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이야기 2
충청도 서산 땅에 학문과 덕이 높은 선비 이생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마루에 앉아 있는데 관리 차림의 한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죽은 친구였다. 이생이 친구를 마루에 오르게 하여 그간의 안부를 물으니 저승에서 두역관장(마마 병을 다스리는 벼슬)이란 벼슬을 얻어 이승에 왔다가 호남 땅으로 가던 길에 친구를 보기 위하여 왔다고 했다. 서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이생의 친구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다 하고 길을 떠났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겨울이 되자 이생에게 친구인 마마 귀신이 다시 찾아왔다. 싣고 온 짐이 많고 데리고 온 아이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중 한 아이가 이생의 눈에 띄었다. 생김새가 남다른 게 앞으로 크게 될 인상이었다. 그런데 지고 있는 짐이 무척 무거운지 몹시 힘들어했다. 이생이 저 아이는 뉘 집 자식인데 저렇게 힘들어하느냐고 묻자 친구가 호남 김 씨 댁 아이인데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잡아간다고 말했다. 아이는 삼대 과부의 외아들로 집안 형편도 어렵지 않고 친구인 마마 귀신이 병을 약하게 주어서 열이 날 때부터 마마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그리 심하지 않게 병이 진행되었다. 아이의 집은 신에게 바치는 예물도 풍성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받은 예물을 남김없이 저승으로 가져가야 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짐 실을 말이 없고 짐을 짊어질 만한 장정도 없어 부득이 아이를 짐꾼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거였다.
이생이 이 말을 듣고 마마 귀신에게 말 한 필을 줄 테니 그 말에 짐을 싣고 대신 아이는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이생이 마구간에서 말을 끌고 나오는 순간 말이 픽 쓰러지며 죽었고 마마 귀신은 아이가 지고 있던 짐들을 말에게 옮겨 싣고는 아이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생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몇 달이 지난 후 이생이 마루에 앉아 있는데 웬 가마가 대문으로 들어왔다. 가마에서 어떤 여인이 내려 자신의 아이가 이생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부터 귀댁에 모든 걸 바치고 맡기고자 아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였다. 아이가 마마를 무사히 치르고 마마 신을 보내드렸으나 갑자기 숨이 막혀 죽어서 김 씨의 대가 끊겼다 애통해하며 초빈(시신을 임시로 바깥에 두고 그 위를 풀이나 이엉 등을 덮어 두는 것)을 만들었는데 며칠 뒤 연기가 나서 초빈을 급히 헤쳐 보니 묶었던 매(시신을 묶는 베 헝겊)가 풀리고 아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이가 마마 귀신이 이생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해 알게 되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하인과 재산을 모두 가져왔으니 이제부터 이생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하였다.
이생은 부인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개울 건너에 집 하나를 마련하여 살게 하고 아이의 성을 이 씨로 바꾸게 하였다. 그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여 지금은 아주 큰 집안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동암 이 씨에는 천좌와 천우(개울의 왼편과 오른편) 두 파가 있다고 한다.
- 청구야담(靑丘野談. 편찬자 미상의 민담(民譚)과 야담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조선 말기의 한문 야담집. 18~19세기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으로, 결구(結構)와 수법이 절묘하여 당시의 언어, 풍속, 관습 등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몇 종의 사본(寫本)이 전하며, 이본(異本)에 따라 수록된 편수와 체제가 각기 다르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