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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은 뉴질랜드 한인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예시로 시작해보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포에서 구인글을 검색해서 지원서도 놓고, 또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직접 CV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몇주째 인터뷰 요청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B라는 고용주에게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A는 들뜬 마음으로 인터뷰 장소로 갔습니다. 이미 CV를 다 읽어서 몇몇 시시콜콜한 질문만 하던 B 사장은 A에게 당일부터 트라이얼을 해볼 수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A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급여가 얼마인지, 몇시부터 몇시까지 하는 일인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면 되는지, 트라이얼도 급여가 지급되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것도 묻지 못했지만 그런걸 물어봤다가 몇주만에 겨우 구한 인터뷰 기회조차 놓칠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A는 트라이얼을 승낙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트라이얼에 흡족했던 B사장은 A에게 다음날부터 ‘정식출근’ 하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나도록 계약서 얘기가 없어서 A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고 B사장은 ‘깜빡했다’며 계약서를 다음날 내밀었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들어본, 혹은 본인이 직접 겪어본 사례이신지요? 이 경우 B사장은 고용관계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고용관계법 63A조 1항 및 2항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고용주는 반드시 (고용관계 시작 전에) 아래와 같이 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 직원에게 서면으로 된 고용계약서 초고를 제공한다
2. 직원이 그 고용계약서에 대해 법적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3. 직원이 그 법적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4. 직원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서 고려하고 답변한다
이러한 법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직원들은 대부분 고용관계에서 약자의 입장으로 급여, 근무시간 등 핵심조건들을 먼저 묻기 힘든 위치에 있고, 또한 나이 및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어떤 걸 물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고, 같은 이유로 구두 의논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용주가 서면계약서 초고를 제공하면 직원은 그 계약서를 토대로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변호사에게 상담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물어보고, 어떤점을 고용주와 협상해보면 좋을지 의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계약서에는 대부분 휴가, 휴게시간 등 직원의 법적 최저권리 (employment standards) 에 대한 부분을 담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그러한 법적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뉴질랜드 법에서 고용주는 ‘고용법 및 고용관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해서 고용주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룬 숫한 케이스들에서도 ‘나도 이민자 출신으로 고용법 잘 모르는데 좀 봐주면 안되냐’는 변명이 나왔었지만 전부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용계약서는 뉴질랜드 고용법상 고용관계의 첫단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트라이얼’로 하는 일 조차도 고용관계 시작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고용주는 그 ‘트라이얼’ 요청 전에 고용계약서를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와 같이 63A조 위반으로 벌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또한 90일 trial로 인한 해고도 불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칼럼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고용계약서에 반드시 포함되는 내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고용주와 직원의 이름 (고용주의 경우 법인이면 법인이름)
• 직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 (job description)
• 근무장소
• 근무시간
• 급여
• Personal grievance 관련
보통은 정부웹사이트 Business.govt.nz 에서 제공하는 employment agreement builder 를 이용하시면 대부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고용계약서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어서 좋습니다.
고용계약서 안에는 고용주와 직원 양측이 동의한 다양한 내용들을 넣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고용법에 위반되는 내용들은 전부 무효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최저시급보다 낮게 받는 내용이 들어있고 양측이 사인했다고 하더라도, 직원은 최저시급 부족분만큼 다시 청구할 수 있고 심지어 벌금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고용주는 ‘저사람도 동의하고 사인까지 했는데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용법상 직원은 고용법을 잘 모르는 약자이고 고용주는 고용법을 다 알고 준수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그걸 악용해서 법을 회피하고 직원을 착취하려는 고용주도 많아질 것이구요.
고용주분들도 모든 고용법을 다 면밀히 파악하시기는 힘드시겠지만, 최소한 직원에게 제공하기 전에 먼저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준수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