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집권 국민당이 예상보다 크게 노동당에 앞서기는 했으나 뉴질랜드 제일당의 선택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갈리게 됐다.
<국민당 승리 속 노동당의 선전과 군소 정당의 몰락>
9월 23일(토) 치러진 총선 결과 국민당은 46.0%의 지지율로 모두 58석(지역구41+비례17)의 의석을 차지한 반면 노동당은 당초 총선 직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여주었던 지지율보다는 다소 낮은 35.8%를 기록해 45석(지역구29+비례16)을 가져가게 됐다.
한편 뉴질랜드 제일당은 7.5% 지지율로 비례대표로만 9석을, 그리고 5%가 넘을 지 관심을 끌었던 녹색당은 5.9%를 기록해 역시 비례대표로만 7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정당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또한 ACT당은 전국 지지율은 0.5%에 불과했지만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대표가 오클랜드의 엡섬(Epsom) 지역구에서 당선돼 비록 1석의 미니 정당이지만 주요 4개 정당을 제외한 군소 정당 중에서는 유일하게 원내 정당이 됐다.
반면 기존에 2석을 가지고 있던 마오리당은 7개의 마오리 투표구에서 노동당 후보들에게 전패한 데다가 정당지율도 1.1%에 그쳤다.
또한 ‘The Opportunities Party(TOP) 역시 2.2%의 정당지지율을 얻었지만 지역구 당선자가 없어 이들 2개 정당은 지지율 5% 이상이거나 1석 이상의 지역구 당선자를 내야하는 최소 규정에 미달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당과 노동당 등 2개의 대형 정당을 제외한 군소 정당에서 배출된 의석이 모두 17석에 불과해 지난 1996년에 혼합비례대표제(MMP)가 도입된 이래 가장 적은 숫자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는 존 키 전 총리가 작년 말에 갑작스럽게 정계를 은퇴한 후에 아던 노동당 대표의 깜짝 등장으로 한때 크게 수세에 몰렸던 국민당으로서는 선방 이상의 성과를 낸 것으로 자평하고 있으며, 노동당 역시 앤드류 리틀 대표 시절만 해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과치를 도출해 현재 양당 대표를 포함한 당 관계자들은 모두 희색이 만면한 입장이다.
또한 녹색당 역시 떨어져나가던 지지층의 이탈을 최소하하는 데 성공해 의석 수는 비록 이전의 14석에 비해 절반까지 줄었지만 원내 정당으로 계속 남을 수 있게 돼 역시 당 관계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제일당 대표인데, 그는 MMP라는 국내 정치체제를 가장 유효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지금까지 정가에서 오뚜기처럼 버티고 있는 인물이다.
선거 결과가 이처럼 나오면서 국민당과 ACT당이 연합하면 현재의 집권당 정부는 59석이 되는 반면 노동당과 녹색당은 52석이 돼 양쪽 모두 집권을 위해서는 제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킹메이커로 등장한 윈스턴 피터스>
그러나 유세 중 피터스 대표를 공개 비난했던 ACT당 세이모어 대표가, 국민당과 제일당 연립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보여 총선 이후 뉴질랜드 정계는 정권 수립을 놓고 당분간 복잡한 흐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상대로 킹 메이커로 부상한 피터스 제일당 대표는, 연정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이번 총선이 가져온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겠다면서 특별투표 결과가 나오면 마음을 결정하겠다며 한껏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다.
지난 2005년 선거 후에도 당시 연립정부 구성에 제일당의 협조가 필요했던 헬렌 클락 노동당 정부는 피터스 대표가 요구한 노년층의 '슈퍼골드 카드(SuperGold Card)' 도입 외에 그에게 각외 외교장관이라는 희한한 직책까지 줘가면서 연정을 성사시킨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후 2008년 선거에서 국민당 돌풍 속에 타우랑가에서 사이먼 브리지스(Simon Bridges) 국민당 후보에게 대패한 뒤 제일당이 정당지지율에서 4.07%에 머물면서 자신은 물론 당 자체가 3년 동안 원외로 밀려나는 아픔을 톡톡히 맛보기도 했다.
이후 2011년 선거에서 정당지지율 6.8%로 기사회생하면서 8명의 자당 비례대표 중 하나로 국회에 돌아온 피터스 대표는 지금까지는 국민당의 연정 구성에 그가 별로 필요하지 않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15년 3월에 현역 의원 신분으로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됐던 노스랜드에서 이번에 다시 지역구 후보로 나섰지만 국민당의 매트 킹(Matt King) 후보에게 1만3686표 대 1만2394표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피터스가 자신을 포함한 9명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새로운 정부 구성에 열쇠를 쥔 킹메이커가 되면서, 향후 그가 연정 참여를 조건으로 어떤 요구를 국민당이나 노동당에 들이댈지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선 고지에 오른 멜리사 리 국민당 의원>
한편 오클랜드 마운트 앨버트(Mt. Albert) 지역구에서 제이신다 아던 노동당 대표와 맞붙었던 멜리사 리(Melissa Lee) 국민당 의원은 7443표를 얻어 1만 9378표의 아던 대표에게 밀렸지만 비례순위 31번으로 4선 의원 대열에 오르게 됐다.
반면 오클랜드 어퍼 하버(Upper Harbour) 지역구에서 국민당의 폴라 베넷(Paula Bennet) 부대표와 겨뤘던 진안(Jin An) 노동당 후보는 8740표를 얻어 1만 7514표를 얻은 베넷 후보에게 뒤졌으며 비례대표 순위도 53번이어서 당선권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또한 비례대표 순번 배정 없이 오클랜드의 노스코트(Northcote) 지역구에 녹색당 후보로 나섰던 레베카 정(Rebekah Jaung) 후보는 1916표로 국민당의 조나단 콜맨(Jonathan Coleman) 후보(1만6392표)와 노동당의 새넌 할버트(Shanan Halbert) 후보(1만 823표)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특별투표 결과에 따라 약간의 변동도 가능>
이번 선거에는 모두 217만 9668명의 유권자가 투표해 78.8%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이는 2011년 총선의 74.21%, 그리고 직전 선거였던 2014년의 77.9%보다 높은 투표율이다.
이날 투표자 중에서 9866표는 무효표로 기록됐으며, 6만1375표의 해외부재자 투표를 비롯한 특별투표(special votes)는 총 투표의 15%에 상당하는 38만4000표에 달했으며 계속 개표가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특별투표 결과를 포함한 이번 총선의 최종적인 공식 결과는 오는 10월 7일(토)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Electoral Commission)에 의해 발표되는데, 현재까지의 상황에 비춰보면 각 당 간의 의석 구성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과거에도 정당간 지지율에 일부 변화가 나타나면서 1~2석의 의석이 조정된 전례가 있는 데다가 이번 특별투표자 숫자가 지난 2014년보다 10만 여명가량 많아진 것으로 알려져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