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바둑이

0 개 1,198 수필기행

■ 최 현숙 


내 방 벽에는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이사를 해도 같은 위치에서 눈을 맞추는 사십 년 지기 룸메이트다. 검정 바탕에 배와 목덜미로 하얀 털빛이 조화로운 강아지 한 마리. 오래 보아도 볼수록 정이 가는 작품이다.


나는 녀석을 바둑이라 부른다. 그림을 본 순간 최순우 선생이 쓴 수필의 주인공이 연상되어 붙여준 이름이다. 낭독을 듣는 반 학생들을 감동으로 글썽이게 한 아름다운 글 ‘바둑이’. 그것은 한국전쟁 중 선생이 경복궁 사저에 두고 간 강아지와 다시 만난 반가움을 쓴 수필의 제목이다. 잘 익어 고개 숙인 조 이삭 아래 순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은 강아지가 내 눈에는 꼭 글 속의 주인공처럼 보인 것이다.


바둑이를 만난 것은 H중학교에 근무하던 1980년대 초. 2학년을 담임한 그해, 아이는 부반장이었다. 천방지축인 또래들과 달리 눈에 띄게 풀죽은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가끔 지각하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짠한 마음에 따끔하게 나무랄 수가 없었고 아이도 늦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어디가 얼마나 아프신지 물을 수가 없었다. 한창 민감할 나이 아닌가. 그러구러 학년이 끝나고 지각을 제외하면 부족할 것 없는 모범생으로 아이는 졸업반이 되었다.


학기 초 새 담임이 아이의 신상을 물어왔다. 부모상담 여부를 묻는 연륜 높은 선배의 말투에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인데 자녀교육에 이렇게 관심이 없으니 이유를 알아서 도움을 주는 것이 책임 있는 교사라는 질책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아이 환경에 맞는 생활지도를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은 풋내기였다. 아픈 엄마 얘기를 술술 풀어내고 싶도록 믿음을 주는 담임이 되지 못한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카시아 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토요일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는데 사환아이가 손님을 모시고 왔다. 반백의 머리에 어딘가 품위가 느껴지는 손님은 자신이 내가 2학년 때 담임했던 아무개 아버지라고 했다. 학교생활을 입 밖에 내지 않던 아이가 가끔 선생님 얘기를 하더라고, 덕분에 아이가 안정을 찾은 것 같아 꼭 한번 뵙고 싶었다고 했다. 때늦은 상담자리가 거북했던 나에게 아들을 잘 보살펴 줘서 감사하다며 두고 간 액자가 저 그림이다. 그분이 중등학교 교재에 삽화를 담당하는 화가라는 것을 손님이 다녀간 뒤에 들었다. 부인이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계시다는 것도.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이후로 바둑이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심심할 때면 바둑이와 눈을 맞춘다. 기쁠 때는 기쁨으로 우울할 때는 위로의 눈빛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 저 오랜 친구가 내 눈에는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수필 속 바둑이를 닮았다. 어쩌면 교재에 실렸던 글 ‘바둑이’의 삽화와 나의 바둑이는 같은 작가가 그린 형제가 아닐까. 그래서 그림을 보는 순간 그 글의 제목이 생각났던 게 아닐까. 망설임 없이 바둑이라 이름 지은 까닭이 우연은 아니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두 녀석이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요즘 들어 바둑이와 부쩍 친해졌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바깥나들이가 줄어든 만큼 만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림 속 주인공 너머로 스치는, 수줍게 움츠린 아이와 적막한 아버지의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 구석 짠하게 자리 잡은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분신인 그림을 선뜻 내어준 아버지의 마음. 그것이 그림에 문외한인 나와 저 바둑이를 사십 년 지기 친구로 만들어준 고리가 아닐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물며 마음에 눈에 남아있는 인연임에랴. 나에게 저 바둑이는 세상 누구의 그림도 넘보지 못할 명작이다. 그것은 거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스며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최 현숙 


9ac25b26670b63a798337d18b5613361_1643676878_1094.jpg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58 | 3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2 | 3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1 | 3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6 | 3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60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2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5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2 | 5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5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53 | 5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8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3 | 10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4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2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4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6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4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7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3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10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