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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달려갈 동안 언니는 지하철 타고 버스 갈아타며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동생 입맛 잊지않고 고국의 배추 겉절이 버무려 무거운 줄도 모르고 들고 와서 말이다.
그렇게 반가운 만남을 하고 헤어진지가 며칠이나 되었다고....
눈빠지게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고 일정이 바쁜데도 어쩔수없이 언니 집으로 먼저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벌써부터 외출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앉을 새도 없이 반색하는 언니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야했다.
쇼윈도도 화려한 어느 귀금속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의아해 하며 언니를 바라보는 내 손을 끌어 당겨 주인에게 내밀었다. 언니는 경쾌한 목소리로 묵주반지를 맞춰 주려 한다며 화사하게 웃었다. 동생 사랑이 한결같은 내 언니. 감동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언니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내가 뉴질랜드에 와서 가톨릭 새 신자가 되었다는 걸 알고 제일먼저 기뻐해 주신 분도 언니였다. 빨리 들어와 만나자고 보챈 이유가 그래서일까? 어찌 그냥 넘어가겠냐며 축하 기념 선물이란다. 기도 많이 하라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육남매 가운데 여동생이 나 하나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유독 언니는 마치 엄마처럼 나를 늘 챙겨주었다.
유교 뿌리가 깊은 가정의 맏며느리인 언니가 과감히 개종을 한건 몇년 전이다.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층층시하에서 벗어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조신하게만 살아오던 언니가 그런 용감성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큰소리 한번 못내고 살았으니 뒤늦은 바람끼?였을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성당가는 뒷덜미에 목탁을 두드리며 반대의사를 전한다는 형부, 그러나 자녀들까지 모두 어머니를 따라 나서니 형부의 목탁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라고 했다. 형부 혼자서 외롭게 투쟁하는 그 집의 주일 풍경이 눈앞에 그려져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몇년 후 형부도 임종때는 결국 대세를 받고 떠나셨다고 들었다.
언니는 평생에 품었던 뜻을 이루어 삶이 더없이 기쁘다며 행복해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동생마저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냐며 많이 좋아했다.
묵주반지는 그렇게 내 손가락의 주인이 되었다. 외출시에는 어김없이 끼고 나온다. 언니의 사랑이 담긴 묵주반지가 든든한 수호천사이기 때문이다. 차에 앉아 편하게 묵주를 돌리다보면 그 날의 추억, 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리움을 달래주는 잊을수 없는 영원한 선물....
지금은 양지바른 언덕에 쓸쓸히 서있는 나무와 영원한 친구가 되어있는 내 언니.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 난 받은 사랑만큼 돌려드릴게 없는 동생이다. 언니가 만들어준 묵주로 저 세상 영혼이라도 기뻐해 주십사, 기도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머지않아 민들레꽃 철이 돌아온다. 민들레 함께 뜯던 언니가 많이 보고싶다.
살아계실 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쯤 반드시 전했어야 했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도 하지못한 못난 동생이었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뿐이다.
이제 유품으로 남겨진 반지. 내 손을 이끌며 환하게 웃던 그 날의 언니 얼굴이 영상으로 눈앞에 어른거린다.
수호천사가 되어 항상 지켜주는 언니는 오늘도 길동무가 되어 내곁에서 웃고 있다.
안과병원에 갔을 때다.
인도인으로 보이는 얼굴 가므잡잡한 간호사가 내 검지 손가락에 낀 반지를 가리켰다.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예쁘다며 내 곁으로 가까이 왔다.
좀 황당해서 멋쩍게 웃어주었다. 문득 그녀의 가슴에 형체를 알수없는 화려한 목걸이가 눈 에 띄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것임에 놀랐다.
나는 얼른 네 목걸이가 더 멋지다고 칭찬을 돌려줬다. 그녀가 자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결국은 자기 목걸이를 자랑하고파 먼저 수작을 걸어온 것 같았다. 유난히 반짝이는 광택으로보아 새 것인게 확실했다.
얼마나 자랑이 하고 싶었으면 .... 속으로 많이 웃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손가락에 그 반지를 들여다 봤다. 오른 손가락엔 묵주반지를 왼 손가락에 꼭 끼고 다니는 귀중품이었다.
십수년을 분신처럼 함께하는 그것은 18금에 두 줄 큐빅이 돌려박힌 수수한 반지다. 잊지못할 추억이 있는 영원한 친구.
그 반지의 원래 주인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나라 먼 곳으로 여행 떠난지가 몇년 되었다. 내 손가락에서 더더욱 빼놓을수 없는 이유가 그래서일 것이다.
그와 나는 낯선 나라에 와서 새로이 인연을 맺은 동갑네였다. 우리는 어릴적 소꼽동무 뺨칠만큼 정 깊은 친구가 되었다.
이십여년 전이다. 사람 사귀기가 까다로운 내 앞에 당돌하리만치 저돌적으로 다가온 여인이었다.
처음엔 겁을 먹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인간미 푸근하고 후덕한 사람임을 알게되었다. 그저 조금 먼저 왔기에 안내에 신경 써준 일밖에 없는 나였다. 그 사소한 친절을 크게 고마움으로 받아준 여인이었다.
자주 가족들 식사 자리에도 불러주고 특식이 있을때도 어김없이 챙겼다. 그 진솔함에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어가 불통인 이국 생활에서 말이 통하는 또래 말벗이 가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죽이 잘 맞아 여기저기 모르는 길도 찾아나서고 함께 모임에도 나갔다. 친화력이 좋아 누구나를 쉽게 사귀는 여인.
그러나 나를 대하는 마음은 정말로 특별했다.
일년여를 그렇게 함께 했지만 영원히 거주할분이 아니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서로가 애틋하고 아쉬웠다.
자기는 고국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귀국길이어서 괜찮다고 했다. 남겨진 사람은 외로워서 어쩌냐고 내 걱정이 먼저였다.
마치 어린 자녀를 혼자두고 떠나는 사람처럼 안타까워 했다.
송별식사를 함께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였다. 그가 갑자기 내 곁으로 와서 바짝 붙어섰다. 내 손을 꼭 쥐었다. 뭔가가 내 손 안에 쥐어졌다. 펴보니 반지였다. 촘촘하게 보석이 박힌 금반지였다. 자기 보고싶을 때 보라며 내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 특별한 석별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그런 인연이 아니라는걸 맘 속깊이 느꼈다. 오래오래 잊지말자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그 반지는 나의 동반자였다. 친구와 함깨하는 기분을 늘 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문득문득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 반지를 본다. 그의 체취가 아직도 배어 있을것 같아 그리움이 묻어난다.
자주 연락 못한다고 마음 변한것 아니니 안심하라던 그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어찌 그리 쉽게 떠나셨는지...
남편 보내고 허전해서 친구들이 소개해 준 남친과 연애중이라고 깔깔 웃으며 전화해주던 그 친구.
며칠도 지나지않아 돈도 못쓰는 짠돌이 걷어찼다고 알려줘 우리는 함께 웃었다.
요즘은 심심해서 옆집 구십대 노인과 놀아준다고 했다. 정부에서 이십 몇만원을 받는 일이라나. 돈벌이 재밌어서 뉴질랜드도 못 간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아프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언제 병들어 갔는지.... 이제 그 반지가 그 친구의 유품이 되었다.
그리고보니 양 손가락에 호사스럽게 끼고다니는 반지가 똑같이 유품이었다. 정들었던 사람은 떠나고 남겨진 것들.
언제 어디서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그 반지들은 내 영원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