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견성한 스님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법명은 해산 海山, 꿈에도 못 잊을 스님이시다.
체구도 작고 자비로우신 노스님이신데 그저 스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 한 이야기를 옮겨오면 이렇다.
“예전 중국에 유명한 화가가 있었어요. 하루는 돈 많은 사람이 그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왔어요. 그런데 그림이 말도 못하게 비싼 거예요. 또 부탁을 해도 오래 기다려야 그 그림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림을 받았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을 보니 아무 그림도 없고 귀퉁이에 달랑 "명월(明月)"이라는 글씨만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명월(明月)" 이라는 부분을 외치고 손으로 누르니 음악이 흐르고 물이 흐르는 강가에 조그만 정자가 나타나요.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무희가 춤을 추며 자연을 풍류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잘 놀다 돌아온 그 사람은 그 뒤로도 적적할 때 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곳으로 갔지요.”
그림을 그리려면 그 정도는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스님이 덧붙이시기를. “기왕 그림을 그리려거든 그림자가 아닌 참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요즘 그림들은 그림자의 그림도 못 그리니…….
원 참! 거사님 저기 관세음보살 그림이 있잖우. 저 선 하나하나에 세계가 있다오.”
집에 돌아 왔는데 자꾸만 스님 얼굴이 아른 거린다. 그래서 다음날도 찾아갔다.
스님이 물었다. “그래 그림을 그린다면서? 그런데 그림은 뭐가 그리노?"
손이 그리나? 뭐가 그리나? 선문답이로구나!
마음이 그린다고 답하면 돌아올 질문이 뻔했다.
그래서 내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니,
스님께서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 그래”
순간 무엇인가 번뜩했다. 아! 스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구나, 그런데 내가 그 기회를 발로 차버렸구나, 차라리 내가 그린다고 할 것을 내가 잘못 했구나. 그 길로 법당에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기둥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아아, 저 분은 저렇게 자유로운데 나는 무명에 사로잡혀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한참을 울고 있는데 갑자기 스님이 뒤에서 외쳤다.
“그래 울어! 울어야 돼! 그래야 업장이 녹아 마음이 맑아져....!”
다음날도 또 찾아갔다.
공양하는데 스님 곁에 앉아 있었다. 스님과의 인연은 그 3일 간의 만남이 끝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 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짧은 인연이였지만 기연이다. 많은 깨달음을 던져주신 스님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그 스님이 그립다. 다음 생에 인연이 있다면 다시 뵐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될 수 있기를…….
사람마다 만남에 감동과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 날 수 있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