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직전까지 갖가지 정치 스캔들이 쏟아지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대형 사건들이 줄을 이었던 2014년 뉴질랜드 총선이 9월20일(토)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 선거보다 화제거리가 풍부해 일부에서는 의외의 결과를 점치기도 했으나 막상 개표함 뚜껑을
열자 집권 국민당의 압승이 확인된 가운데 인터넷-마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들의 돌풍 예상은 찻잔 속에서
일어난 태풍으로 판명됐다.
<단독집권까지 가능해진 국민당은 축제 분위기>
국민당은 3석의 의석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갖가지 정치 스캔들이 터지는
가운데에서도 정당지지율도 2011년 총선보다 0.75%p나
늘리는 기염을 토하며 9년에 걸쳐 3번째 정권을 이어가게
됐다.
국민당은 1996년에 혼합비례대표(MMP)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단독
집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했으며, 이 같은 총선 승리는 유권자들이 ‘Dirty
Politics’와 같은 좌파 계열 작가의 폭로성 책자 발간이나 인터넷 마나당 킴 돗컴에 의해 촉발된 국민 감시와 스파이 논쟁 등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결국 유권자들이 폭로성 이벤트나
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과 정치적 사안에 대한 판단보다는 다른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노동당을 비롯한 좌익 정당과 녹색당보다는 현재 정부를 이끌고 있는 존 키 총리의 국민당을 더 미덥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뉴질랜드 국민들의
성향이 우익화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것과 함께 역설적으로, 앞으로 3년 동안 믿고 있는 국민당이 다른 분야를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경제 문제를 풀어가는 데 강한
부담감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에 노동당은 야권에 유리한 여러 가지 선거 호재가 있었으며 실제로 선거 직전에는 이로 인해 여론 조사에서
키 총리와 국민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살리지 못하며 패배를 자초했다.
이로 인해 노동당은 필 고프 대표가 이끌었던 지난 2011년 선거
때보다도 지지율도 2.79%p 더 까먹었을 뿐만 아니라 의석도 34석에서 32석으로 2석이나 내주는 참패를 당했는데, 노동당의 이 같은 저조한 지지율은 1922년 이후 90여 년 만에 최악인 것으로 알려져 야권은 물론 여권 지지자들까지 놀라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컨리프 현 대표의 당 지도력에 대한 비판과 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론이 일면서 새로운 대표 선출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에 반해 컨리프 대표는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소수 정당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인터넷-마나당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MMP 제도의 특성상 1~2석
정도는 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는 마나당 대표였던 호네 하라위라의 마오리 지역구 패배로 정계 진출의 꿈이 사라졌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 킴 돗컴은 오클랜드 워터 프론트에 있는 인터넷-마나당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킴 돗컴이라는 브랜드가 이번 선거에서 ‘독(poison)이 되었다면서 하라위라와 마오리 유권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는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수사를 받는 등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 독일 출신의 인터넷 재벌이 재력을 바탕으로 마나당의
하라위라와 야합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라위라의 지역구 유권자들은 물론 일반 유권자들도 여론조사 때와는
달리 실제 선거에서는 표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엿보게 했다.
이번 선거 패배로 인터넷-마나 연합은 사실상 붕괴되었으며 인터넷당이나
마나당의 앞날 역시 밝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당 유지 자체가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보수당은 콜린 크레이그 대표가 250만 달러가 넘는 사비를 써가면서
의석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자당의 지역구 후보들이 자신을 포함해 모두 지역구에서 낙선함으로써 꿈을 이루지 못했다.
보수당은 2011년 선거의 2.65%에서 이번에 4.12%로 정당지지도를 1.47%p나 높였으나 마지노선인 5%를 넘기지 못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원내 진출에 실패하고 3년 뒤를 기약하게 됐는데, 크레이그
대표는 인터뷰에서 보수당은 지지율로는 5위에 올랐다면서 2017년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과 가장 좋았지만 별 의미 없게 된 뉴질랜드 제일당>
반 이민과 반 아시안 발언으로 항상 물의를 빗는 정치인이자 여권과 야권을 넘나드는 줄타기의 명수인 윈스톤 피터스
뉴질랜드 제일당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수치상만으로는 국민당보다도 더 좋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6년 전에 국민당의 돌풍으로 한때 원외정당으로까지 추락했던 그는 지난 2011년 선거에서 6.59%의 지지율과 8명의 의원을 지닌 원내 제 4당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바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지지율을 2.26%p나 더 끌어올리고 덕분에 의석도 11석으로 3석이나 늘리며 제 3당인
녹색당의 13석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단독정권까지 가능한 국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인해 그의 장기인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 데다가
국민당이건 노동당이건 그의 줄타기에 별로 관심을 기울여주지도 않게 돼 수치상으로 의석을 늘린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점에서는 녹색당도 마찬가지인데 선거 직전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지지율을15%대까지 끌어올려 비례 대표로만 구성된 녹색당 의석이 16~177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막상 개표가 끝나자 오히려 이전보다 지지율도 11.06%에서 10.02%로 1.04%p나 떨어지면서 1석을 잃었다.
<명맥 유지하게 된 군소 정당>
한편 북섬 6개와 남섬 1곳
등 전국이 모두 7개로 나눠진 마오리 지역구에서는 6개의
지역구를 모두 노동당이 석권한 가운데 1개 지역구에서만 마오리당이 차지했다.
이에 따라 지지율까지 1.43%에서1.2%로 0.14%p가 떨어진 마오리당은 종전에는 지역구만으로 3석을 유지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지역구 1석과 함께 비례대표 1석을 겨우 배정 받아 2석의 미니 정당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마오리 지역구의 유지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계속 나오는 데다가 일부 정당에서는 아예 이를
없애야 한다는 정책을 들고 나오기도 해, 마오리당 입장에서는 부진했던 이번 선거 결과도 문제이지만 이
점 역시 크게 신경이 거슬리는 점이기도 하다.
ACT당은 데이비드 세이모어 후보가 자당의 정당지지율이 0.69%로
극히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의 엡섬 선거구에서 국민당의 폴 골드스미스 후보를 13,921 대 9,398 표로 꺾고 당선돼 원내 정당으로 남는 데 성공했다.
정당지지율 0.22%로 ACT당의 1/3에도
못 미친 연합미래당의 피터 던 후보는, 오하리우 지역구에서 노동당의 버지니아 앤더슨 후보에게 단 930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어렵게 승리해 역시 원내 잔류에 성공하기는 했다.
ACT당과 연합미래당의
이번 결과는, 뉴질랜드의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 군소 정당이 득표 능력이 있는 유력한 후보자를 가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징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4%가 넘는 지지를 받았지만 원내 진출에 실패한 보수당에게는 뼈 아픈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이들 3개 정당을 연합정부 수립 시 필요한 ‘만약을 대비한
보혐용’으로 삼고 있었던 가운데 보험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들 모두 우익 성향의 정당인 만큼 지금처럼 연정에 나설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적인 결과 발표는 오는 10월 4일(토) 오후 2시에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