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의 복이 늦복이리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복중의 복이 늦복이리라

room4ken
0 개 1,323 김지향

파미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갈수록 파미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파미 생활에 익숙해져서 모든 것이 다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 가을이 나에게 주는 풍요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있다.


맛있는 단호박이 마트에 널려 있다. 단호박을 껍질 채로 뚝뚝 잘라서 씨를 발라내고 찜기에 쪄서 껍질 채로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 밤고구마처럼 목이 메는 것도 아니고, 포삭포삭한 식감에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전해진다.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다.


김치를 담글 때에도 찹쌀풀이나 밀가루 풀을 쑤는 대신에 단호박을 쪄서 사용하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배추김치 깍두기 갓김치를 담그면서 호박을 얼마나 찬미했는지 모른다. 올해는 김장을 좀 넉넉히 해야겠다. 


내가 이렇듯 살림살이에 재미를 느낄 줄은 몰랐다. 다 풍요로워진 마음의 덕일 것이다. 살아오는 내내 어깨에 잔뜩 짐을 지고 살았었는데, 그 짐이 사라진 까닭일 것이다. 그 짐 안에는 자식에 대한 책임감부터 여러 욕심까지 함께 들어 있었을 것이다.


살림도 한결 편하고 수월하게 한다.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취할 수 있을 만큼만 취한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도 아쉽지 않다. 오히려 축복으로 여긴다. 내 흰머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 또한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축복이다.


요즘 가게를 정리하면서 디자이너와 함께 재활용품을 버리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분이 나를 도와주었다. 다 도와주고 나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골라 놓은 박스를 들어서 내 차 안에 실어주었다.


디자이너는 그 곳에 자주 갔었는데, 자신을 한 번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면서 나를 놀려댔다. 내가 예뻐서 그랬단다. 하하.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다 내 그레이 헤어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즐기면서 사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몸과 마음으로 살면 그만이다. 들판의 작은 들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 또한 그리 아름다운 존재라는 자부심이 있으면 만사 ok.



지금의 나는 자부심의 끝판왕이다. 영어를 못해도, 나이가 많아도, 건강에 자신이 없어 병원 출입이 잦아도,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해도....... 그게 뭐 어떤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 나름대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잘 지내면 그만이지.


사적인 관계로 마음 상할 일도 없다. 하지만 세계 뉴스나 한국 정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소수 권력자들과 함께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혀를 차게 된다.


이제껏 인간의 역사가 다 그래왔겠지만, 판도라 상자에 있는 마지막 양심이라는 것도 다 팽개치고 적나라하게 권력을 구하려는 자들을 보면 역겹기 그지없다.


거짓 상식과 공정이 아직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그들. 거짓은 언젠가는 들통이 난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 쉬운 진실을 왜 그들은 모르고 설치고 날뛰는지 모르겠다. 똑똑한 머리를 못된 쪽으로만 발전을 시켜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이 불쌍하고 가엽다.


어제 세 딸들과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구름 또한 그림이 따로 없었다. 세 모녀는 구름을 보면서 고전 서양화에 나오는 구름들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스시집을 하고 있는 친구가 준 맛있는 스시를 먹을 생각으로 기분도 좋았지만,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하늘이 그림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하트를 마구 마구 뿌려주고 있었기에 더욱더 행복했다.


나는 그 가게의 스시를 무척 좋아한다. 15년의 노하우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맛있는 스시. 정갈한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 스시를 먹을 때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15년을 한결 같이 한마음으로 살아온 그녀. 그녀에게 내가 배울 점이 많다.


이렇듯 좋은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내가 참 복이 많다는 증거이다. 이런 복을 준 하늘이니 내 어찌 하늘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주는 대로 받고 땅이 주는 대로 얻으면서 살아가련다.


15년 힘겹게 버티면서 살아온 내 집 또한 나에게 있어서 복덩이다. 이 복덩이가 내 노후를 보장해 주고 있으며, 내 꿈 또한 이뤄주고 있다. 요즘 주말마다 이 복덩이를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데크 쪽부터 시작했다. 두 달 전부터 시작한 이 작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날씨 또한 우리 집을 위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바람이 심한 하루는 페인트 통을 폭삭 엎어버렸지만,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 덕분에 잘 수습이 되었다.


재즈 음악을 틀어 놓고 페인트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풀을 뽑으면서 텃밭의 채소들을 사용하여 맛있는 간식과 식사 준비를 했다. 이런 행복은 내가 살면서 내내 꿈꿔왔던 현실이다. 소박하지만 이 행복을 누리기에도 평생이 걸렸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 내일이 그날이다. 벌써부터 신이 난다. 집이 얼마나 좋아할까? 나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 집이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이 집을 잘 가꿔서 좋은 용도로 사용해야겠다.


언니의 작품들로 이 집을 장식할 예정이다. 다리가 아픈 와중에도 판화 작업을 하러 작업장에 나가려는 언니를 막을 방도가 없어서 그냥 조심하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언니의 열정을 우리 집에 그대로 저장하고 싶다.


겔러리를 겸한 B&B를 운영할 계획이다. 어제 온 손님이 자신의 조카가 디자인과 애니를 전공해서 일본에서도 2년 동안 지냈었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 묵게 된 걸 기뻐했다. 그녀의 기쁨이 곧 내 기쁨이었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아버지의 기억력은 바닥을 항하고 있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전화 통화로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박재란이 부른 ‘산 넘어 남촌에는’ 뿐이다. 그 많았던 노래들 다 잊어버리시고, 오직 그 노래 한 편만 부르신다. 


내가 죽었는줄 알았단다. 보고 싶다고, 아버지 죽기 전에 한 번 보자고. 사흘 전에 전화를 드렸을 때도 똑같은 말을 하시더니. 정신력이 강하신 아버지도 세월 앞에선 그저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 순간까지도 곧 지워져버리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안락사가 허용이 되는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게 감사했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복까지 받았으니, 늦복이 터진 것이 확실하다.


복중의 복인 늦복을 실컷 누리다가 떠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아니 놀이를 할 것이다. 


어제 나가서 사 온 수건으로 부엌에서 사용하는 손닦이 수건을 만들 것이다.


eaf445003a688a63d9ec3c7504e3eebe_1652223007_6424.jpg
 

남편이 안 입는 체크무늬 반바지를 잘라서 오븐 장갑을 만들었는데, 조금 남은 천으로 두 개의 부엌용 손수건을 만들어야겠다.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번진다. 노후의 복은 이렇게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겠지.


감사하다. 내가 노후의 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되기 전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모든 걸 그냥 버리지 않고 업싸이클링을 하려는 마음이 있어, 그 또한 감사하다. 소박한 것들을 즐기면서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그 또한 감사하다.


이 모든 감사가 나에게 늦복을 선물한 것 같아, 하늘과 땅, 이 세상 전체에 감사하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늦복 중에 늦복이려니.

  

 “과연! 늦복이야말로 복중의 복이로구나!”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705 | 16시간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251 | 3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278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40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49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13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399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73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398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298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00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55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78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01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 더보기

뉴질랜드 법과 일상생활 – 고용관계

댓글 0 | 조회 517 | 2024.10.23
지난 칼럼까지 수회에 걸쳐서 뉴질랜드… 더보기

지팡이 짚고 해탈(解脫)?

댓글 0 | 조회 202 | 2024.10.23
유난히도 햇볕 찬란한 지난 6월 어느… 더보기

청소년 정신건강 “Care to Self-care” 프로젝트

댓글 0 | 조회 174 | 2024.10.23
지난 9월, 리커넥트 청소년 정신건강… 더보기

음식이 익어가듯 마음을 숙성시킬 수 있다면

댓글 0 | 조회 100 | 2024.10.23
보늬밤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산… 더보기

32. 유산균제보다는 김치를 이렇게 먹어봅시다

댓글 0 | 조회 423 | 2024.10.22
장건강을 지키는 가장 핵심은 유익균을… 더보기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댓글 0 | 조회 248 | 2024.10.22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이제 우리들은 조… 더보기

사무실 복귀 명령

댓글 0 | 조회 1,087 | 2024.10.22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기업문화에… 더보기

잎이 진 자리엔 새순이 돋는다 - 시험이 두려운 그대에게

댓글 0 | 조회 177 | 2024.10.22
세면장 한켠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 … 더보기

걸리는데 10년, 낫는데 10년

댓글 0 | 조회 599 | 2024.10.22
여기 계신 000 회원님은 전생에 고… 더보기

노인의 날과 경로의 달

댓글 0 | 조회 366 | 2024.10.19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더보기

THE World University Ranking 2025

댓글 0 | 조회 1,083 | 2024.10.10
영국의 권위 있는 세계대학 평가기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