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 前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종훈 스님
완연한 봄이라 부르기엔 아직 바람이 시리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푸른 새싹들이 곳곳에서 깃발처럼 피어난 3월의 어느 날, 과천의 한 사찰에서 종훈 스님을 만났다.
시작의 순간은 늘 그렇게 애매모호한 기대와 불안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종훈 스님은 템플스테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던 시기, 2006년 부터 2010년까지 총 4년간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수장으로서 그 모호한 양단의 여정을 묵묵히 지나온 증인이다.
안으로는 템플스테이 운영의 기틀을 잡고, 국경을 넘나들며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 스님은 벌써 십여 년이 훌쩍 넘은 그때의 마음을 2022년 봄의 어느 날 따뜻한 차 한잔에 담아 들려주었다.
스님께서 생각하신 템플스테이의 상(像)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당시 템플스테이 슬로건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그 말처럼 불교를 믿건, 믿지 않건 누구나 절에 머물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돌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랐어요.
사회적으로 병을 낫게 하는 건 병원이지요. 하지만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중간 단계가 있습니다. 조금만 케어하면 충분히 일상으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는데, 그 단계를 방치하면 환자의 영역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삶의 질과 금전적 손실,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맙니다.
그래서 국민의 심신을 일상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의 산사(山寺)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꼭 맞았습니다.
이후 운영에 적합한 사찰들을 지정하고, 사람들이 쉬고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했지요.
당시 진행하신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템플스테이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정부와 이야기하며 연차사업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을 했어요. 한국의 간화선 수행문화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건립된 국제선센터, 공주 전통불교 문화원(現 한국문화연수원)을 문을 연 것도 그때였어요.
33관음성지순례나 불교문화상품공모전, 또 사찰음식 대중화 사업도 그즈음 시작했고.
특히 처음에는 템플스테이가 뭔지, 그냥 절에서 먹고, 놀고,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큰일이었습니다.
템플스테이도, 사찰음식도 그 정신세계를 알리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게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진행하는 사람들도 힘들어지기 마련이니까요.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을 알리는 데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는지요.
당시 해외 홍보를 위해 국제 관광박람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어요. 가서 다른 나라를 보니 다들 이런저런 좋은 곳이 있으니 놀러 오라고만 해요.
그런데 우리는 스님들을 모시고 가서 선 수행, 사찰음식, 예불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1,70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의 정신,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려주려고. 엄청나게 큰 관심을 받았지요.
첫 박람회 참가부터 이후 매년 세계 어느 박람회를 가던 최고인기상을 많이 탔어요. 당시 전 세계적으로 힐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호응을 받았습니다.
사찰음식에 대해선 고민이 더 많았어요. 지금은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이 미쉐린 가이드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저 일반 음식점처럼 알려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홍보비가 조금 있었는데, 문화관광부, 언론, 외교관, 일반인들까지 모두 초대해서 무료로 맛을 보였어요. 다들 팔아야 한다고 했지만, 사찰음식이 어떤 것인지 알리는 게 우선이니까. 나중에는 입소문이 나서 빨리 정식 판매를 하라고 민원이 들어 올 정도였지요. 돈으로 집 짓고, 광고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예요.
하지만 템플스테이나 사찰음식은 그 정체성, 정신이 무엇인지 알리고 중심을 잡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템플스테이 20주년을 맞아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격(格)이라는 것이 있고, 세(勢)라는 것이 있어요. 국가 GNP, 세계 수익 몇 위 이런 것은 세력이지. 하지만 나라는 작아도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고, 그것을 잘 지켜나간다면 그것은 격이 높은 것, 진정한 부자 나라예요. 그저 개인 소득 몇만 불 이런 것만 중시하는 건 벼락부자, 졸부에 지나지 않지요.
선원(禪院)과 강원(講院)이 남아있는 나라, 아직도 불교의 원형, 본질적인 수행 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습니다.
사찰을 현대화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그 원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템플스테이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재미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사찰은 놀이공원이 아니니까.
재미로 템플스테이를 알리려는 건 마치 달콤한 초콜렛을 끊임없이 먹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재미가 없어도 좋은 곳, 사찰은 그런 곳입니다(웃음).
끝으로 지금 템플스테이를 만드는 사람들과 또 우리의 산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존재 가치가 없으면 서서히 소멸해 버리고 말지요. 인간도 자신의 숭고한 존재 가치를 잃으면 동물이나 진배없습니다. 템플스테이도, 우리의 사찰도, 불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고요하면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맑은 물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템플스테이입니다.
물 보면서 물멍, 불 보면서 불멍 요즘 많잖아요. 멍하게 있는 것. 마음 추스르고 비우는 것, 그걸 불교식으로 하면 바로 삼매라고 하는데, 템플스테이에 와서 만나게 될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거든요(웃음).
사찰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한 발자국, 또 사찰을 지키는 사람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 종훈 스님은 1971년 범어사에서 능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기획실장,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등을 역임 했으며, 현재는 과천 보광사 주지로 포교와 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