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여, 자식이 많은 집에서는 근심과 걱정이 많다고 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항상 그 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구약 성경 시편 127편에서는 자녀가 많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많은 자녀를 주신 것을 은혜로 여기며 감사한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는 자식 많은 우리 집에 정말 바람 잘 날 없었던 것 같다.
봄이와 여름이는 보통 아이들이 그렇듯이 유치가 흔들리다가 충분히 흔들릴 때 빼 주면 되었다. 그러면 유치가 빠진 자리로 영구치가 나오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올해 여섯 살이 된 가을이는 어찌된 일인지 유치가 흔들릴 기미도 전혀 안 보이는 가운데, 아랫니 뒤쪽으로 영구치가 나왔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영구치가 나오는 것인지 다른 문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놀란 마음으로 먼저 가정의를 찾아갔다. 의사도 영구치가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하며 치과로 가보라고 했다. 친절하신 치과 선생님이 영구치가 나오는 것이 확실하고, 종종 있는 일이니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흥분한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몇 일 뒤에 가을이가 입이 아프다며 음식을 먹다가 울었다. 혀의 끝부분이 빨갛고 부어있었다. 가정의에게 보이니 영구치가 자라면서 음식 먹을 때 혀가 씹혀서 난 상처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므로 치과에 다시 가라고 했다. 결국 학교 덴탈 클리닉에서 국소마취를 하고, 이를 빼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이도 영구치가 올라오고 있고 같은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하며 함께 빼 주었다. 음식을 잘 못 먹어서 기운이 없는데다 생니를 두 개나 빼고 온 가을이는 집에 돌아와서 쓰러져 잤다. 저녁에 잠깐 깨워 겨우 식사대용 드링크와 소염진통제 시럽을 먹였는데 수면제를 먹은 것 마냥 다시 픽 쓰러져 자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가을이의 회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다음 날 저녁에 또 사건이 터졌다. 가을이와 겨울이 양치를 시키고 있는 틈에 우리 새봄이가 욕실 앞 복도에 있는 린넨장 선반에 올라가서 닫힌 한 쪽 문을 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소에는 뛰어내릴 수도 있는 높이인데,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떨어져서 얼굴이 바닥에 닿았다. 우는 아이를 안고 살펴보니 코피가 조금 흐르는 것이 보여 닦아주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혹이 났다. 입에서도 약간의 피가 났지만 이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코와 입 주위에 살짝 긁힌 상처도 보였다. 아이를 안고 달래며 이마에 얼음찜질을 해 주려니 곧 잠이 들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새봄이!
아침에 보니 이마의 혹은 많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눈이 탱탱 부어서 눈이 반밖에 떠지질 않는다. 걱정되면서도 보고 있으려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사망 소식을 들어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새봄이를 아이들은 권투선수 같다고 했다. 이마의 혹은 머리카락에 가려 표가 나지 않는데 눈 주위의 멍은 눈에 잘 띄었다. 보라색 멍은 가장 자리부터 차츰 변색하여 파랑에서 초록으로, 그 다음은 금빛에서 연노랑으로 바뀌었다. 눈 위쪽은 빠르게 변하고 코와 눈 사이 부분은 느리게 변해 어느 시점에는 여러 색이 공존하여 새봄이에게 알록달록 무지개 색 눈이 되었다고 하니 거울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다치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노는 새봄이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얼마 전 감기 걸린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다녀왔던 내가 감기에 걸려 감기 바이러스를 다섯 아이들에게 순서대로 나눠주게 되었다. 가을이를 시작으로 새봄이, 겨울이와 봄이에게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 감기 안 걸렸다며 좋아하던 여름이까지 남편을 제외한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다. 어른과 큰 애들까지 한꺼번에 감기 걸리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인데 이번 겨울은 좀 요란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위의 사건들은 온 가족이 감기와 싸우고 있는 기간 동안에 벌어졌으니 얼마나 정신 없었을지는 가히 짐작할 만 할 것이다.
그 난리통에도 감사할 일들은 많았다. 만 13세 미만에게 제공되는 가정의 진료 서비스와 만 18세까지의 치과 치료, 그리고 약값도 무료다. 병원 및 각종 의료 시설이 가까운 지역에 사는 것도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친절하신 의사들과 의료종사자들께 더욱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