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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녀가 왔다.
공항 대합실 많은 인파 가운데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리는 금방 찾아냈다. 굳게 껴안은 가슴으로 따뜻한 서로의 숨결이 교차했다. 살아있어서 기쁜 감회가 무섭도록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조금은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역시 그녀는 씩씩했다. 긴 투병생활을 끝내고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비행기를 탄 사람 같지 않았다. 만나면 눈물부터 날 것이라는 내 생각은 기우였다.
피곤하지 않냐는 내 질문이 마치 우문처럼 맥이 빠져버렸다. 보고싶은 사람 찾아오는 길이 왜 피곤하냐며 환하게 그녀는 웃어주었다.
그가 병원 침대에 누워 머리를 굴려 짜놓았을 각본대로 나도 그들 일행 속에 한 식구가 되었다.
“아!~ 이 황금같은 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던가?...”
그는 내 손을 아프도록 꼭 잡으며 노래하듯이 웅얼거렸다.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자마자 그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핏기없는 얼굴에서 아직도 환자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얼마나 그리움이 고팠으면 요양을 핑계삼아 이 먼 곳을 달려왔을까? 마음이 짠했다.
그는 책과 일상을 같이하는 책벌레다. 그래서일까? 생각하는 차원이 보통 이상으로 세상 보는 시야의 폭이 넓다. 그녀와 가까이 하면서 내 의식도 성숙해 가고 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겉으로 그지없이 평범해 보여도 속이 꽉 찬 그녀가 너무 좋다.
친 언니도 이해해 주지않는 피붙이간의 고충마저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우리는 친구 이상의 더할나위 없는 정을 쌓아왔다.
내가 고국을 떠나 올 때도 겁보인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도 그녀였다. 곧 하나로 열린세상이 올터인데 넓은 안목으로 살게 됐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 . . . 살아보다가 다시 오더라도 그 좋은 경험이 어디냐고 등떠밀어 주었다.
자주 볼수 없는 안타까움을 서로 달래며 멀리 있어도 늘 이웃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정을 이어왔다.
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 어김없이 전화 벨이 단잠을 깨운다.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려주며 고국의 첫날 풍경을 함께 즐겼다. 설친 잠이 하나도 아쉽지 않게 덕담도 일착으로 따뜻하고 풍성했다.
그는 이민 생활 알아서 용돈도 부쳐주고 먹거리도 자주 보내주었다. 일방적으로 받고만 사는게 좀 그렇긴 했지만 열심히 살아가자는 응원의 메시지라는 걸 알기에 부담같은건 갖지 않았다.
그리 부유롭지 않아도 항상 나누고 사는 법을 아는 그였기에 그 따뜻한 품성을 존중해 주는것으로 보답이었다.
나는 그가 어렵게 마련한 이번 기회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짧은 기간의 일탈을 쾌감으로 꽉 채워주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안에서 솟구쳤다.
우리는 스케쥴대로 로투루아를 거치고 남섬으로 무사히 단체여행을 마쳤다. 아름답고 멋진 추억을 기억속에 한가득 저장했다. 서던 알프스에 뿌려놓은 우리들 이야기가 하얀 눈속에 묻혀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단체여행이 끝나자 일행들은 곧장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다음 코스는 정말 우리 두사람만의 것으로 시작이었다.
늘 한귀퉁이만 채웠던 내 방 큰 침대가 임자를 만나서 가득찼다. 밤마다 이야기 보따리로 단잠을 놓쳤다. 넷이나 되는 딸들 차례로 시집보낸 이야기, 연애도 하고 실연도 당해 웃고 울었던 딸들과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들이 낳은 손자를 벌써 여럿 품에 안게 되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매일매일이 축제의 날이었다. 그는 선물로 받은 하루를 축하해야 한다며 캔맥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러나 시작하면 끝이없는 수다속에 그 캔은 끼어들 수가 없다. 번번히 외면을 당한채 침대 귀퉁이에 나뒹굴었다.
우리가 언제 술을 마셔본 적이 있는가. 주당도 못되는 주제에 생뚱맞게 맥주는? . . .
세닉 드라이브 꼬부랑 길을 돌고돌아 피하비치에도 달려갔다. 그 위험한 길을 겁도없이 내달릴수 있었던 것도 그와 동행이란 두둑한 배짱이 작용을 했다. 운명 공동체가 된 70대 여인들의 찬란히 빛나는 객기였을까?
코로만델 여행길엔 주룩주룩 세차게 비가 내렸다. 뿌옇게 내려앉은 하늘밑으로 바다가 잇닿아 어디가 수평선인지 분별이 안되었다. 그는 특별한 날의 추억이 더 인상깊다고 낄낄거리며 빗속을 헤집고 다녔다. 일회용 얇은 비옷이 비 바람에 감당이 안되어 찢어져 나불거렸다. 반쯤 젖은 옷차림을 서로가 바라보며 그 몰골이 기가막혀 함께 웃었다. 소금에 푹 절여놓은 배추 같다며 또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이 되자 사람들은 들뜬 기분으로 술렁였다. 쇼핑센터 매장에는 벌써부터 싼타모자를 쓴 종업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인들 귀걸이 장식이 먼저 분위기를 띄워 볼거리가 많았다. 장난감같은 산타 할아버지가 귀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다. 경쾌한 걸음걸이에 앙증맞은 츄리 장식이 화려하고 귀엽다. 특히 노인들이 큰 장식물들을 과감하게 달고 다녔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기는 기분이 그에겐 꽤나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풍경이 그의 정서와 잘 맞는다며 너무 재미있어 했다.
시티 번화가 빌딩에 서 있는 커다란 산타 할아버지께 그는 아이같은 투정을 했다. 코리안,
먼길 온 손님에게 선물 안 주냐고. 지금은 신화속으로 사라져버린 그 옛날 모습을 그는 아직도 상상하고 있으리.
핏빛으로 바알갛게 물든 포후투카와 거리를 거닐며 그는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저토록 빨갛게 불타는 정열의 뉴질랜드 크리스마스가 너무 인상적이란다. 그 열정을 닮아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그는 이루기 어려운 꿈을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손을 꼭 잡으며 그 날이 언제일지 반드시 기다리자고 속삭였다.
쇼핑센터를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그릇 매장으로 들어섰다. 샘플로 진열대에 놓인 찻잔 한 세트를 집어들었다. 포후투카와 만큼이나 새빨간 바탕에 크리스마스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다. 금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특별 상품이란걸 알수 있었다.
귀국할 때 기념품으로 하려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내가 돈을 지불하려 했더니 막무가내였다.
“우리도 멋지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합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우리는 그 잔에 커피를 따랐다.
그는 우아하게 마셔야 한다며 허리를 쭉 펴고 다리를 포개어 폼을 잡았다. 귓볼에 매달린 콩알만한 황금빛 두개의 종이 가볍게 흔들거렸다. 은은한 종소리가 금방이라도 울려퍼질 것 같다. 나는 들고나온 빨간 싼타모자를 그의 머리에 가만히 씌어주었다.
“아~ 뉴질랜드 여름 크리스마스여! . . . 오늘의 이 커피 맛을 어이 잊을까?”
그녀의 행복한 호들갑 속에 석별의 아쉬움이 갑자기 떠올랐다. 울컥 뭔가가 가슴으로 차올라 폭발할 것 같은걸 꾹 참았다.
그는 그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싸서 옷가방 안 에 넣어가지고 돌아갔다. 오직 자기만의 것으로 크리스마스엔 꼭 그 잔으로 커피를 마실거란다. 내 마음도 같다는걸 우리는 서로가 잘 알기에 약속같은건 하지 않았다.
지금이 12월이다. 나는 어느날 아침 깊이 두었던 그 잔을 꺼냈다. 자주 마시지 않던 모닝 커피와 마주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향기를 맡으며 그 날을 생각했다. 갈색의 액체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살포시 나타났다. 그 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커피 잔 안에 가득해 선뜻 마셔버릴수가 없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이런 추억을 마주할수 있을까?
부겐베리아 꽃 빨갛게 이글거리는 어느집 담벼락에 한 낮의 햇볕이 눈부시다. 고국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하얀 눈을 소복하게 얹은 포후투카와 푸른나무와 빨간 꽃을 상상으로 묶어 그려본다.
그녀는 요즘 딸내미들 돌아가며 증손 안겨주는 재미에 빠져 산다고 했다. 나는 뭘하느라 바빴던가?
금년 크리스마스 아침은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지.
그를 불러내 멋지게 마주 앉을 것이다. 그 때의 모습 그대로 빨간컵에 커피를 마시며 영상속에 곱게 담을 것이다.
증조 할머니가 아닌 우아했던 2010년의 70대 여인들을 . . .,
* 금년 한 해도 사랑으로 기억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밝아오는 새 해에는 우리 교민사회가 더욱 알차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모든분들 건강하고 좋은 일들 가득한 새해 맞으시길 기원드립니다.
2024년 마지막 12월을 보내며
- 오 소 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