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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외곽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공항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주 함들 때문에 어쩌다 고국에서 오는 손님을 마중할라 치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
전광판에 나타나는 도착 편들을 확인하며 내내 입구를 쳐다보기 란 지루하기 이를 데 없고 가슴 또한 여간 설레지 않는다.
한국을 오고 간 수 십여 번 중, 정시에 떠나는 비행기를 거의 타본 적이 없다 보니 비행기가 늦게 도착되더라도 마음 졸일 일은 나에겐 없다.
다만 긴 줄에 의지해 검색 대를 통과하고 사소한 것 마저도 이 잡듯이 털어내는 세관을 통과하자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체념을 하게 된다.
그 쯤이면 한 사람만을 구별하려 애를 쓰고,
문명이 흘러나오는 물결 속에서 한숨을 쉬다,
터져 나오는 울음 섞인 웃음들 속에
내 자신의 표정관리는 거칠게 뒤섞이는 강 하류의 바닷물처럼 퇴색되어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만남,
그 두근거림의 묘함은 이상해서 분주함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경질적인 요소들이 있을지라도 순식간에 상쇄되어 입구에서 토해지는 각양각색의 흐름들과 함께 사라진다.
오래 전 인근에 사는 교민 집에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 하여 모처럼 이른 새벽을 맞은 적이 있었다.
지금과 달리 핸드폰이 없던 시대이기에 공항에 나간 이웃과 한국에서 오는 손님이 서로 만나지 못하면 대신 전화를 받아 주기 위해 간단히 집을 지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모처럼 맞은 새벽이고 하여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책을 보고 있는데 만나기로 한 10번 출구에 손님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집 주인에게서 근심스레 전화가 왔다.
전화 오면 꼭 공항 출구 10번 앞에 있다고 강조를 하고 전화기에 신경 좀 쓰라는 내용이었다.
간혹 그런 일들이 있으니 차분히 기다려보라며 전화를 끊고 남짓 지났을까.
다급한 부인네의 전화를 받았다.
10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상당히 당황해 하는 것이었다.
지금쯤 이면 벌써 공항 출구를 통과하고도 한참 되었을 시간인데 이상하여 물었다.
계시는 곳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그곳이냐고, 한국공항에서 처럼 비행기표를 사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간 그런 10번 게이트가 아니냐고, 그 곳이면 아직도 공항 안이니 지금 빨리 검색대를 통과해서 출구 밖 10번 문으로 나오라고,
버스와는 다르게 직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중간에 내릴 곳이 없다.
결국 그 통로를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기에 느지막이 온갖 짐을 들고 쑥스럽게 들어오는 손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이런저런 한국 이야기를 풀어놓고 작은 선물 보따리를 구경하던 일이 생각나 새삼스럽다.
70줄에 가까운 내 나이대의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라면 누구나가 간직한 추억일 테지만 내가 자란 곳이 시골에서도 배를 타고 건너는 섬이였기에 유독 작은 선물보따리라도, 진기한 보물을 살피듯 보고 또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많은 날이 지나도 보이는 것이라 곤 멀리 바다를 지나는 기선과 고기잡이 어선들 뿐 도통 새로운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그러했나 보다.
때문에 동네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그 날은 대단한 볼거리를 얻는 날이었다.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박물장수의 보따리 속에 펼쳐진 지나간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
초창기 뉴질랜드 이민생활이 바로 그 시절 그때와 비슷했다.
지금이야 발달된 기술 덕에 실시간으로 한국 상황을 듣고 살지만 수십년 전 갓 이민 왔을 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방법 자체가 고립을 자처해 외롭게 사는 걸 낙으로 여기다 보니 삶의 방법은 제쳐 두고라도, 김치 해먹을 배추가 없어 양배추를 사용했고, 깍두기 담을 무가 없어 아주 단단하고 이상한 서양 무를 사용했다.
생각하다 못해 값이 저렴한 양파김치를 먹으며 두고두고 매워 했던 때도 기억난다.
오래전 한번은 한국에서 오는 길에 피지를 경유해 돌아오는데, 마침 옆 좌석에 커다란 보따리를 좌석 밑에 간직하고 있는 피지교민과 일행이 된 일이 있었다.
누구 한테 들킬 세라 조심스레 간직하는 그 분을 정면으로 대하기가 민망하여 흘끗 바라보는데 허허 웃으며 “그거 비행기 안에서 모은 신문 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그 분이 사는 인근에 피지교민이 약 70가구 사는데 비록 보다 버린 신문이지만 닳아 떨어질 때가지 돌려가며 고국의 소식을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단다.
순간 마음이 허전한 와중에서도 기내에 남은 나머지 신문들을 주섬주섬 모아 와서 알고 지내던 인근 교민에게 선물했다.
그 후 간간히 그 집을 방문할 때마다 소중히 간직된 신문들을 볼 수 있었는데 불과 십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이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야단이다.
마치 신 개척지라도 발견한양, 의기 양양하게 몰려온다.
두고 온 부모형제가 그리울 때면 전화를 걸고,
막상 수화기를 놓으면 너무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해,
따지고 보면 추석날 부산 가는 길 보다 더 빨리오는 곳인데, 고국과의 인연은 신문과도 같이 항상 한 템포가 늦게 마무리 된다.
이민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클랜드 공항에 가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