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은 눈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말하고 싶은 눈

0 개 1,105 수필기행

■ 반 숙자 


우리 집 파수꾼 미세스 짜루는 해마다 한 번씩 출산(出産)을 한다. 정월 대보름쯤이면 휘영청 찬 달빛 아래 연인을 찾아온 미스터 견(犬)공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앉아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이상스러운 것은 이 외딴 터에 있는 암캐가 발정한 것을 동네 개들이 어떻게 아느냐 하는 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후각이 고도로 발달되어 냄새를 맡고 찾아온다니 희한한 일이다. 한두 마리는 으레 침식을 같이 하다시피 와 살기도 하고 어쩐 날에는 대여섯 마리까지 원정을 와서 서로 싸우고 어울리고 야단들이다.


세상에는 못된 사람을 욕을 할 때 개 같은 *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말이 별로 맞는 말이 아닌 성 싶다. 개를 욕에 쓰는 이유는 개방된 섹스 때문인 듯싶은데 장소와 때를 구별 못한다는 데서 오는 듯하다. 상대를 고르는 방법은 동물 중에서 가장 고등(高等)하고 의젓하다.


c5d39ea3c809c79a1dd62175d00ba4b6_1623283348_2007.png
 

사실 우리 미세스 짜루는 하얀 털이 차분하고 군데군데 누런 점이 박혀서 언뜻 보면 똥개도 아니요, 그렇다고 명견은 더욱더 아닌 얼굴이 오종종한 그저 그런 시골 개다. 이왕이면 못난 자식보다 잘 생긴 며느리를 보아서 손주 놈은 일품으로 빼어 보리라는 욕심처럼 우리도 그랬다. 후보 개들 중 가장 몸집이 미끈하고 잘 생긴 세파트견을 골라 우리 집 짜루하고 한 광 안에 가두고 문을 걸었다. 어찌 된 일인가. 이놈 들은 타협을 모른다. 우당탕 싸우고 으르렁거리고 박살나게 뒤집어 놓는 듯하더니 문짝 하나가 나자빠지면서 짜루가 튀어 나왔다.


실패였다. 제가 싫다는데 어쩌랴, 인간들도 자유결혼으로 치닫는데 너라고 봉건주의로 매어 둘소냐. 이런 심정으로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이른 아침, 눈 쌓인 사과나무 밑에 짜루란 놈과 못난 검둥이가 밀월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 미세스 짜루는 지조가 있는 놈에는 틀림이 없다.


눈이 녹고 시냇물이 쪼록쪼록 흐르고 그러더니 양지마다 파아란 새싹이 뾰조름이 돋아났다. 짜루는 어느덧 배가 망구쟁이를 해 가지고는 노산(老産)이라 그런지 양지쪽에 누우면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아침 살얼음이 언 쌀쌀한 날씨인데 짜루는 새끼를 자그마치 여덟 마리나 낳아놓고 추워 떠는 새끼들을 보듬고 있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탓에 짚자리도 깔아주지 못한 채 맨바닥 이었으니 아무리 짐승이라 하나 어미인 짜루의 심정이 오죽하랴. 부랴부랴 볏짚을 깔아주고 미역국을 끓여 넣어주고 백 촉짜리 전구를 켜 주고 한 참 바빴다. 그제서야 조금은 자괴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짜루를 바라보노라면 나는 눈으로 말 하는 개의 이야기를 단박 알아듣는다. 또 그이가 출타중일 때 빈집을 혼자 지키면 짜루는 누가 시킨 일처럼 개집에서 나와 현관 앞에 버티고 누워 밤을 지내기가 일쑤다.

얼마나 충직한 파수꾼인가. 개와 나와의 교감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코를 약간 위로 치켜들고 슬픈 듯 깜박이지 않는 조용한 눈에는 반드시 탄원이 들어 있다. 개집은 좁은데 여덟 마리의 강아지를 한 마리도 다치지 않게 누우려니 그 조심스러움이 어떠하랴, 짜루의 애소하는 눈빛 때문에 궁둥이짝을 쳐들어 보니 거기 양수도 채 마르지 않은 강아지 한 마리가 깔려 있었다. 눈도 못 뜬 강아지를 어미 품속에 넣어주니 짜루는 혀로 핥아서 양수를 말리고 있었다.


날씨는 한결 누그러졌다. 꽃샘추위로 멈칫했던 춘신(春信)이 속속 날아들고 있을 때 움트는 사과나무 밑에 나와 앉은 짜루의 모습이 유별났다. 비스듬히 누워 고개를 길게 빼고 눈을 감은 채 무엇을 참는 듯, 그린 듯 앉아 있다. 내가 가까이 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상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짜루야, 어디 아프니? 왜 그러고 있어?”


개는 기운 없이 눈을 떴다. 눈곱이 말라붙은 게슴츠레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한참동안 턱을 내 무릎에 받친 채 있더니 코를 사타구니로 박는다. 짜루가 가리킨 곳에는 막내 젖이 젖몸살이 나서 사발만큼 부어 있었다. 손을 대어 보니 성이 난 젖이 펄펄 끓는 듯 뜨거웠다. 아리아리하도록 퉁퉁 부어 오른 젖몸살의 아픔을 짜루는 저렇게 참고 있는 것이다.


서둘러서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놓았다. 하루 한 번씩 맞는 주사를 짜루는 아주 신통하게 맞는다. 주인아저씨가 주사기에 약을 넣어 가지고 가까이 가면 옹동그리고 누워 젖을 먹이다가 어제 맞은 넓적다리를 슬그머니 쳐든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우리 내외는 놀랜다. 누가 이런 개를 욕에다 쓰는가.


그 날은 장날이었다. 모처럼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개가 없어졌다. 어미는 고사하고 새끼조차 한 마리 없다. 가슴이 철렁했다. 뒷산에서 살쾡이라도 내려와 물어갔나 싶어 애가 탔다. 여기저기 찾다 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개집에서 3미터쯤 떨어진 사랑채 부엌에 널따랗다 짚을 펴고 새끼들에게 젖물리고 있지 않은가. 자식을 위한 모성의 행위야말로 창조의 시원(始原)이요, 최고의 예술임을 짜루에게서 느끼며 부끄러워진다.


한 달이 넘어 일곱 마리는 이웃에서 나누어가고 씨 강아지로 암놈 한 마리만 남겨 놓았다. 짜루는 날마다 한 차례씩 제 새끼가 사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젖을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좍 퍼졌다. 정말 이렇게 지혜로울 수가 있는가. 미물인 미세스 짜루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 같은 개와, 개 같은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너무 영물이라 오래 두면 못쓰니 보신탕집에 넘겨주라는 이웃의 귀띔을 나는 묵살해 버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짜루와 내가 수없이 누비며 사랑을 심은 과수원 양지쪽 어디쯤이 무덤자리로 좋을까 하고. 그리고 비목(碑木)이라도 한 그루 세워 주리라고. 짜루는 댑싸리 그늘에 누워 고마운 듯 갸웃이 바라보고 있다. 조용한 대낮, 강아지풀 한 자락이 바람을 탄다.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61 | 3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3 | 3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3 | 3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7 | 3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60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2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5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3 | 5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5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54 | 5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8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4 | 10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4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3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5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6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4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7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4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10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