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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가는대로 행복지수 높아지는 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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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1,115 오소영

가끔씩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글 을 쓰고 있냐고 내게 묻는다. 전에는 글재주가 조금 있어서 재능봉사 차원에서 쓰는거라고 생각 했었다. 팔십이란 고지를 넘긴 지금은 단순히 뇌의 활성화를 위하여 대단찮은 글이지만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답한다.


사실 나 나름의 치매예방을 하기 위해서 그만 둘수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컬러링 책에 부지런히 손장난도 하고 있어 두배의 효과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하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어떤 잡지를 펼쳐 들었을 때. 말미에 점선으로 이어진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펜을 찾아들고 별것 아닌 그림을 만들어냈다. 내친김에 크레파스를 꺼내어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까지 하며 놀다가 그만 아이같은 장난끼를 손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왜 그렇게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리라.


아이가 예쁘게 잘 하셨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얼마 후 손녀로부터 두툼한 그림책 한권을 받았다. 친구가 미국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3권 중에 하나를 할머니께 드리는거라고 선심을 썼다. 할머니 잘 하실거라며 두둔하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그런 책이 아니고 성인용으로 고급스러웠다. ‘LOST OCEAN’ 표제가 그렇듯 들춰보니 온갖 물고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냥 보기만도 어지러웠는데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아서 한 눈에 질려 버렸다. 내겐 가당치않은 것이라며 신경끊고 밀쳐두고 말았다.


정말 심심할 때 가끔씩 꺼내보곤 했지만 영 자신이 안 생겨 엄두조차 내지를 못했다. 다시 밀어둘 수 밖에...


무슨 일이건 시작을 하면 끝을 보려드는 성격이어서 함부로 시작하기가 더더욱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한달에 한번씩 안과를 다니는 눈도 겁이 났다. 허리인들 편한가? 오래 앉아 있기에도 힘이 들었다. 밥숟가락을 들면 파르르 손이 떨리는 일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자신이 없으니 이모저모 부정하는 핑계만 찾아냈다. (내가 지들과 동격인가, 젊은이들이 하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고)


하늘이 어둡게 내려앉아 우중충하고 답답한 어느 오후였다. 날씨 탓일까? 괜스레 짜증이 나서 울적해 있었다.


책을 읽으려 해도 집중이 안되고 마음이 스산했다. 늘 그렇듯이 주변이 적막강산처럼 조용한 것도 그 날은 싫었다. 나가서 한바탕 돌아다니다가 올까? 그러기엔 시간이 짧았다. 이럴땐 미친듯 춤이라도 한바탕 추어보면 어떨까? 춤맹이 별 희안한 생각도 다 해본다.


그 때 문득 남의 것처럼 밀쳐뒀던 그림책이 생각났다. 깊숙이 두었던 색연필을 꺼냈다. 십여년 전, 그림 성경공부를 했을 때 성당에서 책과 함께 준비해 준 것이었다. 크레파스도 찾아 놓았다. 처음 이민 올때 짐에 끼워 넣었던 질좋은 크레파스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걸 사서 가져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달려들어 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흰 바탕에 검은 선 뿐으로 벌거벗은 물고기들에게 고운 옷을 골라 입히듯 변신을 시키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그림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컬러 선택하기도 어렵고 역시 쉽지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려 지루하기도 했다.


이 많은 그림들을 언제 끝낼수 있을지 지레 겁이 나고 부담도 되었다. 그러나 시작을 했으니 그냥 잊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큰 숙제를 안고 사는 찜찜한 느낌이 맘속에 도사려 있었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 법일까? (이건 숙제가 아니야 부담 갖지말고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해 나가면 되는거지, 시간을 다툴 그런 일도 아니잖아.)


어느 날 갑자기 누가 가르쳐 주기라도 한듯 혼자서 깨닫게 되었다. 마음 가볍게 집중해서 몇 장 해 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 했다. 뿌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중요했다. 이제 심심할 시간은 내게서 사라져 갔다. 하나씩 마무리를 해 가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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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물고기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바닷속 궁금한 사연을 흥미진진 하게 만들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결속에 너울거리는 아름다운 꽃들이며 멋드러진 용궁은 화려해야 했다. 그 사이를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들의 군무가 대단했다.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은 난파선엔 금 은 보화 잔뜩 들은 궤짝이 뚜껑이 열린채로였다.


그게 전부 내 것인양 노오랗게 금칠을 하면서 잠시 갑부의 꿈을 꾸어 보기도 했다. 


어느 귀족을 위해 실었던 것일까? 예쁜 유리병도, 고급스러운 찻잔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녹슬었을 테지만 날카로운 긴 칼도 있었다. 아마 선장이 허리에 찼던 칼이이라.


물위를 떠가는 돛단 배엔 울긋불긋 고운 칠을 입히고 나부끼는 깃발은 화사하게 빨갛다.


재미를 붙여 하다보니 색상 고르기도 좀 쉬워졌고 속도가 빨라졌다. 심심함이란 끼워들 틈조차 없어졌다.

그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앤드 마크가 그려진 마지막 장을 끝냈다.


와!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구나, 점 하나 빼놓지 않고 일일히 지나쳐 간 내 손길의 흔적을 넘겨보면서 뿌듯했다. 알록달록 예쁘게 변신을 한 책 한권이 큰 보람을 안겨줬다. 숙제가 끝난 홀가분함 또한 굉장한 즐거움이었다. 그 홀가분함은 잠시였다. 한가한 틈을 비집고 영양가없는 망상이 스멀스멀 머리속을 기어들었다. 중독을 해소하려고 어린이용 책을 2권이나 더 그렸다. 연필타고 공중을 날으는 아이들. 장난감 비행기에 올라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인형 놀이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그들과도 잘 놀았다. 늙은이와 아이는 동격이라 했던가.


어느 문방구를 뒤지다가 이게 웬 행운일까? 먼저 책 같은 류의 책을 발견했다. 내가 주인인 것처럼 딱 한권이 남아 있었다. 무슨 횡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으로 사서 들고 왔다. 배고플때 음식 탐하듯 두툼한 부피에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해졌다. 내 두뇌에 녹을 닦아내고 맑은 영혼으로 거듭나게 해 줄 대단한 선물이었다.


아 참!, 그건 마치 선견지명과도 같이 아구가 딱 맞아 떨어지는 날이 왔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코비드 19란 괴물이 이 먼 섬나라까지 찾아들 줄이야.


작년 3월 26일. 4단계 록다운으로 모두가 집안에 갇혀 버렸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에 너나없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조금도 힘든걸 느끼지 못했다. 이미 혼자서 즐기는 일에 몰두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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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송이, 아니 수 천송이 꽃들을 곱게 예쁘게 피워내며 여한없이 즐기며 놀았다. 꽃 한송이 잎새하나 손끝에 정성을 모아 피워 나갈때 무아의 시간이야말로 행복지수가 최고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 꽃들을 닮아서 환한 미소를 배워 내 모습까지 화사해져 가는게 아닐까? 착각이겠지, 행복한 착각이니 그저 좋았다.


어쩌지 못하는 노후를 도전하듯 열중해서 살아가는 내 일상을, 주변에서 힘차게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어 고맙다. 문우(文友) B 작가님이 농담으로 화가(?) 라는 칭호까지 붙여주면서 유럽에서 펴낸 두 권의 책을 구해다 선물로 주었다.


일거리가 많아져도 이젠 겁나는게 아니라 양식을 풍부하게 재 놓고 사는 기분이 들어 부자가 된 것 같다. 


이 꽃들과는 정말로 대화가 적혀있어 읽으며 공부 했어야 했다. 남의 말에 무식한 걸 아쉬어하며 내 맘대로 말을 만들어 할 수 밖에... 그렇게 진즉에 한권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태리일까? 요즘은 유럽풍의 정원풍경이 나를 초대해 주어 또 다른 매력에 빠져있다. 뜨락 가득 어우러진 꽃들 속에 꿀벌들 행차가 분주하다. 고운 나비가 날개짓을 하며 같이 놀자고 맴돈다. 푸른잎 나무엔 옹기종기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이얀 레이스의 식탁보 차탁엔 무늬가 화려한 찻잔이 놓여있다. 거기 야외의자에 나앉아 향기로운 커피한잔 마시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그럴땐 불현듯 일어나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면서 꿈과 현실을 하나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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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손 때 묻은 책 다섯권을 넌즈시 바라보며 부풋한 부티를 느낀다. 며칠만 더 지나면 여섯권째도 끝을 맺게 된다. 그 일은 끝없는 현재 진행형으로 늘 행복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임을 굳게 믿고 싶다.


일곱번째 순서를 기다리는 책은 미술선생님이 선물해 준 것으로 벌써부터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딴짓 그만 하라는 걸까? 식탁위에 펼쳐진 책이 어서 나에게 와 달라고 보채는 것만 같다.   


귀엽고 예쁜 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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