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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한 달 같이, 한 달이 일주일 같이, 일주일이 하루같이 빨리 지나가버리는 요즈음 생활이다. 흔히 떠도는 말로 인생의 속도를 10대는 시속 10km, 20대는 20km, ……, 90대는 시속 90km 로 달려간다고 하는데 10대의 일 년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90대는 90분의 1에 불과하니 얼마나 빨리 느껴질까 짐작이 간다.
한국에서는 매년 12월이면 각종 모임에서 망년회를 한다고 31일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는 기억을 해본다. 한국에서의 모임은 주로 회식 문화이기 때문에 부어라 마셔라 떠들기 마련이고 따라서 가정에 소홀하고 몸도 망가지는 일이 허다했다. 나름대로 뜻은 있겠지만 이곳 생활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서의 연말 연초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한 끝에 이번에는 로얄 스코티쉬 컨트리 댄스회(Royal Scottish Country Dance Society, RSCDS)에서 주최하는 여름학교(Summer School)에 참여하기로 했다.
남반구에서의 여름은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가 포함되는 휴가철이기 때문에 휴가를 이용해서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일정을 사립 기숙학교(Boarding School)에서 소화하기 때문에 방학 중 강당과 회합 실, 식당, 숙소 시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어 수 백 명이 모여 회합을 가질 수도 있다.
이번 여름학교는 해밀턴 남쪽 케임브리지(Cambridge)라는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의 St. Peter’s School 에서 12월 28일부터 1월 5일까지 8박 9일의 일정으로 열렸다. 지방 소도시에 이렇게 큰 사립학교가 있을까 싶게 방대한 캠퍼스와 잘 가꾸어진 정원, 편의 시설, 학교 규모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국과 달리 건물은 대부분 단층이고 캠퍼스가 넓기 때문에 시설끼리의 이동 거리가 멀어 불편하면서도 시골 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어 좋았다.
여름학교에는 주관자 그룹, 교사, 학생을 포함해 뉴질랜드 각 지역에서는 물론 호주, 캐니다, 영국, 기타 유럽 등 260여 명이 참여했는데 아세안으로 보이는 참가자는 중국, 일본에서 몇 명씩, 한인으로는 우리 부부가 전부였다. 일정 프로그램은 숨 가쁘게 돌아가도록 짜여 있었는데 오전에는 각 클래스별로 댄스교습이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댄스 등급에 따라 반이 배정되어있다. 댄스 초보부터 중급, 중상급, 상급, 최상급 등으로 반편성이 되며 음악 연주 반, 교사 지망생 반 등이 특별히 분류되어 운영되고 있다. 오후에는 관광을 하거나 특별반에서 연습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등 자유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저녁에는 무도회(舞蹈會) 즉 볼 파티(Ball Party)가 주제별로 이어지기에 매일 매일이 긴 하루가 되는 기간이기도하다. 첫째 날 저녁에는 Opening Social Ball(첫날 상면하는데 의미를 둔 무도회), 둘째 날은 Social Ball(친교 하는데 의미를 둠), 셋째 날은 Fancy Dress Ball(1920년대의 의상을 차려 입거나 변장을 하고 무도회에 참여), 넷째 날은 New Year Eve에서 자정이 됨과 동시에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이기에 Hogmanay(스코틀랜드인들의 새해 이브 행사)를 겸한 Ball이 되었다. 다섯 째 날은 1월 1일 첫날로 Showcase Talent 행사를 가졌고 여섯째 날은 Ceilidh(스코틀랜드 어로 음악, 무용, 이야기 등을 즐기는 모임의 뜻) 행사가 있었으며 일곱째 날은 President’s Ball 로서 공식적인 스코티쉬 타탄 차림으로 진행 되었다. 여덟째 날 저녁은 Final Night Ball 로 작별 인사를 겸한 무도회로 진행 되었다.
댄스는 산스크리트(Sanskrit, 범어) 원어에서 유래하는데‘생명의 욕구’를 뜻한다고 한다. 생활의 경험이나 환희 속에서의 운동이라든가 활동의 욕구, 생명의 욕구 같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춤, 무용(舞踊), 무도(舞蹈) 등으로 호칭하고 있는데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 행위를 말한다. 사회적 상호작용 또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미적(美的) 정서를 리듬(Rhythm)에 맞춰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 도입된 이른바 사교댄스는 여러 가지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본질이 희석되고 좋지 못한 인상으로 각인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과 이일랜드(Ireland) 섬은 대서양으로 유럽 대륙과 떨어져있어 겔트(Gelt) 족 중심으로 문명이 개발 되었다. 그러다가 로마군이 침략하자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서 농지가 많고 교통이 좋은 오늘날의 잉글랜드 지방으로부터 북쪽 산악지역인 스코틀랜드나 서쪽 웨일즈 지방으로 쫓겨났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스코틀랜드인들은 자기 고향을 찾아 남쪽으로 쳐들어 왔으나 대륙에서 새로 들어 온 앵클로 색슨 족에게 다시 쫓겨나 그들은 춥고 험한 산악 지대인 스코틀랜드 땅에서 척박한 삶을 개척해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처지를 비관하고 방탕한 생활을 계속 해왔다면 비참한 운명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척박한 삶을 딛고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전통 댄스를 발전시켜 삶의 의지를 다지고 생활의 활력소로 삼아 오늘날 까지 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배달겨레의 후손이다. 그러나 남반구의 끝자락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민 사회에서도 지켜나가고 이를 개발시켜 현지 사회에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문화만 고집한다면 새로운 사회에의 동화는 요원할 것이다. 현대는 참여하여 즐기는 시대이다. 현지 문화에도 동참하여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우리의 문화도 전파시켜 뉴질랜드라는 다민족 사회에서 문화의 세계화를 도모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