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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쓰다. 음식을 먹으려니 온통 쓴 맛뿐. 본래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요즘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안타깝다.
옛날 며느리들이 노부모 모시기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였다는 걸 깨닫는다. 그럴땐. 숟가락들고 투정하는 아이가 되어 하염없이 먼산 바래기가 된다.
연평도 해변가. 민박집 아침이 밝아왔다. 뿌우연 유리창이 분홍빛 햇살로 물들어 있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어설픈 부엌 쪽마루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둥그런 양은 밥상이었다.
꽃무늬가 반쯤 벗겨져 희미해진 상위에 시퍼런 열무김치가 한 대접. 큰 접시엔 노랗게 달걀물 입힌 전이 한가득이었다. 고소한 기름냄새의 주인공이 바로 이 것이었구나. 입 안에 고이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새벽에 나가 주워온 바지락 전이야...”
주인 마포 아주머니의 상냥한 설명은 귓등으로 얼른 먹고 싶었다. 바지락 조개의 맛이 이렇게 달았던가. 그 별스럽게 맛나던 전. 입에 착 달라 붙는다는 말을 그 때 처음으로 실감했었다.
지금은 바지락 조개가 아예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더더욱 잊혀지지가 않는다.
“낮엔 꽃게 잡아다가 쪄 줄께...”
아침 잘먹은 배가 꺼지지도 않았는데 방 안 가득 신문지를 펼쳐놓고 기대에 부풀었다.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아저씨의 지게가 무거워 보였다. 큼직한 바소고리 안에 꼬물락거리는 검은 물체가 가득 엉겨있었다.
큰 밥솥에서 빨갛게 빛깔도 곱게 변신한 게가 양동이 가득 방으로 들어왔다.
혈기왕성한 20대 여섯명이 달겨들듯 둘러 앉았다. 저마다 찢고뜯어 게살을 발라 먹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났다.
게가 인간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모두가 배고픈 하이에나 처럼 보였다.
하루종일 코끝에 달린 비린내가 맞지않는 향수처럼 역겨웠다. 아마도 게의 복수(?)가 아닐런지...
해변. 여행지에서의 멋진 낭만이었기에 지금까지 이 먼 길 추억열차를 타고 잘도 달려오고 있다.
서툰살림을 익혀가는 신혼 때였다. 남편 입맛 맞추려고 요리책을 열심히 드려다봤다. 색다른 요리로 점수를 따려는 새색씨의 꿈이기도 했다.
“오늘은 살아 움직이는 게를 가지고 왔어...”
생선장수 단골 아줌마가 양동이 가득 게를 무겁게 이고 온 날이었다. 성질급한 게가 오는 동안 숨은 끊어졌지만 싱싱하고 탐스러웠다.
당장 솥에 넣고 삶아서 먹고 싶은 강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도 참아냈다.(멋진 요리로 남편을 놀래줘야지)
요리책에 있는대로 딱지를 떼고 살을 전부 긁어냈다. 게 살에 고기와 야채를 섞어 양념해서 원래대로 담아 얌전하게 쪄냈다.
빠알간 껍질에 알록달록 소복하게 담겨진 모양새가 제법 멋졌다. 이름하여 별미 게찜. 고급요리처럼 그럴듯하게 닮았다. 요리는 시각적인 효과도 한 몫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만족스러웠다. 남편의 반응이 궁금했다.
“제법인데...” 아무리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라도 그 정도는 해 주겠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 어? 이건 도대체 뭐라는 요리요?...”
밥상앞에 앉자마자 나온 첫마디.
새색씨는 무안해서 게 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들어가고 싶었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남편이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게는 그 자체의 특유한 맛으로 먹는게 제일이라는 고집이었다. (다시는 내가 게를 사나봐라)
그 때 이후 요리책은 내 곁에서 사라졌다. 그의 입맛이 우리집 요리책이었다.
등산을 한다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영덕을 지나던 참이었다. 영덕 대게 모른척 하기에는 발길이 무뎠다. 시장을 찾아나섰다. 가게 진열대에 나와있는 것은 별로였다. 발길을 돌리려니까 냉동실에 보관했던 상(上)품을 들고 나왔다. 크기도 했지만 살이 꽉차서 들기에도 무거웠다.
비닐로 싸고 신문지로 여러겹 말아서 차에 싣고 달렸다. 행선지는 덕구온천. 느긋하게 피로를 풀고 게를 먹기로 했다. 그동안 잘 해동이 되어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너무 거창해서 어디서부터 먹어야 하는지? 우선 다리 하나를 떼어들었다. 세상에! 그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 날 대게 포식을 하면서 일생중에 다시는 안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뒷처리가 문제였다. 모텔 방이 온통 게 비린내로 가득 찼으니 걱정이었다. 욕실에서 물을 떠다가 닦아내느라고 혼이 났다. 많이 먹고 움직이려니 게가 목구멍에서 다시 기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코끝에 풍겨오는 군비린내가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
우리는 아침도 거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차를 달리면서 뒤꼭지가 따가웠다. 얼마나 욕을 했을까?
대게 이야기만 들어도 그 때 생각이 난다. 물려서 다시 먹고싶지도 않은 별난 추억이었다.
젊어 한 때는 공군장교로 으쓱했다던 멋쟁이 시숙님.
불행하게도 일찍이 홀아비가 되셨다. 늙으막엔 손주 키우고 살림맡은 할아버지로 인생이 바껴버렸다.
사회생활 잘하는 며느리가 대견해서. 딸 같이 귀여워 자청한 일이었다.
“oo야, 저녁 퇴근길엔 시장 들러서 게 좀 사 오너라 게 찜이 먹고싶구나”
시아버님은 큰 기대를 하며 맛나게 드시려고 시장끼를 달래고 있었다.
퇴근해 온 며느리는 빈 손으로 울상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 시장바닥을 다 둘러봐도 아버님 잘 드시는 빨간 게는 없던걸요”
무슨 말인지 알아챈 어른은 기가차서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검정 게는 있더냐?”
“그런건 많이 있는데 빨간게만 없었어요”
먹어만 봤지 한번도 게를 만져보지 못하고 살아온 그녀였나보다 나이가 얼마인데 그럴수가 있을까?
병원에서 잘 나가는 간호과장님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져 버린 날이었다. 군대식으로 한바탕 야단을 치려했지만 그럴수 없었다는 어른. 종이 호랑이로 변신한 노병의 마음을 안타깝게 읽었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으며 뱃살을 잡고 한바탕 웃었다.
생각 해보니 내 시댁 여자들은 게 때문에 한번씩 망신을 당하는구나. 조카며느리의 어눌한 얼굴이 떠올랐다.
군 장교로 어깨에 힘주며 살았던 시숙님도. 황해도 고향 입맛으로 서울 토박이를 힘들게 했던 남편도 이젠 다 이 세상에 없다. 길을 누비며 등산을 함께했던 지인들도 모두 저 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개똥밭에 딩굴어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고 하질 않는가.
까짓 입맛 쓴 것 쯤이야 참고 살아야겠다. 살아 있음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여생을 색칠해야겠다고 새로운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