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과 고독의 시대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초연결과 고독의 시대

0 개 1,156 명사칼럼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 탓인가요? 저는 어릴 때에는 ‘체육’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급우 모두들이 보는 앞에서 뚱뚱한 몸둥이를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최악은 탈의실이었습니다. 저는 왠지 남들에게 제 맨살, 벗은 몸 보여주기가 거의 병적으로 싫었습니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제 ‘사생활’의 선과 사회가 설정한 집단성의 선이 서로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냈던 것인데, 저는 좀처럼 남자들끼리 서로 벗은 몸을 보여주어도 되는 사회의 ‘상식’에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최종 학위를 받아 군 면제가 되어서 다행이지, 이런 성격으로 병영 생활을 어떻게 했을 것인지 저는 상상 자체가 안갑니다. 


​소비에트 시대의 공중 전화기들은 거의 다 아주 두꺼운 부스 안에 위치하곤 했습니다. 역설이지만, “집단주의”를 내걸었던 사회는 역으로 그 공민들의 통화의 프라이버시를 나름 챙겼다고 봐야 합니다. 저는 1991년에 평생 처음으로 서울에서 부스 없는 공중 전화기를 보게 됐습니다.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개인적 통화를 엿듣게 되는 게 내 인권 침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계속 했는데, 제가 체류했던 한 한국 대학의 기숙사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아마도 저뿐이었을 것입니다. 한데 소련이 망한 뒤에 러시아에서도 점차 ‘비경제적인’ 공중 전화기 부스들이 그 족적을 감추게 됐습니다. 


​처음 14년 전인가 페이스북을 보게 됐을 때의 충격도 엄청났습니다. 저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 개인 사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개하는 가상 공간을 처음 본 것입니다. 모종의 대사회적 ‘의견 피력’형 포스팅들보다, 집안, 아이, 음식 사진이나 비디오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띄곤 했습니다. 처음에 그걸 보고 그냥 어리둥절했습니다. 정식으로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의 사진이나 비디오를, 초상권 관련의 아무 절차도 없이 페이스북 등에 기재하는 부모들이 아동권 침해를 하는 게 아닌지, 계속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권리’ 차원보다 이 사생활 공개의 ‘의미’가 너무너무 궁금했습니다. 내가 먹은, 아니면 먹으려는 음식을 촬영해 공개하면 나 본인이 좀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식량 섭취 과정은 그 본질상 분비 과정 만큼이나 개인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남에게 내 먹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남들의 먹는 소리를 그다지 듣고 싶지도 않는데... 그러나 ‘먹방’이라는 한국어 신조어가 이미 영어나 러어 사전에도 외래어로서 들어간 지금에 와서는, 이런 생각들은 아마도 엄청나게 ‘구시대적’일 겁니다.



​후기 자본주의의 개인은 ‘초연결’의 삶을 살면서 그 사생활 관련 제반 권리들을 스스로 반납하곤 합니다. 사생활 장면 하나하나를 SNS에 올리고 남들이 보고 듣는 데에서 휴대폰으로 들으란 듯이 통화하고 늘 휴대폰으로  연결이 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동 통신이 혹시나 갑자기 없어지면 그냥 아주 기쁘게 제 젊은 시절의 옛 ‘정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제 아이들만 해도 휴대폰과 SNS 없이는 아마도 하루라도 살아가기가 힘들 듯합니다. 그런데 초연결 시대의 인간들의 이 자발적인 ‘사생활 반납’의 저변에는 ‘고독’의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습니다. ‘페친’들이 수천 명 되고 인스타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얻어도, 이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서 뭔가를 내주고 희생할 수 있는 진짜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세계와 ‘연결’돼 있지만, 누구와도 ‘친밀’하지 못합니다. 물론 특히 성적 의미의 ‘친밀 관계’들이 - 성이 인간에게 1차 욕구인 만큼 - 그들에게 종종 생기지만, 그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파트너싶들은 대개 단명입니다. ‘노동자’에서 ‘소비자’로 그 정체성을 바꾼 후기 자본주의형 인간은, 친밀한 관계도 최신 아이폰처럼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관계 초기의 단맛을 만끽하고 나서 관계 유지를 위한 비용 (시간과 에너지, 인내심 발휘 등)을 지불하는 대신에 기존의 관계를 해체시키고 새 관계를 맺어 그것도 ‘소비’하는 것입니다. 단기 이익 위주로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시회답게, 인간 관계에서도 장기 투자보다 단기적인 ‘인간에 대한 소비’가 선호되는 것이죠. 


​초연결 사회, 사생활 공유의 ‘쿨함’은 단기성 위주 삶 속에서의 고독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매분 매초에 SNS을 확인해도 고독을 잊기란 궁극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원자화의 정도가 높은 노르웨이 같은 사회만 해도, 아마도 20-30년이 지나면 공장 노동자보다 내면이 병든 동료 시민들을 치료해야 할 심리학자와 상담사, 정신 질환 전문가, 그리고 인생코치 등의 수는 훨씬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봐야 이런 사회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 박 노자


07fe08c652f10c3fa71565e424f8b69c_1660094348_5577.png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57 | 2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2 | 2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0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6 | 2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59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1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4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0 | 4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4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51 | 4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7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2 | 10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3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2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4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6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4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7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3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10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