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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 재학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
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빰의 영
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
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
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
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
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
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
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 송재학 시인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과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198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이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1986년 계간 << 세계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첫시집 <<얼음시집>>을 비롯해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진흙얼굴>>,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등의 시집과 산문집 <<풍경의 비밀>과 <<삷과 꿈의 길, 실크로드>>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소월시문학상, 상화시인상, 이상시문학상, 편운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목월문학상, 송수권문학상 등 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