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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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해밀턴

0 개 1,555 한일수

인물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그러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결과의 축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20세기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근대사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로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제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면 영국의 수도 런던 중심에는 트라팔카 (Trafalgar) 광장이 있고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넬슨 제독의 중심에 엠마 해밀턴(Emma Hamilton, 1765-1815)이 있고 그녀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는 영국 역사에서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다. 엠마는 당대 영국 최고의 미인으로 꼽힌 예술인으로 초상화가 조지 롬니가 그린 그녀의 17세 때 모습은 성형 시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오리지널 미인의 정형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는 12살 때부터 남의 집 하녀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출신 성분 때문에 평생 하층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는 그녀에게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도래하기 시작한다.  


어느 배우 지망생을 만나 왕립극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당시 영국 사교계의 스타가 된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 쾌락의 대상물로 ‘천상의 침대’에서 모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고객이 침대에 누워 모델들이 발가벗고 춤추는 것을 보고 있으면 침대로 약한 전기 충격을 주어 고객이 쾌락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천한 신분의 미녀에게는 항상 사기꾼 건달이 달라붙기 마련인가? 15세 때에 헤리 경의 정부(情夫, mistress) 되어 파티가 열릴 때 식탁위에서 야릇한 옷차림으로 춤추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6세 때 헤리 경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나 버림받고 다시 찰스 그레빌이라는 백작 아들의 정부가 되지만 태어난 사생아는 친정집에 맡겨지게 된다. 상류층 인사들이 하류층 미인들을 정부로 삼는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이용 가치를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레빌은 초상화 작가인 친구 조지 롬니에게 엠마를 모델로 제공하고 모델료를 챙기는 수법을 쓴다. 그러나 이 그림들이 인기를 끌면서 엠마는 유명세를 타고 당대 최고의 미녀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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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 해밀턴


그레빌의 외삼촌인 윌리엄 해밀턴 경은 넬슨 제독의 상관으로 후손도 없이 부인과 사별하고 상심하며 외롭게 살던 중 55세의 나이에 자기의 삶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때 조카 그레빌의 권유로 엠마를 받아드리게 되고 엠마는 해밀턴 경의 정부가 되어 개인교사를 통해 이탈리아어와 노래를 배운다. 5년 후인 해밀턴 경이 61세, 엠마가 26세 때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엠마로서는 아버지 같은 신랑과 결혼하게 되었으나 레이디 해밀턴이 되었으니 신분과 명성이 한꺼번에 상승되어 고마운 일이었다. 나폴리 대사로 근무하고 있던 해밀턴 경은 열과 성을 다해 엠마를 지원했고 각종 행사에 동행하고 다녔는데 최고 미인으로 유명해진 엠마는 날개를 단 듯 했고 사교계의 스타가 되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예술가, 가수로서 공연에 출연하여 인기를 독차지했다. 


운명은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넬슨 제독은 35세 때 28세의 엠마를 해밀턴 경의 저택에서 만나게 된다. 엠마는 해밀턴 경을 최고의 남편이자 친구라고 표현 할만 큼 둘 사이는 좋았지만 아이는 갖지 못하였다. 한편 넬슨은 나일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박살내고 영웅이 되어 엠마를 처음 만난 지 5년 후에 나폴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넬슨은 전투에서 팔 한 쪽과 다리 한 쪽을 잃었고 치아는 거의 다 빠졌으며, 기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엠마는 해밀턴 경의 저택에 머무는 넬슨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며 넬슨의 40회 생일을 위해 손님만 1,800명가량 초대한 거대한 파티를 연다. 이 자리에서 자기와 넬슨의 관계를 마음껏 과시한 엠마는 넬슨의 비서로 활동하며 사랑에 빠져든다. “여자는 눈이 네 개가 있어 앞 눈으로는 자기 임자를 보고 있지만 뒤쪽 눈으로는 다른 남자를 넘겨다보고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묘하게도 해밀턴 경은 이를 응원해 주었고 세 사람이 한집에 함께 살면서 셋이 모여 하나가 되었다. 본국으로 소환된 넬슨은 임신한 엠마를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온다. 



넬슨 본 부인은 이미 대 스타가 되어버린 엠마의 그늘에 가리어 따돌림을 당했다. 1801년에 넬슨과 엠마의 사생아가 태어나고 엠마는 넬슨 가(家)에서  인정 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넬슨이 전쟁 중 가정을 비운 기간에도 넬슨 조카들의 학비를 내주고 결혼을 주선하는 등 집안을 관리하며 넬슨가의 믿음과 지지를 얻어냈다. 당대의 패선스타이자 예술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국의 대 스타로 살아가던 엠마였지만 38세 때 남편 해밀턴 경이 죽자 그레빌에 의해 저택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는 수 없이 불륜 관계였던 넬슨의 저택으로 가게 되는데 넬슨은 지중해 함대사령관이 되어 전선으로 떠난다. 넬슨이 떠나자 넬슨의 친척들은 넬슨의 저택과 재산들을 챙기면서 엠마를 압박하자 외로움에 시달려 음주와 과식, 도박에 빠져들었고 온갖 사치에 탐닉하게 된다.


1805년 10월 21일 넬슨은 스페인 남서 해안 트라팔카 만(灣)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와 싸워 대승을 거두고 전사(戰死)한다. 트라팔카 해전(海戰)은 살라미스 해전, 칼레해전, 한산도 대첩 등과 함께 세계 역사상 4대 해전으로 평가 된다. 영국 역사상 가장 호화롭게 국장으로 치러진 넬슨의 장례식이었지만 엠마는 참석도 허락받지 못했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낭비벽이 심하고 도박에 까지 빠져든 엠마에게 후견인이 되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 후 온갖 빚에 시달리며 넬슨의 유품, 소유물 등을 팔아 살아 가다가 1815년에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니 그녀의 나이 49세 때였다.        


엠마를 연구한 역사학자 제이슨 켈리(Jason M. Kelly)가 한 말이다. “귀족과 남자들의 권위로 가득한 세상이 신분이 천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옭아 메었다”. 남자들이란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법을 동원해 여자를 꼬드기지만 여자로 인해 본인한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여자를 외면하는 법이다. 숱한 남자들한테 이용만 당하면서 생을 이어갔지만 해밀턴 경과 넬슨 제독으로부터는 일말의 사랑이라도 받아 본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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