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소개해드린 통가 출신 가족 이야기의 후속입니다.
“왜 이민항소재판소(Immigration and Protection Tribunal)는 그들에게 영주권을 허락했을까? 나도 그 사람들처럼 s.61 신청으로 방문비자를 받고, 그 방문비자가 만료된 후 42일 이내에 이민항소재판소에 항소해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갖고 계신 분이 혹시 계실지도 몰라서 이 글을 씁니다. 지난 회에 언급했듯이 이민항소재판소에서는 불법체류자에게 어떤 비자든 내 주라고 이민성에 명령할 수 있습니다. 단기 체류비자에서부터 영주권까지. 그 중에서 지난 번에 소개해드린 통가 가족처럼 영주권을 단번에 받는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법률과 그 법률을 해석하는 판례가 ‘항소 제기한 사람들의 상황이 예외적이고, 인도적인 견지에서 그 가족을 뉴질랜드에서 추방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그들을 뉴질랜드에 영구적으로 머물도록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뉴질랜드의 공공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에만 비자를 허용해주도록 정해놓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떤 상황이나 상태 또는 사건이 그런 때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예시는 없습니다. 재판관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크게 열려 있습니다.
그 통가 가족과 비슷한 상황과 조건이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전혀 다른 이유로 인정을 받는 항소신청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항소 결과는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드리는 한편으로, 그 통가 가족은 어떤 이유로 ‘인도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판정을 받았을 지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그들의 사례를 조금 더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민항소재판소가 이 통가 가족에게 영주권을 허락한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부인의 언니 때문이었습니다.
가족 중 애들 엄마, 즉 부인에게는 뉴질랜드에 먼저 와서 살고 있던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두 자매는 모두 뉴질랜드 영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매들 중 언니는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했습니다. 공부와 직장생활을 하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분열증을 일으켰습니다. 자해행위를 하고, 옷을 찢고, 환청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했지만 혼자 내버려둘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그 언니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 언니를 돌보느라고 동생은 제대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가족이 뉴질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가족이 뉴질랜드에 와서 정착하자 정신분열증에 걸린 언니를 포함한 자매들이 이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통가사람들은 대가족이 함께 사는 모양입니다. 살림을 하는 이 가족의 부인은 집에 주로 머물고 있으니 겸해서 정신분열증에 걸린 언니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언니를 돌보던 다른 자매는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인 언니는 집에서 살림하는 동생의 보살핌을 받을 뿐 아니라, 조카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놀이도 할 수 있는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은 완치되는 것이 아니어서, 만약 동생의 가족이 비자 갱신에 실패하고 통가로 추방당하면 이 언니는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혼자 사는 여동생과 함께 지내야 합니다. 그러면 뉴질랜드 공공 의료시스템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고,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여동생은 생활에 곤란을 겪을 것이고, 역시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환자 언니는 증세가 심해지는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 가족이 뉴질랜드에 계속 살면서 환자인 언니를 돌보아 줄 수 있는 것은 뉴질랜드 영주권자와 뉴질랜드의 공공 의료 시스템의 부담을 덜어주는 이익을 뉴질랜드에 제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두번째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이들이 넷 있었습니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태어났고, 셋째 넷째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 생활은 전부 뉴질랜드에서 했습니다. 그게 13년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뉴질랜드 말고 다른 나라의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강제로 통가로 전학해야 한다면, 상당한 심리적 곤란을 겪을 것입니다.
아이들 중 위의 두 명은 곧 대학교를 가야 할 나이인데, 통가에 가면 아버지의 적은 수입으로 대학교 학비를 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재판관은 판단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잘하고 있다는 편지들이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통가로 돌아가면 지낼 집이 없다는 사실도 고려되었습니다. 남편 가족의 땅은 남편이 뉴질랜드에 오고 난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 중 한 사람에게 모두 상속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들을 근거로 이민항소재판소는 그 가족들의 상황이, 비자를 허용하는 것이 인도적으로 타당한, 예외적인 경우라고 판정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영주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판결이 났지만, 이 가족과 동일한 상황에 대해서 비자를 기각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정당화시킬 수 있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어떤 뉴질랜드 영주권자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해서, 모국에서 어머니나 언니를 불러 와서 간호하고 돌봐 주도록 하겠다고 한다면 영주권을 줍니까? 당연히 주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는 뉴질랜드 영주권자도 시민권자도 아닙니다. 외국인이고 뉴질랜드는 그 가족을 보호하거나 복지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가족이 영주권을 받으면 자녀가 대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주는 게 옳다면, 내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할 사람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의 고등학교 다니는 청소년들 중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금 뉴질랜드에서 유학생으로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니는 청소년들도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아서 뉴질랜드 학교 밖에 경험한 적이 없어서, 통가로 이사가면 아이들이 받는 충격이 클 것이라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뉴질랜드에 오래 산 것은 그 부모들이 불법체류를 하기로 7년 전에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7년 전에 비자가 기각되었을 때 부모들이 바로 통가로 돌아갔다면 아이들은 오래 전에 통가의 학교에 익숙해졌을 겁니다. 물론 통가에서 학교를 나오면 뉴질랜드의 대학교에 진학하기 어렵지요. 학비도 비싸고. 그렇지만 그것은 모든 통가 청소년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이 신청자의 자녀들이 통가의 자기 또래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부모들이 불법체류를 하면서 뉴질랜드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불법행위에 대해서 포상을 해주는 조치입니다. 이 사실의 문제점은 재판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한 줄 쓰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이 계속 공부하고, 뉴질랜드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이 사건의 재판부는 이 가족들에게 영주권을 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반대 논리를 검토해보면, 이 가족의 항소에 대해서 이민항소재판소가 내린 판정이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때 그때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민항소재판부에 항소해서 성공하는 것은 거의 복불복인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라도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가족처럼 S.61 신청을 하고, 이민항소재판소에 항소를 했다가 실패를 하면 7년 동안 숨어서 지내던 사실이 드러나고, 오히려 추방명령서를 받는 것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 가족이 이 시도를 한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을 겁니다.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준비한 서류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편지, 아이들의 성적표, 아이들이 쓴 편지, 통가 토지 이전과 관련된 자료, 언니의 진단서, 언니와 자매의 진술서 등 등.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위험한 시도를 그 가족이 왜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대학교를 가야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봤습니다. 아니면 추방명령을 곧 받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