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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장학퀴즈를 보고 다들 어찌 그리도 똑똑하고 많은 것을 아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 분위기를 띄워주면 “전국 고등학생들의 건전한 지혜의 대결, 장학퀴~즈!” 하는 차인태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는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시그널 음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한 동안 궁금했었고 장학금을 주는 선경그룹이 정말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1970년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때였다. 너도 나도 도시의 공장으로 떠났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 멀리 도시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외국은커녕 서울도 먼 나라 같았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고 국비유학생으로 외국에 가서 공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뜻을 두지도 목표로 삼지도 않으니 속은 편했다. 귀한 장학금은 쳐다볼 나무가 아니었다.
▲ 관정(冠廷) 이종환
작년에 100세가 되어 타계하신 관정(冠廷) 이종환 회장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셨다.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학병으로 입대한다. 경남 의령에서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이종환 회장은 14년 차이로 태어났다. 2002년 4월,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고 지금까지 1조7000억 원을 쾌척했다. 지원한 장학생 수는 2023년까지 1만2000여 명이란다. 총 장학금 지급액은 2023년에 27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규모는 국내에는 없다. 관정은 새로 치자면 한 번에 구만리를 날아 태평양도 단번에 건넌다는 대붕(大鵬), 알바트로스(albatros)다.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많은 재산을 쾌척한데에는 불행한 가정 사정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근면하고 검소하지만 가정은 화목하지 못했던 이 회장은 76세이던 2000년에 아내로부터 1000억 원의 이혼소송을 당했다. 그러자 420억 원대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후로 삼영중공업(주) 등 16개 회사가 있는 삼영그룹의 대부분을 재단에 출연한다. 특히나 이공계 영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는데 이들 중 누군가가 노벨상을 받았으면 한단다. 개인의 불행이 우황(牛黃)처럼 남에게는 소중한 약이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시장통에서 국밥이나 찌개 등을 즐겼다하니 검소하기 이를 데 없다. 있는 사람이 싸구려를 먹는다고 입방아도 많았지만 정작 당신이 안 쓰고 기부한 1조7000억 원은 그 위력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는 돈이다. 돈은 써야 느는 법이고 선한 일에 써야 그 끝이 좋다.
지난 12월, 의령군은 “정도(正道)가 결국 이긴다. 서로 용서할 줄 알아라”고 하신 고(故) 이종환 회장의 유언을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냈다. 경남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 있는 생가터에 ‘관정재(冠廷齋)’는 궁궐처럼 꾸며져 있다. 전통 기법으로 지은 관정재와 6채의 한옥 주위로 몇 백 년 된 소나무와 향나무, 그윽한 연못이 어우러져 궁궐인가 싶다. 의령군이 나서서 공원같이 꾸미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고 즐기고 배울 거리로 만들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했는데 의령군에서는 또 ‘관정 이종환 대로(大路)’를 명명했다.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고 예우하는 의령군이 돋보인다.
의령군은 또 전통K문화 체험과 함께 이 회장의 ‘삶의 역사’를 기록한 ‘관정갤러리’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에 개최한 의령부자축제 ‘리치리치페스티벌’에서는 이 회장의 ‘나눔 인생’을 조명하는 ‘부자주제관’을 만들어 고인의 생전 업적을 관광객들에게 알렸다. 의령도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 많을 것이다. 그래선지 이종환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을 묶어 대기업 창업주 생가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또 의령 관문을 따라 부자이야기 전설이 흐르는 솥바위와 이종환·이병철 두 분의 생가를 뱃길로 연결하는 특별한 ‘고급 관광’을 K-관광 중심 콘텐츠로 삼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김해, 진영에서 건축자재인 타일과 세라믹 제품을 만드는 ‘삼영산업(주)’이 건설경기의 침체와 영업부진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바로 이 달에 직원 140명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회사는 퇴직금을 준비하고 있지만 노조는 교육재단이 원망스러운 모양이다. 회사의 기계장치를 교육재단에 기부하고 빌려 쓰기에 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기부도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관정 이야기를 하면서 피 한 방울, 만 원짜리 한 장 선뜻 나누지 못하여 부끄럽다. 갈 때 한 푼도 못 가지고 간다는데….
출처 : 경상일보
■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