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지루한 역사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참으로 지루한 역사

0 개 873 명사칼럼

최고의 인재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식별할 수 있기를 누구나 기대했다. 그러나 세종 초년에는 과거제도 역시 본래의 목적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세종 즉위년(1418) 10월 7일, 대제학 변계량은 그 시대가 직면한 어려움을 두어 줄로 요약하였다.


“문과 1차 시험(초장)에서 강경(경서마다 한 장씩 지목하여 외우고 풀이하게 함)을 하도록 법을 바꾼 결과, 쓸만한 인재는 모두 무과 시험장으로 달아났습니다.”


선비들은 경전 공부를 무척 싫어했던 모양이다. 문과 응시자가 계속 줄어들자 좌의정 박은이 대책을 세웠다.


“앞으로는 무과도 <<사서>>를 통달한 사람만 응시하게 규정을 바꿔야 합니다.”


궁여지책이었으나 왕은 그 제안을 수용했다. (세종 1년 2월 16일) 그런데 사태는 막연히 짐작하였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세종은 성균관의 운영실태를 점검하고는 깜짝 놀랐다. 성균관에 나와서 착실히 문과시험을 준비하는 유생은 정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왕은 의정부와 육조와 상의하여 대책마련에 고심했다(세종 즉위년 11월 3일).


5bd7d680104091eca1bc2fb7a29d2ffb_1671492672_1466.png
 

우선 성균관의 재정부터 개선하기로 결심하고, 왕은 노비 100명을 하사하였다(세종 1년 8월 8일). 또, 선비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왕은 기회가 될 때마다 성균관의 학관과 유생에게 술과 어육(생선 및 고기)을 듬뿍 선물했다(세종 9년 11월 13일 등). <<사서>>와 <<오경>> 등 학습에 필요한 서적을 성균관과 오부 학당에 나누어준 것은 물론이었다(세종 5년 3월 15일 등).


이와는 별도로 성균관의 위생 수준을 높이는데도 정성을 쏟았다. 유생이 부종병에 걸려 사망하자 왕은 의원 2명을 성균관에 고정 배치하였다. 의원들은 성균관에 머물며 유생들의 건강을 돌보았다(세종 3년 8월 24일). 그리고 공조에 명하여 성균관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각각 5칸의 온돌도 깔았다. 아울러 선공감에 지시하여 목욕탕도 새로 짓고 유생들이 공부할 걸상(판등)도 80개나 만들었다(세종 7년 7월 19일).


이처럼 다방면에 걸쳐 큰 노력이 거듭되었으나, 성균관의 운영은 정상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세종의 번민이 깊어졌다. 그때 우사간 박관이 개선책을 제시했다.


“40세 미만의 생원들을 학당과 향교에서 가르치는 직임에 절대 임명하지 마소서. 그들이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쉽게 벼슬길에 나가는 길을 막으소서!”


왕은 그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했다(세종 5년(1423) 11월 9일). 그러자 성균관에 기숙하는 유생들이 늘어났다. 적절한 정책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시일이 흐르자 성균관을 학문의 요람으로 만들려는 왕의 결심에 감동한 관리도 나왔다. 성균관 주부 송을개는 새로 학칙 시안을 만들어 왕의 면학(勉學, 학문에 힘씀) 정책에 호응하였다. 그의 제안에는 특이한 점도 있었다. 학교마다 <선부(善簿)>와 <벌부(罰簿)>라는 두개의 장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여씨향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데, 효성있고, 우애하고, 친척들과 화목하며,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돕는 유생을 비롯해 명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선부>에 기록하자고 제안했다. 반면에 공부에는 힘쓰지 않고 풍속을 어지럽히는 행위만 하는 이들은 모두 <벌부>에 적자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 학교는 2권의 장부를 각 도의 감사에게 보고하고, 감사는 다시 이조와 예조에도 알리자는 것이었다. 이조는 관리를 임명할 때마다 그 기록을 참조하고, 예조는 과거시험 때마다 행실이 나쁜 사람에게는 응시기회를 주지 말자는 의도였다. 



세종은 송을개의 제안에 깊이 공감했고, 의정부에 타당성 검토를 의뢰하였다. 얼마 후 나라에서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 명령하여, <선부>와 <벌부>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세종 19년 7월 10일) 하지만 영원 한 것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선부>와 <벌부>는 조선의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공정한 평가는 세종 때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훗날 중종 때 <<향약>>이 전국에 널리 시행되면서 <선악적(善惡籍)>이 다시 등장하였다. 주민의 선행과 악행을 기록해 두었다가 ‘신상필벌’을 하겠다는 뜻이었는데,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하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항상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다.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많아도, 그게 과연 제대로 비운 것인지를 알 수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세상을 위해 정의의 칼을 휘두르라며 검찰의 무소불위(無所不爲, 무엇이든 다함) 권력을 키운 셈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연 얼마나 깨끗해졌나. 검찰이야말로 비리의 온상은 아닌가. 제가 하면 무엇이든 다 옳고 남이 하면 다 글렀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고 방식이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의 참 모습은 아닐까.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과거제도도 만들었고, 상주고 벌주는 제도, 범죄 사실을 수사하는 기관도 만들었으나, 참으로 지루하고 비루하고 지겨운 역사가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5bd7d680104091eca1bc2fb7a29d2ffb_1671492743_9809.jpg
 

■ 백 승종

한국학, 철학 박사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57 | 2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0 | 2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0 | 2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4 | 2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57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0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4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0 | 4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4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48 | 4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7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0 | 9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1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1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4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5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3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6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3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09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