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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리(Matsuri; まつり)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인 그녀를 소환했다. 긴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앞머리는 이마를 덮을 만큼 동그랗게 자른 것이 눈썹위에 가지런한 사람이었다. 말을 걸기는커녕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그녀가 지나갈 때면 숨을 쉬지 못했다. 한 동안을 앓았다. 그러다가 말았지만..... 학교를 떠나고 안 보니 잊혀졌던 것이다. 아마 그녀는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그런데 잠간을 스쳐 지나간 그 사람이 마츠리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마츠리의 주변을 맴돌다 그녀의 마음을 잡았던 카즈토(カズト)만도 못한 놈이다.
영화를 즐기는 나는 언젠가 내가 어울릴만한 배역이 있으면 참 잘 하지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캐스팅을 받으려면 영화의 거리를 자꾸 돌아다녀야 하나 싶다가도 인연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산다. 부담되지 않는 돈으로 두 시간을 앉아서 편히 보고 즐기는 일에 영화만 한 것이 없다. 게다가 엄청난 감동을 받거나 견문을 넓히는 기회도 된다. 그래서 왜 극장에 자리가 많이 비어있을까 궁금하다. 다들 바쁘기는 할 테지만.
근래에 ‘범죄도시4’가 나오기를 기다려 첫날에 보았다. 또 다른 영화가 없나 싶었지만 한동안 볼만한(?) 영화는 없었고 일본영화, ‘남은 인생 10년’이 두 달째 걸려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또 상영을 한다. 뻔한 이야기 아니겠나 싶어 미루다가 보았다. 나는 미리 영화를 알아보지 않는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재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면서 보는 것이 집중력을 높인다. 재미없으면 중간 중간 졸기도 하지만. 제목이 그 영화를 대표하는가도 생각해 본다. 전혀 아닌 것도 많다. 내게 남은 인생이 얼마일까? 내일 아침에 눈을 뜨기는 할까?
부모님과 언니랑 4가족이 화목하게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아팠던 모양이다. 하필이면 로또에 걸릴 확률보다 낮은 병에 걸렸는데 약이 없으니 10년을 살지 못할 것이라며 집으로 돌려보낸다. 태어나 단지 한권의 소설을 쓰고 죽는 인생이다. 퇴원 후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죽정이 같은 한 녀석의 대시를 받는다. 참 비루(鄙陋)한 인연이다. 내심, 그 녀석을 야멸차게 버렸으면 싶었다. 마츠리는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심정을 내가 잘 안다. 훈련소라도 보내 바짝 정신을 차리게 했으면 싶은 그 비리비리한 녀석이 마츠리의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것이 밉다. 힘들고 고생해 보지 않아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놈 같아서 마츠리와는 절대로 엮이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몸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시푸르죽죽할 때 마츠리가 긴 머리를 잘랐다. 그것도 잘 어울린다. 밥 팔아 죽 사먹을 것 같던 카즈토도 일을 배우고 자기 가게를 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명약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신다. 그러고는 가족이라는 장난감으로 족쇄를 채운다. 가끔은 그 족쇄를 풀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카즈토처럼. 사랑은 비에 젖은 나무처럼 불붙기 어렵다. 그러나 붙은 불을 끄기가 참으로 어려운 장작불 같이 인생이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게 정말로 얄궂다. 마츠리는 그동안 이리저리 찍은 동영상을 다 지운다. 그래, 내가 없는 세상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나는 망설인다. 쫓기는 범인처럼 흔적(痕迹)을 지울까? 아니면 그것도 무엇인가 치적(治積)이라고 남길까? 하릴없이 찍어댄 사진이 수천 장이다. 다시 보지 않을 줄 알면서도, 누군가 보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찍고는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잘 썼다 싶다가도 낙서 같아 보이는 글을 이리저리 퍼뜨려 다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된다.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불행하다.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거든 매달리고 파묻힐 일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츠리가 카즈토와 잠시 함께 한 사꾸라가 만발한 우에노 공원과 우에노 역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오고 간다. 우에노 역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 볼 생각이다. 마츠리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미운 카즈토에게 튀김과 구이를 시켜놓고는 따끈한 히레사케(ひれサケ)를 한 잔 할 것이다. 여전히 내가 영화를 찍을 배역이 안 나온다면 마츠리가 일하던 그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싶다. 나도 ‘남은 인생 10년’을 쓸 것이다. 내게 ‘남은 인생 10년’은 어떠한 것일까?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아도 용기를 내어야 할까보다. 사랑이야기라야 되겠지? 그런데 묘비에는 뭐라고 쓰지? “왔다가 그냥 갑니다!?”
■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