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 끝에서 남섬 끝까지 걸었던 김혜림씨, 그녀와 남섬 트래킹 코스 중에 마주쳤던 김동욱이라는 청년이 있다. 김혜림씨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김동욱 청년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Te Araroa Trail 을 걷다가 길 위에서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지구에서 한국 반대편 뉴질랜드에서 두번째 만난 것이었다. 김혜림씨가 북섬 통가리오를 걸어 지났을 때, 둘은 이미 한 번 마주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동욱 청년, 그는 왜 Te Araroa Trail 을 걷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만의 걷기는 어떠한 내용으로 꾸려졌을까?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정리했다.
워킹홀리데이로 입국해 기스본에서의 일이 끝날 즈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여행을 계획
2016년 8월에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로 입국해서 9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Gisborne에서 일을 하며 인생의 경험을 쌓던 김동욱 청년, 그는 일이 끝나갈 즈음,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을 할 때 항상 여행 컨셉에 대해서 생각하는 편인데 어떤 여행을 할 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하는 것처럼 유명관광지 다니고, 투어도 하고, 기념사진 찍고, 맛있는 것 먹고.. 이것도 너무 좋지만 그는 조금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혼자 여행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검색했고 'wild'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혼 후 자신을 놓아버린 한 여자가 혼자서 PCT를 걸으면서 자기 과거를 되돌아보고 치유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고 정말 감명 깊게 봤다. 김동욱 청년은 ‘와..이거다’하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후 여행 컨셉을 트레킹으로 잡았고, 열심히 검색한 결과, 뉴질랜드의 '9 Great walks'라는 걸 알게 됐다. '이 9개의 트랙을 전부 걷는 여행을 하자.' 라고 다짐했다. 사실 PCT같은 긴 트레일을 걷고 싶었지만 그나마 비슷한 걸 찾은 게 9 Great walks 였다.
'Lake Waikaremoana track' 에서 처음으로 overnight 트래킹을 해보다.
일이 끝나고, 대충 50불짜리 싸구려 등산가방 하나 사서 Gisborne에서 가장 가까운 'Lake Waikaremoana track' 을 걸으러 갔고 생전 처음으로 overnight 트래킹을 해봤다. 첫 날, 물통에 물 받는 걸 잊어버리고 4시간동안 물 없이 침 모아서 삼켜가며 언덕을 올랐다. 산장(Hut)에 도착을 했을 때는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던 뚱뚱한 아저씨를 만나 '여기 reception이 어디에요?' 라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더니 그 사람은 ‘얜 뭐지?’ 하는 표정으로 봤다. 산장에 처음 가봤기에 그곳이 설마 선착순이라곤 생각못했었다.
버너나 가스, 침낭이 필요한지도 몰랐기 때문에 간식으로 가져갔던 초코쿠키 두 봉지랑 건포도가 주식이 됐고 이걸로 2박3일을 버텼다. 돌이켜보면 정말 멍청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첫 트레킹을 끝냈다. 잠깐 휴식하는 와중에 갑자기 마지막으로 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마지막이라고 인사하러 와주신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코리아포스트에 혼자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 기사를 봤다는 말이 생각이 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찾아봤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히 Te Araroa Trail 에 대해서 알게 됐다.
Te Araroa Trail, 더 자세히 알아볼수록 매력이 느껴졌고 2주간 북섬을 여기저기 여행 하면서 많이 고민했다. 평소에 등산이라곤 담쌓고 살아온지라 관련지식이라곤 ‘산에는 나무가 있다.’혹은 ‘올라갈수록 춥다.‘ 라는 것 뿐인 상태에서 걸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들고 다니는 스틱에 김동욱 청년이 직접 조각한 테아라로아
'Tongariro Northern Circuit'에서 김혜림씨를 처음 만나다
결국 그는 남섬 행 티켓을 끊었고, 이미 이전에 계획해뒀던 'tongariro northern circuit'만 마무리하고 남섬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혜림씨를 숙소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 김동욱 청년이 건네줬던 겨우 2불짜리 초콜릿쿠키를 김혜림씨가 엄청 고마워했었는데, 훗날 그가 걷기를 하고 나서야 그녀가 그것을 왜 그렇게 고마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통가리로를 떠올리면 또다른 기억으로 트랙에 들어서자마자 가방끈이 양쪽 다 끊어져서 2일 동안 42kg을 손으로 들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는 김동욱 청년은 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고 말한다.
Te Araroa Trail 남쪽 끝 Bluff를 2월 17일 출발해 4월 24일 Shipcove에 도착
남섬으로 가는 날을 기다리는 동안 돈 털어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10만원이 넘는 좋은 가방을 사고, 나머지 캠핑용품들은 warehouse에 가서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2월 17일. Te Araroa Trail 의 남쪽 끝 시작 지점인 Bluff에서 첫 발을 뗐다.
▲남섬 남쪽 끝 Bluff에서 출발하기 직전 한 컷
Te Araroa Trail을 걷게 된 동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정도이다. 김동욱 청년은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서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생에서의 도전! 이나 펀딩같은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남들 다하는 여행을 조금 특이한 루트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섬 남쪽 끝 Bluff에서 출발하기 직전 한 컷
다른 이들은 ‘그게 뭐야 시시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단한 이유가 없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Te Araroa Trail을 걷는 동안 정말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글로 감히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배웠고, 생각했다.
절대 닿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Shipcove에 4월24일, 딱 9주 만에 도착을 했고 테아라로아를 따라 걷는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걷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들은 너무 많아서 하나만 정하긴 힘들 것 같다는 그는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행복해서 웃었던 일들, 괴로워서 울고 싶었던 일들이 너무 많다고 기억한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아름다왔던 'Richmond Range'
▲리치몬드까지 걷고 찍은 신발 사진
그래도 그 중에서 고른다면 정말 괴롭고 힘들고 외로웠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김동욱 청년은 말한다.
북쪽으로 걷는 TA walker들에겐 남섬에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Richmond range'에서의 일이다.
처음 트랙으로 들어가는 날부터 비가 왔고 일주일간 비가 올 예정이었지만 계속 기다릴 수 없기에 무작정 출발을 했다.
비 때문에 도착이 늦어질 걸 대비해서 음식을 더 충분히 챙기고 싶었지만 너무 작은 슈퍼마켓이었고 음식이 많이 없었다.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빨리 통과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에 heavy rain이 예정돼 있어서 첫 번째 Hut에서 총 2일을 묵었다. 이 때까진 괜찮았다. 다음날, 비 맞으면서 산행을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오지 않아서 힘들지 않게 도착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날, 강 하나를 건너야 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불어있었고 그거 하나를 건너는데 거의 20분이 걸린 것 같았다. 건널만한 곳을 찾는 것도 힘들었고 허리를 넘는 강은 두 달 동안 건넜던 모든 강을 통틀어서 처음이었다. 무사히 건너기는 했지만 건너자마자 털썩 주저앉아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 후, 갑자기 비가 강해졌다. 같은 날 높은 봉우리를 하나 건너야 했는데, 건너는 동안 안개 속에서 비바람을 계속 맞아야 했다. 비가 오면 높은 고지엔 안개가 끼는데 그럼 mark들이 안보여서 지도에 의존해서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바람까지 많이 불면 손이 얼어서 폰을 만지는 것도 힘들기 때문에 엄청 고통스럽다. 그래도 다행히 비슷한 경험을 한 번 겪어봐서 침착하게 건널 수 있었지만 정상에서 다시 내려갈 땐 너무 추워서 뛰어 내려갔다.
이 트랙 안에 있는 게 너무 무서웠다. 마치 트랙 안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헛 안에서 창문을 통해 하늘에서 퍼붓는 비를 보고 있으면 몸에 한기가 들었고 불어난 강을 건너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냥 이 트랙이 무서웠다. 트랙에서 당장 나가고 싶었다. 정말 지도로 다른 길로 빠져서 도로로 나가는 길까지 알아보기도 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헬기를 타고 이 트랙에서 구조되는 상상을 백 번도 넘게 했다.
배는 고픈데 음식은 부족하고.. 정말 울고 싶을만큼 괴로웠고, 남들은 남섬에서 최고의 트랙이라고 하는 이 좋은 트랙에서 왜 나는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비가 일주일이나 온다는데 무작정 들어온 제 자신이 미웠고 후회됐다. 보통 2~3일이면 갈 거리를 김동욱씨는 5일이 걸렸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강을 7번 건너면서 가야 하는 날,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강이 5일 동안 불을대로 불어서 한 번 건널 때마다 다리를 풀어야 했다. 물살이 미치도록 강했고 4번째로 강을 건널 땐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짓을 두 번이나 하면서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건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한데 그 땐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입술을 꽉 깨물고 ‘이 길 밖에 없다 무조건 이번에 건넌다.’라고 혼잣말하면서 건넜다. 그때 정말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것 같다. 다시 건너라고 하면 가운데 손가락을 들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진 일정 때문에 식량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고 상하기도 했다. 흰 곰팡이가 핀 식빵을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아낀다고 하루에 한 장씩만 먹었다.
그래도 다행히 점점 날씨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간절히 바래왔던 햇볕이 몸에 비칠 때 그 행복감은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트랙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때서야 ‘아 내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트랙을 걷고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주일만에 처음 만난 사람이 선뜻 자신의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테아라로아 여행 중 가장 오래 걸렸고 가장 힘들게 건넌 트랙인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머릿속과 가슴 속에 아주 깊숙하게 와 닿았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그래서 김동욱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Richmond range'에서의 트래킹을 뽑고 싶다고 했다.
남섬 Te Araroa Trail에서 김혜림씨를 만나고 너무 놀라다
그는 김혜림씨를 만났을 땐 정말 놀랐다. 그렇게 빨리 만날 줄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북섬 통가리오에서 처음 만났을 땐 일반 여행자로 만났었는데 TA walker로 트랙 위에서 만나니까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반가웠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에 절대 왔던 길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버리고 그전 날 머물렀던 헤밀턴헛으로 발걸음을 돌려 남쪽 끝으로 걷는 김혜림씨와 함께 걸었다.
둘이 함께 걷는 동안 머리로 번역해서 영어로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좋았고 돌아가는 몇 시간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헛에 도착해서는 불도 지피고 서로 음식도 공유하고 그 동안의 이야기도 하고.. 마침 비가 와서 그런지 헛에 둘 뿐이어서 그냥 산장에 놀러온 것 같았다. 매일 해가 빨리 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잠들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8월 즈음 한국으로 귀국 예정
5월 19일 김동욱씨는 TA(Te Araroa Trail)을 마무리한지 벌써 3주나 지났다고 말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Picton과 Blenheim, Nelson, christchurch를 추가로 2주 정도 여행했고 Sydney에 1주일 여행 다녀온 후, 5월 18일 Wellington에 도착했다. 19일까지 웰링턴을 여행하고 20일에는 예전에 일했던 뉴질랜드에서의 고향 Gisborne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는 그는 8월쯤에 오클랜드로 돌아가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다.
걷기 후유증으로 다리가 아직까지도 조금 좋지 않지만 그래도 크게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잘 마쳐서 후련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아주 정말 아주 조금 아쉽기도 하다고 김동욱 청년은 말한다.
작고 가까운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힘이 생겨
짧고도 길었던 9주를 혼자 걸으면서. 혼자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부모님 생각, 군대 간 동생 생각, 한국에 있는 친구들 생각,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들, 기스본에 있는 뉴질랜드 가족 생각.. 평소엔 항상 옆에 있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지독하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보니까 항상 옆에 있어줬던 내 주변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동안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성껏 표현하지 못했던, 부끄럽다는 핑계로, ‘또 기회가 있겠지‘ 라는 나태한 생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중에 후회 없게 충분히 표현해야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내일 당장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발 한 번 헛디디면 죽을 수 있는 산길이 많더라구요." 김동욱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또한 크게 느낀 한 가지로 행복이란 건 특별한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 백패커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 아니 정말 그저 세제로 그릇을 씻을 수 있다는 것조차 정말 행복하게 다가왔다고 그는 말한다.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나려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보다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서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동욱 청년은 글 쓰는걸 좋아해서 TA를 걷는 동안 매일 밤 썼던 일기를 블로그(http://mygood5327.blog.me)에 사진과 함께 옮겨놓았다고 말했다.
*사진 및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준 김동욱 청년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