나가시고 농사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다 잊어버린 듯하다고 한다.
아들이 의사 앞에서 자동차 열쇠를 어디 두었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
몰라!"라고 대답했다.
75세 주부 김순미(가명)씨는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같긴 했지만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지내다가 최근 며느리가 자꾸 돈을 훔쳐간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며 안절부절못했다.
56세 회사원 이수재(가명)씨.
평소와 달리 점점 참을성이 적어지고 자꾸 화를 내기 시작했다.
부인이 힘들어할 정도로 성관계도 자주 요구했다.
하지만 기억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씨와 함께 병원을 찾은 부인은 "사람이 변한 것 같다"며 울먹였다.
모두 최근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자 치매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돼 병원을 찾은 사례다.
4명 다 치매가 온 게 맞을까. 아니다. 반만 맞다.
정씨는 노화에 의해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심해진 경우,
최씨도 치매가 아니라 ‘노인성우울증에 의한 기억력 감퇴’란 진단을 각각 받았다.
반면 김씨와 이씨는 치매 선별검사 결과 치매 환자인 것으로 확진됐다.
김씨는 치매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망상 증상’,
이씨는 비교적 젊은 사람에게 발생하는 '전두엽 치매' 증상을 갖고 있었다.
건망증 때문에 혹시 치매 전조 증상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어제 TV에서 본 탤런트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거나
갑자기 집에 둔 물건의 위치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치매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겁먹지 말자.
이러한 증상들은 대부분 ‘노화에 의한 단순 건망증’이며,
의학적으로 ‘치매에 의한 병적 기억력 감퇴’와 전혀 다른 증상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는
"실제 단순 건망증과 치매에 의한 병적 건망증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치매에 의한 병적 건망증과 노화에 의한 단순 건망증은 기억력 감퇴가 나타나는 양상부터 다르다는 설명이다.
건망증은 일종의 생리적 현상으로
자신이 경험한 일 가운데 비교적 덜 중요한 일을 일부 잊어버리는 현상이다.
치매는
중요한 일이나 약속같이 특정 사건 자체를 통째로 잊어버려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게되는 병이다.
어제 자식이 드린 용돈을 어디다 두었는지 여쭤봤을 때 어르신의 반응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아, 맞다! 잘 둔다고 TV 아래 서랍에 넣어두었어"라고 하신다거나
자식이 "그 때 바로 마루 쪽으로 가져가시더니∼"라고 힌트를 주면 "아∼그랬지. 맞아" 하시며 기억을 되살린다면 노화로 생긴 단순 건망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경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건 자체를 아예 기억해내지 못하고 "네가 언제 (나에게) 돈을 줬다고 그래?"라며 정색을 하시면 안타깝게도 치매에 의한 병적 건망증일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치매에 걸리면 시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져 초기부터 길을 잘 잃는 증상도 나타나는데,
건망증에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송후림 교수는
"대부분 스스로 건망증이 걱정된다고 이상 증세를 하소연하는 사람은 괜찮은 경우가 많지만,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서 건망증을 자주 지적받는 사람은 치매일 가능성이 높다"며
"단순 건망증이라도 자주 나타나고 심하다고 여겨지면 한 번쯤 병원을 방문,
치매선별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