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소설 <향수>의 주인공처럼 초인적이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냄새를 잘 맡는다. 누가 어떤 꽃 향기의 향수를 뿌리고 왔는지, 케이크에 들어간 바닐라가 진짜 바닐라 엑기스인지 아니면 싸구려 양산품인지. 가끔씩 주변 사람들로부터 개코라는 말도 들으니 나름 인정도 받은 셈이다.
사람의 감각 중 제일 섬세하고 예리하며, 동시에 가장 오래 보관되는 기억은 후각이라고 한다. 인간은 냄새의 동물인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향기에 예민했고, 향기가 나는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엄마의 향수를 몰래 뿌리다가 피부가 살짝 녹아서(!) 얼굴에 반창고를 붙여야 했던 때도 있었고, 바나나 냄새가 나는 비누를 호기심에 한 입 베어먹었다가 곧바로 토해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나의 향에 대한 애착은 계속되고 있다. 향수를 시향(試香)하러 돌아다니기도 하고, 퍼퓸 오일을 사 모으기도 한다. 특히 여자를 위한 향수는 종류도 많고, 포장도 무척 예쁘게 되어 있어, 이럴 땐 여자인 보람이 있다. 선물도 향수 선물을 종종 받을 때가 있기에 딱히 필요하거나 원하던 것이 아니라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딱히 정해놓고 사용하는 향수는 없다. 그때 그때 있는 것을 쓰고, 그마저도 잊어버리고 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가진 향수들은 대개 오랫동안 덩그러니 방치되곤 한다. 향수가 가진 향에 미안할 따름이다.
오히려 향수보단, 퍼퓸 오일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냄새 저 냄새가 섞인 향수보단 한 가지의 향만을 진하게 간직하고 있는 오일이 더 마음에 드는 탓이다. 오일 한 방울을 뿌리고 머리를 빗으면 머리카락 전체에서 그 날 하루 내내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실수로 한 방울 이상 쓰게 되면 온종일 방향제 괴물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향을 뽑아내고 섞어서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신기하면서도 아쉬웠다. 만약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확실하게 진로가 정해졌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향들은 늘 변함없이 일관적이지만, 그 향들을 순수하고 불순물 섞이지 않은 형태로 파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밀포드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장에 갔을 때였던가. 중동에서 온 자칭 향수 상인이라는 아저씨가 온갖 향이 나는 오일들을 팔고 있었다. 전통 방식으로 증류해 얻은 오일들로, 향수 겸 방향제로도 쓸 수 있다며 자랑해서 몇 병 사 들고 왔는데, 세상에. 거짓말이 아니었다. 병을 열자마자 향기가 삽시간에 방 안에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말 제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데오드란트 스프레이의 화학적인 냄새를 무척 싫어했던 나는 그 오일을 향수처럼 바르고 다녔고, 그래서 상기한 대로 방향제 괴물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딜 가나 풍기는 향기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제일 좋아하는 향들은 장미향과 자스민향, 그리고 멜론향이다. 아쉽게도 멜론 냄새는 먹을 것 이외에는 맡을 수가 없지만 멜론향 향수가 나온다면 기꺼이 사용할 의사가 있다.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의 냄새를 늘 맡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하지 않을까.
장미와 자스민은, 글쎄……왜 좋아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좋다. 사실 향기에 ‘꽂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저 어렸을 때 이 두 꽃향기에 반했고, 그 취향이 쭉 변치 않은 것뿐이니까.
이런 데선, 난 정말 일관적인 인간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