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이컵에 대한 관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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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이컵에 대한 관찰 기록

0 개 1,061 오클랜드문학회

시인 복 효근


그 하얗고 뜨거운 몸을 두 손으로 감싸고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듯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다는 듯

붉은 립스틱을 찍던 사람이 있었겠지


채웠던 단물이 다 비워진 다음엔

이내 버려졌을,

버려져 쓰레기가 된 종이컵 하나

담장 아래 땅에 반쯤은 묻혀 있다


한때는 저도 나무였던지라

낡은 제 몸 가득 흙을 담고

한 포기 풀을 안고 있다

버려질 때 구겨진 상처가 먼저 헐거워져

그 틈으로 실뿌리들을 내밀어 젖 먹이고 있겠다


풀이 시들 때까지나 종이컵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지

빳빳했던 성깔도 물기에 젖은 채 

간신히 제 형상을 보듬고 있어도

풀에 맺힌 코딱지만한 꽃 몇 송이 받쳐들고 

소멸이 기꺼운 듯 표정이 부드럽다


어쩌면 저를 버린 사람에 대한 

뜨거웠던 입맞춤의 기억이 

스스로를 거듭 고쳐 재활용하는지도 모를 일이지

1회용이라 부르는

아주 기나긴 생이 때론 저렇게는 있다.


시인 복 효근

(복효근·시인,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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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021 1880 850 aucklandliterary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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