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창 춥던 겨울, 필자는 친구와 함께 어두운 밤길에 드라이브를 나섰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목적지 없이 음악 볼륨을 한껏 키우고 밤길 드라이브를 자주 나서고는 했다. 아마도 그러한, 사뭇 무의미한 행동들이 작품을 만드는데 영감을 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이 날은 필자의 친구와 필자 모두 대화가 뜸하게 이어졌고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에 심취하여 있었다.
한창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정신을 맡기고 있었는데 필자의 눈에 자동차 전조등의 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노란 바탕에 진한 검정으로 왼쪽으로 향하는 화살표 여러 개와 65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는 도로 표지판이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듯이 그 표지판의 왼쪽으로 향하는 화살표는 왼쪽 코너를 말하는 것이고, 65라는 숫자는 65킬로미터 이하의 속도로 코너를 돌아야 안전하다는 지침이다.
필자와 필자의 친구는 조용히 그 코너를 진입하여 빠져 나갔고 그 다음에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자동차 전조등이 비추어 주는 것들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시야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그 단 하나의 표지판만 믿고 안전하게 코너를 돌아 나간다는 행동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자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만약 도로 표지판이 주는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누가 장난으로 반대로 뒤집어 놓았다면? 물론 어리석게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이러한 생각 속에서 다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태어나서부터 배우고 자란 모든 것들을 어떻게 보면 한치의 의심 없이 아직까지 믿고 사는 것은 아닐까?
보편화된 문화적, 사회적 사상들을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아무 의심 없이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생각들이 복잡하게 필자의 머릿속에서 얽혀 돌아 다녔다. 그렇게 10~20분이 지났을 즈음 필자는 어느 한가지 결론에 도달 하였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흑이 있으면 백이 있는 것처럼 서로 상반되는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논리에서는 흑의 부재에서는 백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즉 의심이 없는 상황에서는 믿음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의심 없이 믿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심지어 우주도 생성 초기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서로 같은 양으로 존재 하였다. 물론 아직 확실히 밝혀내지는 못하였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서 물질만 남게 되어서 현재 우리가 사는 우주가 되었지만.
필자는 필자의 이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를 원했고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아까 본 그 도로 표지판이 적당하다고 판단, 며칠 후 다시 그 자리로 가 필자의 자동차 전조등으로 빛나는 그 표지판을 촬영 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필자가 현대 미술로서의 사진의 간단한 예로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자주 써 먹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