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첫 시험관 아기(IVF)가 태어난 지 40주년이 되었다.
이 시술은 당시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지난 40년 동안 이 시술은 다른 방법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수천 명의 뉴질랜드인의 삶을 변화시켰다.
첼시아는 그러한 어머니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자녀인 7세 Bodie와 4세 Fleur는 시험관 시술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며 가족에게 새로운 문과 창이 열렸고 그래서 IVF(In vitro fertilization)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첼시아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만약 시험관 시술이 없었다면 두 아이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초의 시험관 아기(IVF)는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5년 후 뉴질랜드의 불임 개척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불임의 선구자인 리차드 피셔 박사는 1News와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에서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을 때 성공 확률이 약 5%였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리차드 피셔 박사는 의학적 혁신이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국내 최초의 환자들이 헌신했다며 성공 가능성이 높지는 않더라도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기회였다고 전했다.
그 이후로 절차가 단순화되고 성공률이 향상되었지만 그 기원은 잊혀지지 않았다.
호주와 뉴질랜드 불임 협회(Fertility Society of Australia and New Zealand)의 사이먼 맥도웰 박사는 뉴질랜드 불임 의학의 선구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