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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더우다네가가라!” 무슨 말인지 알겠는지요? “내 더위, 다 네가 가져가라!”라는 경상도 말이다. 오래전, 미국에 살았을 때 핼러윈의 장식을 처음 보고는 별걸 다 하는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때까지 사람들이 저리도 즐기는구나 싶어 삶의 여유에 놀랐다. 가게 바깥에 엄청나게 쌓아 놓은 누렁호박을 보고 미국사람들이 호박죽을 그리 즐기는가 하고 생각했었다. 커다란 누렁호박의 속을 파내고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눈·코·입을 도려낸 뒤 속에 촛불을 켠 잭오랜턴(Jack-O’-Lantern)’은 하루를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돌아다녀 보았다. 재미있었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치는 ‘트리커트릿(trick or treat)’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상하고 귀신같은 핼러윈 코스튬을 사느라고 돈을 쓰는 것을 보고 그때는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한 번 입고 버릴 것을 사다니 말이다.
나는 어려서 부채가 전부였던 시절에 자랐다. 문종이 위에 대나무를 쪼개어 가늘게 다듬어 만든 살을 붙이고는 그 위에 또 문종이를 붙여 말리면 그런대로 부채가 되었다. 합죽선(合竹扇)인 것이다. 문종이는 문에 바르는 종이(창호지)라고 한지(韓紙)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지는 아주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지만 물에는 약했다. 겨울에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틈에 풀을 발라 붙였는데 그게 문풍지였다. 바람이 세게 불면 부르르 떨리며 소리를 내곤 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한 여름에 더워 땀을 흘리면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등과 목에 땀띠가 총총 붙은 채 살았다. 그 땀띠가 톡톡 쏘면 찬물을 퍼 부어야 했다. 엎드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목으로 물이 내려가게 등짝에 물을 퍼 붓는 것이 등물이고 즐거운 피서였다.
일을 하느라 땀이 나면 증발하면서 열을 앗아가니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이런 한 여름의 더위에 고생하지 않도록 정월대보름에 한 해를 준비하면서 부럼을 먹고 또 친구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다 네가 가져가라!’하고 더위를 팔았다. 어찌 보면 참 나쁜 일이기도 하겠다. 그리 된다면 그 친구는 여름을 어찌 나겠는가? ‘트리커트릿’은 ‘사탕 안주면 골탕’, ‘까까 아니면 꺼져’, ‘먹을 걸 안주면, 해코지할 거야!’, 혹은 ‘사탕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할 수 있으려나? 집집마다 한 바구니 가득 사탕을 사 두어야 귀여운 봉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별로 앨러지가 없는 나도 어떤 때는 눈물이 나고 재채기를 심하게 하는 수가 있다. 요즈음 무슨 일인지 앨러지로 몸에 이상한 반응이 생겨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토피(atopy) 질환이라고 한다. 석유화학제품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밀가루나 계란을 먹으면 앨러지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있나보다. 우유 앨러지도 있다. 초콜릿이나 젤리, 사탕에 그런 성분이 있으면 앨러지가 있는 아이들을 둔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다. 미국 어린이 13명 중 1명은 식품 앨러지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핼러윈의 사탕하나도 배려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FARE(Food Allergy and Research)라는 단체는 식품 앨러지가 있는 어린이를 위해 “청록색 호박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어떤 집에서는 앨러지 친화적인 쿠키와 과일 스낵을 나누어 줄 계획이라는데 가족들은 문 앞에 청록색 호박을 놓아 안전한 과자를 담아 두었다는 것을 알리고 또 집을 온라인 지도에 추가할 것이라 한다.
2007년에 나온 핼러윈을 소재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 ‘Trick or Treat!’은 핼러윈에 벌어지는 무서운 사건들과 핼러윈의 금기를 깬 사람들을 응징하는 ‘샘’이 나오는 공포영화다. 그 이전에도 무시무시한 핼러윈 영화가 더러 있었다. 핼러윈은 흔히, 유령, 마녀, 박쥐, 검은 고양이, 도깨비, 좀비, 악마, 거기에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문학 작품 상의 등장인물들이 떠오른다. 핼러윈 기간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이런 것들로 꾸미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좁아진 모양이다. 일본에서 핼러윈 축제를 하고 서울에서도 핼러윈 축제를 한다. 바이러스 때문에 갇혀 갑갑하던 젊은이들이 가을 저녁에 모여들었다. 10만도 넘는 인파가 모여 좁은 골목길에 뒤엉켜 순식간에 150여명이 압사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니 무슨 말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애도한다. 제발, 재발 방지대책은 잘 하도록 바란다.
핼러윈 같은 전통 문화는 계승할 가치가 있다.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 삶을 아름답고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그땐 나도 그랬다. 크리스마스쯤에 캐럴, 징글벨을 들으며 밤 골목을 쏘다녔다. 흰 눈이 내리기를 바랐고 누군가를 사랑하리라 했었다. 막연하나마 부푼 꿈이 있었던 나의 10대를 소환한다. 그래도 길바닥에서 죽을 위험은 없었다. 그 당시에 라디오에서 들은 애절한 그 곡의 제목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늘 같은 날에 딱 어울리는 그 곡, 타이스의 명상곡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