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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편(學而編)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說은 悅과 같은 ‘기쁠 열’의 뜻이다. 그리고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 自遠訪來 不亦樂乎)”라는 말이 이어지는데 ‘즐거울락’이 나온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기쁘다’와 ‘즐겁다’가 비슷한 말이지만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쁜 것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의 마음속에서 울어 나오는 좋은 감정의 느낌이다. 즐거움은 더불어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 몸에서 울어 나오는 좋은 감정이다.
‘기쁨’의 반대 개념은 ‘슬픔’이고 ‘즐거움’의 반대 개념은 ‘괴로움’이다. 따라서 슬픔을 겪어야 기쁨의 가치가 증폭되는 것이고 괴로움을 겪어봐야 즐거움의 참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인 재미는 삶을 충만하게 해준다. 재미의 반대 개념은 매사에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무미건조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과 흥미를 북돋아 배우고 익혀 나가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고락(苦樂)을 같이 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면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민사회에서 말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되돌아본다. 현재 80세 이상이 되는 교민들은 세상에 나와 온갖 고초와 영광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에서 태평양 전쟁을 겪었고 광복 이후 혼란기와 미군정 과도기를 거쳐 독립정부 수립의 영광을 맛보았다. 그러나 3년도 못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다고 평가되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며 같은 동포끼리의 살육 행위를 목도했고 극도의 가난 속에서 몸부림치는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휴전 후 70년 동안 극심한 안보 스트레스 속에서 4.19, 5.16, 10월 유신, 10.26, 12.12, 5.18, 6.29를 맞이했다. 그동안 다섯 번의 통치 체제 변환, 다섯 번의 국기와 국가(國歌) 변환 등을 겪으며 농업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고 헐벗고 굶주림을 견디다 오늘날 풍요의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이제 인생 말년을 뉴질랜드에서 장식하게 된 처지로서 어떻게 남은 기간을 보내야 될지를 생각해본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나의 인생에 비추어 보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나는 108세를 목표로 생애 관리를 하고 있으므로 아직도 26년의 시간이 있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 그럭저럭 살다가 마감 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가정적, 사회적, 경제적인 멍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내 자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해보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생활 가운데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남은 인생을 재미있게 장식하는 일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노년기의 4고(四苦) 즉, 가난과 질병, 고독, 할 일이 없는 무위(無爲) 등 4가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위해서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학생이 수업 시간표가 있어 규칙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듯이 노년에도 시간표가 있어야 생활의 리듬이 지속되고 남은 인생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고 본다. 오전에는 매일 각종 클래스에 참여하여 한 시간씩 요가(Yoga), 필라테스(Pilates), 줌바댄스(Zumba Dance), 라인댄스(Line Dance), 스코티쉬 댄스(Scottish Country Dance), FITT(Frequency, Intensity, Time and Type) 등을 수련한다. 그 후 밀포드 비치로 향해서 맨 발로 물 속 걷기를 한 시간 반 정도 실행한다. 이 고정 프로그램은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거나 상관없이 실행한다. 오후에는 골프를 하거나 레저센터에서 근육운동, 수영, 사우나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매주 일회 피아노 레슨을 받고 집에서 수시로 연습하며, 사물놀이 반에서 징으로 참여하여 수련을 하고 공연행사에 합류하며 저녁에는 스코티쉬 컨트리 댄스 클럽에 나가 댄스를 수련하고 연간 수차례에 걸쳐 볼 파티(Ball Party)에 참여한다. 월2회 우표수집 클럽에 참석하여 강의를 듣고 우표를 감상한다. 주별로 종교행사에 참여하고 월 1회는 교민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각종 한류행사 때는 한글 서예로 참여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붓글씨의 묘미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프로그램 등은 의무감이나 목표 지향성에서 타율적으로 실행하는 게 아니라 게을리 하면 인생을 밑지는 기분이 들고,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이 꼭 건강을 도모한다거나 단일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을 도모하며 기쁨을 누리고 누구나 친구가 되어 같이 취미를 즐기며 생활하게 되는 계기도 되기에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엇이 되기 위해(Becoming), 무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식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인내하며 살아 왔다면, 지금 부터의 삶은 현재를 어떻게 행복을 가꾸어 가며 살아갈 것인가(Being)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 까? 건강한 노년, 은퇴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만하게 사는 것, 삶을 즐길 줄 아는 능력, 혈기 왕성한 새끼 고양이처럼 지칠 줄 모르고 노는 능력이라고 한다. 삶을 사랑하라. 사람은 사람에 의해 사람을 통해 사람을 사랑할 때 비로소 행복하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빅토르 유고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