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제자리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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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수명, 제자리걸음

0 개 1,025 박명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최대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삶은 허락했지만 죽음을 피할 능력은 주지 않았으므로 이 세상에서 생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의 결실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아 저 세상으로 떠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밟는다.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노화•장수학자들은 현대인들의 성장 발육이 24-25세에 완성되며, 그 발육기간의 5배가 인간의 한계수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인간은 120-125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 건강에 관심이 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과민하다. 그러나 이에 걸맞은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제자리걸음이다. 기대수명(期待壽命, Life expectancy at birth)이란 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생존연수(平均生存年數)를 말한다. 건강수명(健康壽命, disability adjusted life expectancy)은 기대수명에 수명의 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유병기간)을 차감한 수명기간을 말한다. 건강수명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실제로 건강하게 산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건강지표다.

 

요즘 100세 시대를 맞아 ‘99•88•1•2-3•4’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일(1) 또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살다가, 노환(老患)으로 2-3일 정도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만나고 또한 유언(遺言)도 남긴 후 죽음(4)을 맞이하는 행복한 일생을 말한다. 이에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을 추구하고 웰다잉(well-dying)을 소망한다.


 ‘2022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期待壽命)은 83.5세을 기록하여 일본(84.7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평균(80.5세)보다 3년 긴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연합(UN)과 통계청에 따르면, 2065-2070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90.9년으로 노르웨이(90.2년), 핀란드(89.4년), 일본•캐나다(89.3년) 등을 제치고 OECD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세계적인 장수(長壽)국가로 꼽히는 일본에서 평균수명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영향으로 작년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21년 일본인의 평균수명’에 따르면, 일본인 남성의 평균수명은 전년보다 0.09년 짧은 81.47세, 여성은 0.14년 감소한 87.57세를 기록했다.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지난 2020년까지 남성은 9년 연속, 여성은 8년 연속으로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이번에 감소로 돌아섰다.

 


작년 일본인의 평균수명 감소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한 탓이다. 일본의 대표적 일간신문인 요리우리신문(讀賣新聞)은 코로나19 탓에 작년 사망자가 전년도의 약 5배인 1만6700여 명에 달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명 감소는 남성이 0.1세, 여성은 0.07세 정도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東日本大地震)에 의한 사망자 증가로 평균수명이 감소한 적이 있다.

 

지난 2010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80.2년으로 OECD 38국 중 21위였으나, 10년간 3.3년이 연장되면서 순위가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교육 수준 향상에 따라 일반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크게 높아졌으며, 의료 시스템이 고도로 효율화되었다. 우리나라 병상(病床) 수는 인구 1000명당 12.7개로 OECD 평균(4.3개)의 약 3배에 이르며,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치지만,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4.7회로 OECD 평균(연 5.9회)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의료 접근성이 뛰어났다.

 

보건복지부가 ‘OECD 보건통계 2022’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단 2.5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4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0명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의료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국민들의 더 좋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욕구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2006년 4899만명에서 2021년 5173만명으로 약 6% 증가했지만, 의료 수요가 많은 65세 이상 인구는 453만명에서 871만명으로 거의 2배로 늘어났다. 건강보험 총진료비 중 65세 이상 고령층의 진료비 비율이 40%가 넘는다. 이를 감안하면 의료 수요가 적어도 20-30%는 늘어났을 것이다. 보건의료의 중심인 의사를 양성하는 국내 41개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2006년 이후 올해로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의대(醫大) 정원을 늘리거나 의과대학을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의사협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35년 의사 인력이 최대 1만4631명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여러 이유를 대지만 의사가 많아지면 수입이 줄 것이라는 염려가 가장 크다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의사의 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으로 OECD 최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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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도로 효율화된 의료 시스템이 장점이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건강보험(健康保險) 체계에서 낭비 요인이 발생하면서 재정 부담이 가속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네 병•의원에서 검사한 뒤 대학병원에서 중복으로 검사를 하고, X레이를 찍어도 되는데 굳이 MRI(자기공명영상)를 찍는 등 과잉 진료가 일상화돼 있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도 많다.

 

우리나라의 CT(컴퓨터단층촬영)도 인구 1000명당 250건으로 OECD 평균(147건)보다 훨씬 많으며, 국민 1인당 의약품 판매액도 760달러로 OECD 평균 547달러에 비해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1인당 경상 의료비(3582달러)는 지난 10년 간 연평균 6.9%씩 증가하여 OECD 증가률 3.3%의 2배를 넘었다. 이에 건강보험료의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국이 건강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고지표가 되도록 2000년 6월 세계 각국의 건강수명을 산정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건강수명은 종래 발표해 오던 기대수명(평균수명)에 삶의 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상태를 반영시킨 것으로, 질병의 경중에 따라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빴던 햇수를 산출하여 이를 전체 기대수명에서 뺀 것이다.

 

한국인 건강수명은 65세로 세계 191개국 중 51위였다. 1위는 일본으로 74.5세였으며, 2위는 73.2세인 오스트레일리아, 3위는 73.1세인 프랑스, 4위는 73세인 스웨덴이었다. 미국은 70세로 24위, 중국은 62.3세로 81위, 러시아는 61.3세로 91위, 그리고 북한은 52.3세로 137위를 기록하였다. 건강수명이 가장 짧은 국가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Sierra Leone)으로 25.9세였으며,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의 건강수명이 짧게 나타났다.

 

2018년 기준 한국인 기대수명은 82.7세(남자 79.7세, 여자 85.7세)이며, 건강수명은 64.4세로 2012년의 65.7세에 비해 더 짧아졌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 받은 기간(유병 기간)을 제외한 ‘건강수명’은 66.3년에 그쳐, 2012년 조사(65.7년)에 비해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우리 국민은 기대수명 83.5년 가운데 17.2년은 질병, 사고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대수명 세계 1위인 일본의 경우,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등 꾸준한 건강관리가 생활화되어 ‘아프지 않는 노년’이 일반화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건강관리 습관이 부족해 장수에 따른 의료비 부담도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자살사망률(2019년)은 한국이 인구 10만명당 25.4명으로 OECD 평균 11.1명의 2배가 넘는 압도적 1위이다.

 

60세-80세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분류하면 활기 있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노인은 약 20%이며, 대다수를 차지하는 60%는 자신의 나이에 맞는 평균 몸 상태를 보이며, 10%는 홀로 생활하기 어려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머지 10%는 요양원에 있거나 집에서 누워만 있는 노인들이다.

 

직업이 있거나 일을 하는 노인들은 대다수 활기 왕성하다. 노동은 사회참여 강도가 크기 때문에 일을 통해 건강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실시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퇴직 이후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노인의 경우 퇴직 후 전업이든 부업이든 일을 하는 동년배보다 건강이 나빠졌다.

 

은퇴하거나 일을 하지 않으면 외출과 교류의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사회 참여 건수를 늘리는 것이다. 즉, 인생 후반기에 소속된 단체나 정기 친교 모임, 종교 활동, 봉사 활동 등의 건수가 늘수록 신체와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은퇴 후 어떤 활동을 할지 고민이 있으면 지역사회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복지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을 제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실제로 사람들과 외부활동을 하면 생기가 솟고, 외출을 통해 길거리를 잘 알게 되면 주시 능력과 인지 기능이 좋아진다. 또한 여가활동이 많을수록 기억력 감소가 적고,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치매 발생률이 낮아진다. 자신이 준비한 노후자금보다 의료비가 더 많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후에는 건강이 가장 중요한 ‘재테크(財tech)’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인의 건강수칙(正食, 正動, 正眠, 正息, 正心)을 생활화하면 성인병이라고 부르는 생활습관병(life-style related disease)을 예방하여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정식(正食)이란 하루 3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알맞게 먹는 것이다. 짜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며 즐거운 식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이 평생 동안 먹는 음식의 양은 약 25톤에 달하며, 인체는 이 음식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므로 균형 잡힌 식생활이 건강한 삶의 근원이 된다.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로 하루에 30분간, 일주일에 5일정도의 규칙적인 운동이 정동(正動)이다. 운동은 유산소•근력•유연성 운동을 적절히 배합하며, 준비운동-본 운동-정리운동의 과정을 지켜야 한다. 정면(正眠)을 지키기 위해 하루 7-8시간의 쾌적하고 깊은 양질의 수면을 취하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현대인의 호흡은 얕고 짧은데, 이것을 깊고 길게 해야 한다. 흉식호흡(胸式呼吸)을 복식호흡(腹式呼吸)이 되도록 연습하여 제대로 숨을 쉬는 정식(正息)이 되도록 한다.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정심(正心)이다. 마음속에 분노, 불안, 질투, 강박관념 등 부정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으면 결코 건강할 수 없으므로 용서하고, 감사하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도록 한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雩南 李承晩, Syngman Rhee, 1875-1965)는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에게 “욕심내고 화내고 남을 미워하는 것이 건강에 제일 해롭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늘 말했으며,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비결은 언제나 마음을 편안히 갖고 잠을 잘 자는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 서거 57주기를 맞아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 7월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모식(追慕式)에서 추모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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