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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부원
오늘도 역사 수업을 하다가 교실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게 된다. 강의에 대한 이해는커녕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아이가 많아서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우두커니 앉아 눈만 끔뻑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언뜻 가엾기까지 하다.
관개, 도래, 여세, 천도...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외워야 할 사건이나 인물 등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보통명사인데도, 이 평범한 단어들의 뜻을 모른다. 문맥을 통해 대충 의미라도 짐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적잖은 아이들이 ‘관개’와 ‘관계’를 혼동하고, ‘도래했다’는 말을 생소해했다. ‘여세를 몰아’라는 관용 표현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세라는 한자어의 의미를 모르니, 몰다는 동사를 자동차 등을 운전하다는 뜻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여세가 무슨 말이나 무기의 이름인 줄 알았다는 거다.
▲ 사비왕궁의 천정전. 왕과 신하들이 모여 국사를 논했던 곳이다
도읍지를 옮겼다는 뜻의 천도라는 단어조차 요즘 아이들에겐 낯선 모양이다. 뒤에 ‘하다’가 붙으니 동사일 것이라 짐작은 할 테지만, 의미는 별도로 알려줘야 했다. 아뿔싸. 백제의 도읍지인 사비가 부여의 옛 이름이라는 설명을 빼먹었더니, ‘사비로 천도했다’는 교과서 서술을 ‘개인 돈을 들여 도읍지를 옮겼다’고 이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글자는 읽지만 글은 읽어내지 못하다
이쯤 되니 역사 수업인지 국어 수업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업 시간에 국어사전을 교과서 곁에 두고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그때는 찾는 단어 옆에 병기된 한자를 겸사겸사 눈에 익히도록 주문했다. 비록 쓸 줄은 모른다 해도, 한자 뜻을 알면 단어의 의미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교과서 내용 중 모르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부러 찾아보는 아이는 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국어사전이라는 종이로 된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 대부분은 국어사전을 영어 번역기처럼 스마트폰에 기본 옵션으로 깔린 앱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는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조차 찾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의미도 모르는 마당에 맥락을 파악해 작가의 의도를 간파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족히 아이들 셋 중 한 명은 ‘글자’는 읽지만, 정작 ‘글’은 읽어내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들과 상담하거나 그들끼리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사용되는 단어의 종류가 단순하고 같은 말이 반복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나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게임 관련 용어를 제외하면, 고작 단어 몇십 개를 조합해 일상생활 전부를 설명한다. 교과서 수준의 어휘를 썼다간 자칫 의사소통에 애를 먹을 수 있다.
평소 사용하는 어휘가 많지 않다 보니, 그들의 대화 중엔 비속어가 쉽게 끼어든다. 대표적인 게 ‘개’라는 접두사를 붙인 형용사다. 아이들 사이에선 개멀다, 개좋다, 개맛있다라는 말이 시나브로 일상용어가 되더니, 이젠 어떤 단어에도 어울리는 ‘정도 부사’로 자리매김했다. 국어사전에 등재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심지어 서술형 답안지에도 스스럼없이 등장하는, 그들 사이에선 ‘표준어’다. 의미가 통하니 오답 처리하긴 뭣해 따로 불러 주의를 주곤 하지만, 몇몇 아이가 국어 맞춤법 시험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며 따지려 드는 통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러다 교과서 속 한자어가 비속어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기하급수적으로 줄임말이 양산되는 것도 난감한 문제다. 단어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면야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굳이 줄일 필요가 있나 싶은 짧은 단어들조차 또래끼리의 암호처럼 줄여 사용하고 있다. 잠시 쓰이다 사라지는 과거의 비속어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선생님, 공부 좀 하셔야겠어요”
버카충, 컴사, 현타, 까비, 스카, 뻐정, 취존, 빠유, 오링... 아이들의 대화 속에 숱하게 오가는 단어들이다. 단문에다 워낙 문자 보내는 속도가 빠른 탓도 있지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무시로 튀어나와 그들의 단톡방 대화에 끼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때마다 아이들로부터 “공부 좀 하셔야겠다”는 농담을 이따금 듣곤 한다.
버카충은 버스 카드 충전, 컴사는 컴퓨터용 사인펜,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 까비는 아깝다는 뜻으로, 그래도 이들은 세대를 넘어 나름 잘 알려진 말이다. 스카는 스터디 카페, 뻐정은 버스 정류장. 여기까지도 어찌어찌해서 따라왔다. 하지만 취존, 빠유, 오링에 이르면 굳이 이런 신조어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취존은 취향 존중, 빠유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바나나 우유를 부르는 줄임말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긴 단어들을 줄이거나 살짝 변형시킨 것이라 이해가 가지만, 오링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말이어서 ‘암기’가 필요하다. 오링은 지금 가진 돈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체 언제, 어떤 연유로 생겨났는지 불분명한 이런 신조어들이 소셜미디어를 넘어 수업과 시험이라는 울타리 안까지 치고 들어왔다. 질문에 대답할 때도, 보고서를 쓰거나 과제를 발표할 때도 속속 튀어나온다. 듣는 아이들 누구 하나 어색해하지 않는데, 오로지 나 같은 중년의 교사만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교과서에 쓰인 단어와 문장이 너무 어려워요. 다짜고짜 요즘 세대의 어휘력이 형편없다고 나무랄 게 아니라, 학습자의 수준과 현실을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교과서 속 기본적인 단어의 의미조차 몰라서 진도 나가기가 버겁다고 꾸짖었더니, 한 아이가 말을 끊으며 이렇게 되받아쳤다. 평소 잘 쓰지도 않은 단어들을 교과서에 잔뜩 실어놔 내용 파악도 안 될뿐더러 공부에 대한 흥미와 의욕을 잃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관개, 도래, 여세, 천도 등의 ‘어려운’ 단어가 역사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어휘력과 사고력이 정비례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뜸 ‘어려워서 읽기 힘든 글이 어떻게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휘력을 길러서 어려운 문장을 읽어내고 인식의 폭을 넓혀 성찰의 기회로 삼는 일련의 학습과 성장 과정에 대한 이해 자체가 달랐다.
문해력이라는 것
오늘도 수업 진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주어진 50분 동안 용어의 뜻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벅차다. 교육과정에는 성취기준과 수준이 명확히 제시돼 있지만, 과연 그것을 한정된 수업 시간을 통해 달성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성취기준과 수준을 더 낮추는 게 능사일 리는 없다.
예전엔 아이들 사이의 학업 역량 차이가 도드라져 보였는데, 요즘엔 전반적인 어휘력과 문해력의 하향 평준화가 더 큰 문제로 여겨진다. 기본적인 글의 맥락과 주제도 파악하지 못 하는 아이들에게 역사 수업은 무작정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국어 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역사 교육은 맹목이다.
이런 현실이라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과목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성취기준과 수준을 고려한다 해도, 교실 수업 대신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어와 수학, 사회, 과학 등 어떤 과목을 공부하든 일단 문해력이 갖춰진 뒤라야 의미 있는 배움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