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1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뉴질랜드로 건너온 아들 넷 엄마입니다.
뉴질랜드로 오게 된 가장 큰 목적은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고,
큰애의 학생비자에 dependent로 저는 가디언 비자, 동생들 (세쌍둥이)는 일반 방문비자로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들 아빠와 기약없는 생이별을 1년 반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하고 있어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천혜의 자연에서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며 뉴질랜드 삶에 잘 적응해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곳에서 좀 더 장기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심각한 층간소음 문제로 소송 직전까지 앞두고 있었거든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밝고 단단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계속 체류를 하려면 이제 곧 프라이머리에 입학해야 하는 세쌍둥이 동생들 때문에 international 학비가 4배로 지속적으로 드는 상황이었기에, 저 혼자 순탄치 않겠지만 <유학 후 이민>을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의 정보 수집 결과, <유치원 교사>가 뉴질랜드 부족 직업군에 속해 있어 이민이 비교적 수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작년 첫 락다운 동안 아이들을 돌보며 혼자 영어시험을 준비하여 each IELTs 7.0 이상의 점수를 확보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가디언 비자는 주된 목적이 아이들 케어에 있기 때문에 다른 비자 (학생비자, 워크비자)로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원, 이민 법무사, 이민 변호사... 수많은 분들과 상담을 하고 방법을 강구하였지만 대부분이 제 케이스를 맡기 꺼려하였습니다.
"불가능합니다. off shore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였습니다. 어쩌면 제 케이스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답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팬다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민성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Zaneta라는 키위 법무사의 추천으로 해밀턴에 있는 한 키위 법무사를 소개 받았습니다.
Katy Armstrong이라는 이민 법무사인데 뉴질랜드 뉴스에서 출연한 적이 다수 있고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이민 관련 회의에서 참석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는 유능한 법무사입니다. 저는 Katy에게 제 상황을 설명하였고, Katy는 제게 한번 시도해보자고, 저를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때가 작년 9월의 일입니다. 저는 이때부터 학교에 원서를 넣고 학교 시험/인터뷰 등을 개인적으로 준비하여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자 전환을 위해 기약없는 기다림을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학생비자를 받은 건 며칠 전입니다. 올해 초 비자 신청 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기약없이 기다림을 지속하면서 정말 힘이 든 적도 많습니다. 이민성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2명의 Support letter를 비롯해, 6명의 Reference letter -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했던 호스피스 샵 매니저, 동료, 아이들 유치원의 담당 교사, 컬리지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이웃, 한국인 지인, 현재 국제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는 캐나다 출신의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 등. 주변의 지인들은 한 목소리로 제가 어떤 캐릭터의 사람인지, 비록 아들 넷의 엄마이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이 공부를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인지를 담은 레터를 써주었습니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 오피스에서도 제 비자가 거절되면 서포트 해주기로 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필요가 없게되긴 했지만요.) 그 결과, 정말 운이 좋게 약 2개월 전 이민성은 기존 가디언 비자를 떼어내는 것을 승인하고 저를 일반 관광비자로 전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학생비자를 신청하여 며칠 전 학생비자를 받았습니다.
Katy는 이민성과 대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정말 적극적으로 저를 변호해주었습니다. 저의 케이스 오피서를 설득하는 것 뿐만 아니라 executive 급의 이민성 간부와도 수차례 통화하며 제 케이스를 풀어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아이의 학생비자 조차 genuine intention이 의심된다며 거절되는 케이스를 심심치 않게 목격했습니다. 저의 중국인 친구 엄마는 아이의 학생비자가 거절되어 무려 4개월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그 케이스를 담당했던 중국인 에이전트는 이민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도 이민성과 전화 한통을 직접하지 못하더라고요. 모든 소통이 이메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그때 확신했습니다.
"이민성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아야겠다. 문제가 생기면 이메일이 아니라 이민성 직원과 바로 통화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이것이 저의 최소한의 기준이었습니다.
가끔 단톡방이나 코리아포스트 글을 보면 법무사나 변호사를 추천해달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제가 제 시간을 투자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는 이유는 한때의 저처럼 비자때문에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안됩니다. 불가능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작년에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 네 명을 혼자 육아하며 저는 당당하게 풀타임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생비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개인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하는 지. 오늘 이 글을 읽으며, 제 케이스를 보며, 조금이라도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 발자국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Katy Armstrong
https://www.intonz.co.nz/+64--8390967
p.s 정말 혼자만 알고 싶은 법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