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구세군 교회를 단지 12月 크리스마스가 되면 명동이나 광화문 같은 번화가에서 종을 딸랑 딸랑 치면서 벌이는 자선 냄비 모금 운동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구세군 교회에 교인이 되어서 그 모금 운동에 참여하게 되니 참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교인들은 평일에 일터로 가야 하니까 오전 시간은 나같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밖에 없군요. 생전 처음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앉아 있으려니 좀 창피하고 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첫째날 아침이었습니다.
월요일 오전에 쇼핑몰에 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간이 탁자에 스티카와 모금통을 올려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한사람이 다가오는데 이 사람 차림새가 서울의 노숙자들 같이 허름한 차림에 내가 되려 보태주고 싶은 모양의 초노의 男子 한 분이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그러더니 주머니 속에서 50불 짜리를 꺼내더니 넣는 구멍이 작아(동전만 넣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음) 한참을 접어서 넣고 돌아서 가는 것이에요.
나는 Thank you! 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그 사람 뒤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50불이면 그만한 가치의 돈이려니 하겠으나 저 사람한테는 5천불의 가치로 쓰여 질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아, 이 곳이 New Zealand이구나! 동전 넣는 것이 당연하고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들 같아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어느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오다가 아이에게 동전을 주고 통 속에 아이가 직접 넣게 하는 것이었어요. 가까스로 걸음마 떼는 아이가 모금통에 동전을 넣어야 한다는 인식을 어린 나이에 심어 주는 것이지요. 이런 교육이 거짓말 하면 안되고 남을 돕고 배려하는 不正이 없는 깨끗하고 맑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 나라의 근본을 보는 것 같아서 앉아 있는 내내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군요.
午後가 되어서 목사님(구세군은 사관)이 오셨어요.
午前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이 곳 사람들은 가난했던 사람들이 꼭 헌금을 한다고 하면서 사회 환경 전체가 인성교육을 하는 학교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 시기를 지내고, 그 어려운 6.25 전쟁을 겪고,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렸으면서도 나보다는 더 어려운 이웃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 어찌 안 생겼을까 생각합니다. 부정부패에 공금횡령를 하는 공무원,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들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참 가슴이 아픈 오늘의 한국 현실입니다.
우리 교민들이 이 먼 이국에 살면서 New Zealand 사회의 이런 모습을 닮아서 서로 위로하고 돕는 따뜻한 교민사회가 이루어져 나갔으면 하는 원대하고 주제넘는 얘기지만 훈훈하고 따뜻한 교민사회를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편안한 삶을 다시한번 꿈꾸어 봅니다.
<교민 김희자씨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