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재분의 마지막을 손님 이야기를 하며 마쳤으니, 이번에도 손님들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가장 대하기 어려운 류의 손님이랄까, 제일 꺼리는 방문객들은 당연히 어린 아이 내지 아기들이다. 어째서인지 가게에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은 아이들보단 물건에 더 신경을 쓰고, 그렇게 방치되다 보니 제멋대로 가게 안을 휘젓고 돌아다니거나, 심하면 물건을 건드려보고 망가뜨리는 어린이들도 심심찮게 생긴다 (그리고 그럴 때면 물론 뒷수습은 나를 비롯한 직원들의 몫이다).
가끔 사이렌을 방불케 하는 익룡 소리를 내며 우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부모도 아닌 내가 볼기짝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보통은 이걸 사달라, 저걸 사달라 떼를 쓰다가 부모가 들어주지 않으니 우는 경우인데, 마구 울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거기에 꿈쩍도 않는 절대 다수의 부모들이 더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도 직원에게 거듭 사과만 할 뿐, 결코 아이의 고집은 들어주지 않는다. 왠지 보고 있자면 통쾌해진다.
이따금씩 아이의 생짜에 못 이겨 결국 물건을 계산대로 들고 와선, 아이가 한눈을 파는 틈을 타 슬며시 ‘이건 사지 않겠다’고 내게 속삭이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그럴 때면 난 알았다는 공모자의 미소를 씨익 지으며 바코드를 찍는 척 하면서 치워버린다. 하지만 꼬마들이란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열에 여덟은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봉지 안에 없는 걸 깨닫고 엄마를 마구 잡아당기며 울어제끼기 일쑤다. 그럴 때면 엄마들은 부리나케 계산이 끝난 봉투를 들고 가게에서 사라진다. 참 측은하기까지 하다. 손을 흔들어주고 싶을 만큼.
그 다음으로 어려운 손님이라면, 웃지 않는 손님일 것이다. 웃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으면 더더욱. 모든 손님을 대할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걸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물건만 척 올려놓으면 내 미소도 싹 사라진다. 바코드를 스캔하고 돈을 받은 후 물건을 넘겨주는 동안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렇게 차갑게 맞대응을 한다고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하는 손님들은 없었지만 - 새삼 한국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처럼 좋건 싫건 웃어야 하는 근무 조건이었다면 난 금방 미쳐버렸을 것이다 - 직원도 무례한 손님에게 억지로 친절하게 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직원의 친절을 위해 가게에 오는 게 아니라 물건을 사러 오는 거니까. 상냥한 접객은 어디까지나 손님 유치를 위한 수단이지, 필수적인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대화도 뭣도 없이 그냥 물건만 사고 나와도 목적은 달성했으니 상관 없지 않겠는가. 친절은 공짜가 아니지만 거기에 돈 대신 똑같이 미소와 인사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직원들의 친절은 고용주가 대가를 지불해주니까).
그 외엔 당연히 무례한 손님,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애꿎은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가게 욕을 하는 손님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나 싫어할테니 이하생략.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다행히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대인 기술이 제로에 가까운 내게는 그야말로 천우신조일 만큼. 상사들도, 동기 직원들도 모두. 정말 드문 일이다. 타인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편하기에 필요 이상의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지만, 그래서 그 사람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 제일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듯, 나의 직장과 일은 매우 피곤하면서도 다이나믹하고, 힘들지만 즐겁다. 내일도 열심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