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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했다. 차가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저자인 송대 원오 극근(圓悟 克勤:1063~1135) 선사의 다선일미(茶禪一味)가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일미(一味)는 깨달음의 내용이다. 따라서 다선일미는 다도가 아니라 다선이다. 다선(茶禪)의 선(禪)은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서 대자유(생사해탈)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다도는 차를 매개로 한 의례일 뿐 생사해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선수행(禪修行)을 하는 사찰에서는 차를 널리 재배했기 때문에 지금도 차나무가 자라고 있고 선수행하는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이처럼 다선을 통해 일미를 깨닫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전통이 오늘날에도 꾸준히 내려오고 있다. 차와 선수행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차명상에 대해 선수행만 하면 되지 왜 차를 매개로 하는 수행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명상은 다선의 다른 이름이다. 차명상의 차(茶)는 명상을 도와준다. 곧, 차(茶)가 차명상의 인식 수단을 도와주고 다선일미를 깨닫는 데 매개가 된다. 차의 성분, 차를 마실 때 나타나는 뇌파, 차의 기운, 차맛 이 네 가지를 통해 차명상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다.
명상을 돕는 복잡미묘한 맛의 차 성분
차의 성분은 명상에 도움을 준다. 차 속에는 카테킨, 카페인, 테아닌의 세 가지 주요 생리활성 물질이 있다. 카테킨은 항산화 특성을 지닌 화학 물질 그룹인 폴리페놀의 일종인데, 세포 손상을 예방하는 산화 방지제이며, 카페인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작용을 함과 함께 의식을 각성시키는 작용을 한다. 즉, 의식을 깨우고 지혜를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미노산 성분인 테아닌 성분은 신경 안정 물질이므로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그리고 심신의 안정과 기억력, 집중력을 높여주어 선정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영양소들은 또한 차의 맛으로도 나타나는데 카테킨은 떫은맛을, 테아닌은 감칠맛을, 카페인은 쓴맛을 낸다. 사실상 쓴맛이 전부인 커피에 비해 차의 맛이 복잡 미묘한 이유이다.
베타파의 뇌파가 알파파로
차는 특정한 뇌파를 일으키고 뇌파는 명상의 경계를 나타낸다. 카페인 성분은 뇌를 각성시키므로 베타파가 각성 상태의 알파파의 뇌파로 바뀌며 몸을 이완시킨다. 실험에 의하면 테아닌 투여 후 뇌파를 측정한 결과 알파파가 증가되고 편안한 심적 안정상태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차를 마시면 1시간도 안 되어 편안할 때의 뇌파인 알파파가 나타난다는 실험 결과도 보고되어 있다. 알파파가 증가하면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혈관이 확장돼서 혈액 순환이 잘 되기 때문에, 냉증 개선과 고혈압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알파파 상태에서 차명상을 하면 명상 뇌파인 세타파가 일어난다.
기혈을 열어주니 기운이 생동한다
차와 명상의 공통점은 기운이다. 차에는 커피와 다르게 발산하는 기운이 있다. 찻잎을 차로 법제하여도 그 성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발산하는 차의 기운은 몸의 기혈을 열어주어서 기운이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한다. 좋은 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차의 기운으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차의 기운이 의식을 각성시키고 집중과 분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기운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기운이 있는 곳에는 심리가 일어나고 마음이 있는 곳에는 기운의 흐름이 있다. 그래서 수행을 하게 되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몸이 새털같이 가벼워지며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듯이 뻗쳐가는 경안(輕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초의(艸衣, 1786~1866)선사의 『동다송 東茶頌』 제30송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옥화차 한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고
몸 가벼워
이미 청정한 경계(淸境)에 오르네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어난다는 것은 몸의 기운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몸의 기운이 일어나면 몸이 가벼워진다. 차 기운이 수행자로 하여금 경안의 경계에 쉽게 들어가도록 도와준다.
차의 맛, 그 이상의 명상 맛
차에 맛이 있다면 명상에도 맛이 있다. 이 맛이라는 공통분모가 명상을 통해 일미(一味)라는 궁극의 맛인 깨달음이 오도록 만든다. 다도는 차맛을 관찰할 때 처음의 감칠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의 오미(五味)를 맛보는 데서 끝난다. 하지만 명상의 맛을 보려면 차맛 자체가 점차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변하는 무상(無常)을 체험하고, 지나간 차맛이 되돌아오지 않아 불 만족(苦)함을 알고, 이를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어 자아 없음의 무아(無我)로 알아차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차맛의 공(空)함을 맛본다면 온 우주가 공 하나임을 이해하는 일미를 깨달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선일미의 전통은 차를 매개로 이어온 것이다. 또한 이는 다도의 다법(茶法)이 아니라 다선의 선법(禪法)이다.
차맛과 일미의 차이는 극명하다. 차맛은 혀로 맛보고 미각으로 아는데, 일미는 선(禪) 수행으로 맛보고 의식으로 안다. 의식으로 아는 것은 모양과 색깔이 없는 것도 인식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의 맛과 명상의 맛, 그 궁극은 일미의 깨달음으로서 첫째는 이(理: 절대 평등한 본체_편집자주)이고, 둘째는 명상체험이다.
일미(一味)라는 이(理)의 입장에서는 삼라만상 우주 모든 것이 일미이기 때문에 차맛도 일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하여 다 같은 일미로서, 모든 하는 일에 장애하지 않는 것(譬如虛空 遍一切處 皆同一味 不障一切所作事業)’과 같다.
템플스테이에서 맛보는 차문화, 차명상
현실의 팍팍함과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어느 때보다 명상이 필요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차문화와 명상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연결고리는 차명상이다. 명상 중에서도 말과 생각을 떠나는 선(禪)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간화선의 경우 모든 존재의 근원을 표현한 화두는 말과 생각을 떠나고 어떠한 견해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할 때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차문화라는 형식과, 말과 생각을 떠난 명상이 콜라보가 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템플 스테이 참가들이 차명상을 체험하고 스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짐으로써 차문화, 차명상의 효과에 눈뜨고 몸과 마음의 쉼, 치유가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 지운 스님 자비선사 자비선 명상 선원장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