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 교민이 다른 교민을 만나 주고 받는 대화를 소개한다.
교민A: 우리 어머니가 어제 모임에 갔다 오시더니 이제 노인회를 열어도 되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한번 주도해 보시라고 격려해 드렸죠. 오늘은 우리 옆집 키위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와서 이러는거에요. “저 앞에 내놓은 쓰레기통 너네거니?” 그래서 내가 “아니다, 나는 너네거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했더니 옆집에 물어본다면서 갔어요.
교민 B: 나는 어제 팔목 다친데 재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이러는거에요. “너 전번에 엑스레이 찍었니? 니 기록에 없는데?” “그때 니가 한번 두고 보자고 해서 안찍었다.” 그랬더니 “팔이 어떠니?” 하고 묻길래 “니가 만지니까 좀더 아픈것 같다.” 그랬죠. 그런데 나중에 이웃 교민을 만나 얘기하니까 무조건 엑스레이 찍어달라고 요구하라고 그러드라구요.
이 대화에서 두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발견한다.
우선 두사람 다 다른 한국인과의 대화를 전할때는 보통 쓰는 방식대로 간접화법을 이용하다가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의 대화에는 자동적으로 직접화법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영어를 직접화법으로 번역할때 말투가 완전한 반말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밖에는 통용되지 않을 수준의 말투이다.
언제 어떤 연유로 해서 이런 부자연스러운 전달 방식이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이것이 뉴질랜드뿐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교민들 사이에 남녀노소, 학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만연해 있는 실태를 바라보며 여기에 따르는 몇가지 문제점을 재기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기를 바라는 차원으로 이글을 쓴다.
우리말과 달리 높낮이가 없는 언어를 다 반말로 해석해버리는 것은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 전혀 맞지 않을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무례를 범하는 처사이다. 그 외국인의 말이 반말로 해석된것은 그사람의 의도와 전혀 상관 없는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사람이 한국말의 높낮이를 이해한다면 자기말이 상대방에 의해 그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해석된다는것에 또 상대가 자기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는것에 대해 상당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사람은 자기가 예의를 갖추어 하는 말이 상대방의 문화에 맞게 적합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또 상대방이 자기에게 적합한 예의를 갖추어 얘기해주기를 마땅히 기대할것이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또 무슨 감정이 있길래 그사람을 그렇게 비하하는가.
외국 서적을 번역할때 그 언어에 높낮이가 없다는 구실로 가족관계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다 반말로 통일한다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화가 치미는 일이겠는가? 예를 들어 며느리가 시부모님한테 “너네가 오늘 마중 나갈래?” 라고 번역한다면?
일상의 관계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존경받는 목사님, 연로한 의사 선생님등을 언급하면서 마치 어린애 다루듯한 말투를 사용하는것은 성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전부 존대말로 해석하는것이 훨씬 경우에 맞고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같은 한국인일때와는 달리 외국인의 말을 옮길때 굳이 직접화법을 쓰는건 어떤 심리에서 연유하나? 왜 ‘옆집 할아버지가 그게 우리거냐고 묻던데요’ 라는 식으로 말하지 못하는가? 어쩌면 애초에 이런 방식의 말투를 쓰게된 배경이 백인에 대한 심각한 열등의식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이렇게 반말을 씀으로서 그들과 대등해지는듯한 착각에 빠진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금할수 없다. 지금 떳떳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한국 교민들이 그런 유치하고 초라한 발상을 이어나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요즘처럼 국제간의 인간 관계가 개방되어 있는 시대에 이런 전달 방식이 실질 생활에서 큰 실례를 초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교사와 학생, 부부, 친구등의 관계에 제삼자가 끼어 별 생각없이 몰상식한 언행을 저지를수 있다. 흔한 예로 당신 교회에서 알고 지내는 교인의 남편이 외국인이라고 하자. 만일 당신이 그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옮기는것을 그 부인이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것인가? 더군다나 당신은 삼십대이고 그 부부는 오십대라고 한다면?
만일 그 교인의 연로한 시부모님이 다른 교인 C의 옆집에 살고 계시고 C가 그분들과 한 대화를 당신에게 옮길때 그렇게 마구잡이 반말을 사용하면 당신은 이 상황에서 잘못된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것인가?
아이들의 교육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어른들이 외국인 앞에서는 예의 갖춰 대하다가, 심지어는 자기의 뻣뻣한 교장 선생님 앞에서 90도 꺾어 인사까지 해놓고 나중에 그분을 마치 어린애 취급한듯한 말투로 전달하면 아이들의 눈에 어른이 위선 덩어리고 우습게 보이지 않겠는가? 아이들의 잘못된 언어 사용을 나무라고 고쳐주어야 할 입장에 있는 어른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의 선생님을 무시하는 말투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런 행태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함으로서 한 세대의 그릇된 습관이 다음 세대로 아무런 걸러짐 없이 넘어가 악순환 되는 실정을 생각해 보자.
해결은 간단하다.
우선 제일 기본적인것은 어떤 사람의 말을 전달하고자 할때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그자리에 없거나 언어가 달라 자기를 변호할수 없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이부분을 먼저 염두에 두면 잘못을 자각하고 바른 언어 생활을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것이다.
외국인의 말을 전함에 있어 우리말을 전할때처럼 간접화법을 사용하면 반말 존대말의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없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 될것이다. “너 엑스레이 찍었니?” 라고 물었다라고 하는 대신 ‘내가 엑스레이 찍었느냐고 묻던데요’ 라는 식으로.
꼭 직접화법을 사용해야 한다면 우리 어법에 맞도록 존대말을 쓰자. “이 쓰레기통이 당신네건가요?” “아닌데요, 당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하는 식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 교민들이 이 잘못된 관행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행하고 있었던 언어폭력을 없애는데 함께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박경숙 Christchurch, New Zea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