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기쁨, 인제 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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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기쁨, 인제 백담사

0 개 1,156 템플스테이

“처음엔 백담사 계곡의 흰 빛과 숲의 나무가 떠올랐고, 가슴 속에서 뭔가 차오

르는 느낌이었는데 그 뭔가를 말로 하긴 어려워요.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웃음

이 지어졌어요. 그동안 명상을 해왔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설악산의 품에서 숲명상을 갓 마친 호주청년 챔보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이었다고 하는 말할 수 없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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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방송과 SNS 등에서 접한 챔보(Chambo)는 서른 살 ‘상남자’를 자칭하며 ‘아재개그’를 풀어놓기도 하고,‘10초 안에 ◯◯ 하기’같은 코미디 영상을 선보인다.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이 없다는 옛말처럼 194cm의 키에 과장되고 익살스런 몸짓으로 우스갯소리를 구사하기도 한다. 템플스테이는 물론 한국의 사찰은 처음으로 방문했다는 그를 백담사 금강문 앞에서 만났을 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 듣는 이를 배려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태도였다. 사색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깊은 눈빛은 곁에 있는 이의 마음가짐도 차분하게 했다. 누가 진짜 챔보인가 라는 우문에 “연기하는 챔보, 인생을 고민하는 챔보, 명상하는 챔보, 운동하는 챔보, 새로운 꿈을 꾸는 챔보… 모두 저예요!” 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생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사람 

많은 챔보 중 ‘용감한 챔보,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 챔보’가 그를 한국으로 이끈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한국에서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삶 대신, 고향 호주에서 좌표 위에 놓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터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챔보는 호주의 영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뉴사우스웨일즈대학(University of New South Wales)에서 상업과 예술(Commerce and Arts)을 전공했다.

“영재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국인, 중국인 학생들이 많았어요. 신기하죠? 호주인데. 그들과 다른 생김새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했어요. 한국, 중국에 대해‘이렇게 안 좋은 나라가 있을 순 없어!’라고 생각했고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어, 중국어도 배우고 두 나라에서 살아보게 된 거예요. 차별로 차별을 극복할 순 없으니까요.”

2013년 챔보는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11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호주에서부터 흥미를 느낀 K-pop 등 한국문화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이후 국제공인회계사가 되어 6개국에서 살아봤고,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2020년, 다시 한국을 찾아 회계사라는 안정된 직업 대신 프리랜스 방송인이자 콘텐츠크리에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크리스 햄버수미안(Chris Hambarsoomian)이라는 본명 대신 챔보라는 애칭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인생은 한방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죠. 지금의 제 일이 좋아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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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템플스테이가 특별한 것은 백거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2007년 9월부터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맡아오면서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특유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예컨대 청소를 하면서 마음의 묵은 앙금도 털어내는 ‘청소테라피’, 숲길을 걸으며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을 여는 ‘숲길명상’ 등이 그렇다. 

챔보와 함께 1박2일의 템플스테이를 함께 하게 된 몇 명의 도반들은 스님께 휴대전화를 맡겼다. 도시의 번다함에서 벗어나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여러분! 이제부터 설악산을 만끽하세요! 만끽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충분히 느끼는 것이지요.”

백거스님의 말씀에 일행의 얼굴에 설렘이 번져갔다. 사위(四圍)를 감싸고 있는 설악산, 그 품안을 향해 걷다가 스님은 일행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눈을 가린 채 온전히 옆 사람의 설명에 의존해 숲길을 걷는 것이었다. 튀어나온 바윗돌, 쓰러진 나뭇가지가 즐비한 길을 시각이 아닌 청각에만 의존해 걷는 일이 만만치 않았는데 점차 사람들의 걸음이 자연스러워졌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청각, 촉각, 후각이 새롭게 열리는 느낌이었고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배려심이 고마웠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연결되어있고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생명체라는 자각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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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다 함께 손수건을 풀고 눈을 뜨자 일순 탄성이 터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시각의 소중함, 본다는 행위의 경이로움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녹음 우거진 내설악 숲속에 앉아 백거스님의 지도에 따라 명상을 했다. 한줄기 상쾌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먼 듯 가까운 듯 휘파람새 소리가 들려왔다. 울창한 산림이 자아내는 초록의 내음이 싱그러웠다. 이윽고 청정한 마음 한 자락을 느꼈다.

모든 생명에 깃들어 있는 불성일 터이다. 명상을 마치고 숲을 나오면서 챔보는 명상할 때 백담사 계곡의 흰 빛과 숲의 나무가 떠올랐고 가슴 속에서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뭔가를 말로 하긴 어려워요.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어요. 그동안 명상을 해왔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라고 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며 느낌이라는 백거스님의 말씀을 듣고 말로 온전히 표현하기 힘든 좋은 느낌, 기쁨의 정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봤다.

비움의 용기, 채움의 지혜

백담사 극락보전에서 종달새처럼 경쾌한 목소리를 지닌 마하연 템플스테이 팀장님으로부터 절하는 법을 배웠다. 나를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행위로서의 절은 비움의 시작일 수 있다. 자세 하나 하나에 집중하는 챔보의 모습은 이미 수행자였다. 저물녘 법고에서 시작해 범종, 운판, 목어의 소리가 차례로 산중에 그윽하게 울려 퍼지는데 거기에도 지극한 자비심이 담겨 있다는 팀장님의 설명에 챔보는 놀라워했다. 

첫날을 마무리 짓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차오름명상’이었다. 그저 마시는 것으로만 여겼던 차의 기운을 얼굴 전체를 통해 흡수하고 찻물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도반들의 얼굴이 해맑다. 가득찬 잔에 차를 따를 순 없다. 집착하지 않고 기꺼이 비울 수 있는 용기를 낼 때 새로운 채움이 이루어진다는 지혜를 싱그러운 차의 기운이 일깨워주는 듯했다.

챔보는 이른바 ‘올빼미형 인간’이다. 종종 새벽 2시까지 깨어있는데, 새벽 3시에 있는 백담사의 새벽예불에 참가하고 싶어서 전날 2시간정도만 잤다고 했다. 피곤을 쌓아서 일찍 잠들 요량이었다고 했다. 백거스님께서 새벽예불은 ‘선택’이라고 친절을 베풀어주셨지만 챔보는 반드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소홀히 하기 쉬운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공양시간에도 묵언하며 30분을 잘 채우고 경내에서는 잊지 않고 차수를 하는 챔보는 믿을 수 있는 청년이었다. 챔보는 “새벽예불 하길 참 잘했어요. 극락보전 안에서의 낯설지만 경건한 예불체험, 깊은 어둠에 잠긴 새벽별, 계곡 물소리가 아주 좋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수심교를 걷는 것도!”라며 다시 이 절에 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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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터올 무렵, 챔보는 백담사 스님들과 함께 마당을 쓰는 울력을 했다. 빗질 하나에 무지개 무늬 하나씩 마당 가득 무지개가 뜬 것 같다. 한 스님이 “너무 세거나 약하지 않게 쓰세요. 쓰는 듯 쓸지 않는 듯! 마당 쓸기는 중도(中道,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를 배우는 공부입니다.”라고 하자 챔보는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또 하나 익혔다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내 마음의 고임돌을 찾아서

백담사와 내설악 숲 사이에는 유난히 흰 빛을 발하는 계곡이 있다. 무수한 돌들이 반사하는 빛인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돌탑들이 정겨운 풍경을 자아낸다. 챔보와 템플스테이 도반들은 이 계곡에서 작은 바람들을 돌탑에 담아 쌓아보기로 했다. 쌓아 올릴 돌을 찾는 사람들에게 백거스님은 고임돌의 지혜를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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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기 탑을 보세요. 이 크고 잘생긴 돌들. 이것들로만 탑을 쌓을 수는 없습니다. 바람에, 물결에 쉽게 무너지고 말지요. 그 사이를 지탱해주는 작고 눈길 가지 않는 돌, 고임돌이 있어야 튼튼하게 설 수 있어요. 여러분 마음의 고임돌은 무엇인가요? 그 고임돌을 생각하면서 한번 돌탑을 쌓아보세요.”

크고 잘생긴 서원을 지탱해줄 작지만 꼭 필요한 마음의 조각들을 찾는 챔보와 도반들의 모습들이 신중하면서도 순수한 동심의 소년, 소녀들 같다. 챔보는 일행의 도움을 받아 SNS에 올릴 ‘10초 안에 돌탑 쌓기’ 영상도 찍었다. 스스로 즐거웠던 콘텐츠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그가 행복하게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주인을 닮아 챔보의 돌탑은 제법 키가 컸다. 고임돌도 믿음직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박2일의 도반으로서 그에게서 배운 편견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사람의 선한 마음에 대한 믿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성실한 노력-. 같은 마음의 고임돌이 떠올랐다. 이 고임돌이 있어 챔보는 행여 돌탑이 무너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다다르기 어려워 감동이 큰 인제 백담사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한 백담사는 내설악을 오르는 길라잡이 사찰이지만, 백담사주차장부터 절까지 6km를 훌쩍 넘는 굽은 험로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걸어서 갈 요량이면 1시간이 넘는 산행 후에나 수심교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내설악은 산자락에 백담사를 꼭꼭 숨겨 놓았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담(潭)이 100개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백담사. 신라 진덕여왕 당시인 647년에 지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만큼 경내에는 뿌리 깊은 역사의 기운이 서려 있다.

백담사로 드는 수심교 입구에는 다람쥐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예사롭게 볼 수 있다. 다리 아래 계곡의 수많은 서원돌탑은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들이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이다. 여름 장마에 휩쓸려 허물어지면 어느새 새롭게 쌓은 탑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대표적인 백담사 템플스테이의 풍경이다.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일깨우는 풍경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서방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백담사에서 득도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기념관 등과 함께 경내에 곳곳에 숨은 보석처럼 깃들어 있는 시비를 읽는 낭만이 있다. 

백담사 수심교에서 출발해 만해기념관→나한전→극락보전→신령각에 이르는 경내 포행코스를 추천한다.

산중 사찰인 만큼 백담사를 기점으로‘강원도의 힘’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꿈바위길(백담사→자연관찰소→꿈바위, 왕복 50분), 운수바위길(백담사→꿈바위→부도탑, 왕복 1시간 30분), 무지개길(백담사→영시암→수렴동 계곡, 왕복 3시간 30분)의 포행코스가 있다.

이번 여름 휴가에는 녹음이 우거진 내설악을 포행한 뒤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 하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충전해볼 것을 권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033-462-5565 I baekdamsa.templestay.com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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