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에 보이는 험프리스 성 바위에는 햇빛이 비치는데, 모자 위에는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우박과 센 바람이 트레킹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하더니, 조금 후에는 완전히 함박눈으로 바뀐다. 저 멀리 폭포가 보여 카메라를 꺼내려고 배낭을 내렸더니, 배낭 위에 눈이 잔뜩 쌓여 있다. 저 산 아래로 보이는 짙은 구름 가운데 군데군데 뚫린 구멍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려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쏟아지는 눈이 녹아 트랙 좌측에 있는 벼랑 위에서 물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완전히 폭포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전에 쓰던 땀 복 같은 비닐 비옷을 처분하고, 얼마 전에 새로 장만한 고어텍스 재질의 비옷이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서 이런 기후를 오히려 즐기며 갈 수 있다. 끈을 잡고 건너야 하는 부메랑 슬립(Boomerang Slip)은 산사면이 크게 무너져 내려 생긴 장소다. 아직도 낙석을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명이 갈 경우 한 명씩 건너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홀리 산장(Holly Hut)이 가까워 오자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강하게 듣다. 따뜻한 햇빛을 즐기기 위해 비옷을 벗어 배낭에 묶고는 산장으로 향한다. 산장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시내에 물이 많이 불어 있다.
시내를 뛰어 건너기 위해 돌 위에 올라서는데, 미끄러져 허리까지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때문에 아직 체력과 시간이 남았지만, 2시간 30분쯤 걸릴 포우카이 산장까지 가려던 일정을 줄여, 오늘은 홀리 산장에서 묵기로 했다.
태양열 발전기와 석탄 난로, 그리고 광에 가득 쌓여 있는 잘 마른 장작이 믿음직스럽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는 바지, 속옷, 모자, 장갑, 비옷, 배낭, 그리고 신발을 천장에 매달리고 점심 준비를 한다. 점심을 먹고는 침낭 속에 들어가 있으니, 따스한 행복감에 웃음이 나온다.
물에 빠져 홀딱 젖는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주 깊은 산속에 있는 38인용 침대가 갖추어진 태양열 저택(?)에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특별한 수 밖에 없다.
홀리 산장 ~ 돔 ~ 벨스폭포 (왕복 1시간30분의 사이드 트랙)
잠시 눈을 붙이고는 오후3시30분경에 일어나 보니 옷이 벌써 잘 말라 있다. 근처에 있는 왕복 1시간 30분의 벨스(Bells) 폭포 트랙으로 가 보았다. 트랙 상태는 좋지 않지만, 가는 도중에 보이는 아름다운 산의 정상과 더 돔(The Dome)이라 불리는 봉우리, 그리고 아름다운 벨스 폭포와 함께 아기자기한 트랙이 펼쳐져 있다. 숲과 풀이 머금은 물기에 신발과 옷가지가 젖어 다시 널어놓고 저녁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