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변호사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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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변호사의 애환

0 개 486 강승민

조금은 부끄럽지만, 필자는 미국드라마 ‘굿와이프’를 보면서 변호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주인공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어려운 법조항을 읊으며 현란한 말솜씨로 판사를 감복시키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모습, 묘수를 써서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모습, 그리고 약자를 도와 큰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소송변호사가 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 뉴질랜드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소송분야의 일을 배우는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뉴질랜드 변호사의 85% 정도는 다양한 자문일을 하고, 단 15%정도만이 전문적으로 소송일을 한다고 할 정도로 그 문이 좁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민사소송쪽 경력이 쌓이면서, TV에서 보던 법정에서의 모습은 소송변호사의 생활에서 단지 일부분일 뿐이며 그 이면에는 화려하지많은 않은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한 민사소송 변호사의 일상 속 애환을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재판이 없는 날의 아침은 비교적 여유롭습니다. 필자의 로펌은 탄력적 근무가 가능하여 재판이 없는 날에는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고 있어서, 보통 아침에는 애들과 애들엄마를 먼저 준비시키고 내보내고 나서 출근준비를 시작합니다. 대신에 재판이 있는 날은 주말도 반납하고 매일 새벽까지 준비하기도 하지만요.


고객을 대리하여 싸움을 하는 소송변호사의 숙명이 있으니, 출근길에서부터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은 비장한 마음을 갑니다. 커피를 연료삼아 투지를 불태우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새로 받은 이메일들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는 풀타임 기준 대략 40개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고, 대부분의 일은 이메일로 처리합니다. 상대변호사들로부터의 이메일 및 레터들은 가시처럼 날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호사들은 고객대리일 뿐이니 자기들끼리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건만은 사람이다보니 그걸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날카롭게 맞받아칠까 생각하다가도 마음 속으로 ‘참을 인’을 세 번 새기며 참아봅니다. 그 후에 정중하면서 단호한 답변 초안을 작성한 후 고객의 승인을 요청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가끔 중요한 서면이나 변론서 제출기한이 다가온 경우, 하루 종일 혹은 최소 반나절은 블록으로 비워놓고 집중하여 판례조사 및 작성을 합니다. 제 경험 상 민사소송을 전체적으로 보면 법정에 나가는 소위 ‘외근’일은 대략 10%도 안 될 것 같고, 이렇게 사무실 안에서 고객, 상대방 변호사 혹은 법원직원과 하는 의사소통, 그리고 혼자서 하는 판례조사 및 각종 서류작성 등이 90%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재판 없이 합의로 종료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런 경우는 사무실 안에서 100% 해결되기도 합니다. 타지 고객분들을 원격으로 많이 도와드리는 제 특성상, 하루종일 로펌 직원들 말고는 사람을 아예 안 만나는 날이 꽤 많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겨우 한 숨 돌리며 밥을 먹는데, 눈치없는 로펌직원이 고객전화를 돌리면 먹던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모른 채 고객대응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고객분들도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그분들도 아무때나 시간을 내실 수가 없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연락주시는 경우가 많기에 십분 이해가 됩니다.


오후에도 비슷한 일을 하기도 하고, 혹은 재판의 판결문들이 나오면 보통 오후에 전달이 되기 때문에 그걸 읽고 고객분들께 전달해드리면서 어떻게 집행할지 혹은 항소할지 등의 전략을 의논하기도 합니다. 승소 판결문이 나오면 아무리 자주 받아봐도 내 일처럼 매번 기쁩니다. 드물게 패소 판결문을 받아보면 원래 예상을 했든 잘못된 판결이든 고객을 뵐 낯이 없어지고 술이 고파지곤 합니다.


퇴근 전에는 하루 종일 한 일을 6분 단위로 기록하는 ‘time recording’을 합니다. 고객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기본은 기록한 시간에 변호사별 시간당 비용을 적용하는 방식이므로 귀찮지만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퇴근 후에는 저녁이 깊어질 때까지 전투육아에 참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집도 직장도 모두 전쟁터나 다름이 없습니다.


재판에 참석하는 날은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긴장이 안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설렘과 비장함이 더 큽니다. 한 번 재판을 위해 수십 수백일동안 (어떤 사건은 총 4년간) 사무실 안에서 준비를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가 증인석에 선 상대편의 증인을 반대심문 하는 것은 마치 맹수가 구석에 몰린 먹이를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판사님들은 보통 최소 20년 이상 변호사 경력을 가진 분들 중에서 임명되시기 때문에, 그분들과의 설전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점이 너무나도 많고 혹은 설득을 시켰을 때 그 짜릿함은 말로 다 표현을 못 할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문변호사님들의 주 임무는 고객분들의 좋은 일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비자를 획득하고, 집을 사고, 법인을 만들거나 계약을 맺어 상업행위를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소송변호사는 고객분들을 대신해 망가진 것들을 더 철저히 파괴하는 게 주 임무 같습니다. 헤어지는 부부의 재산을 분할하고, 계약 위반한 상대에게 집행을 하는 등 말입니다. 항상 무언가 잘못된 사건들만 다루기 때문에 직업병으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종료될 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객분들께 “다시는 연락하시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덕담을 드리기도 합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소송변호사를 찾을 일이 없게 무사 무탈한 생활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법률적인 자문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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