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랑자로 떠돌 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내가 방랑자로 떠돌 때

0 개 1,190 수필기행

■ 장 기오 


젊었을 때 나는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한 달에 20일 이상을 보따리를 싸들고 이 도시, 저 항구로 배회했다. 내가 그렇게 떠돌면서 느낀 절경(絶景)이란 마음에 있지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망의 기억이 생생한 어느 공원, 떠나 버린 애인의 뒷모습이 생각나는 어느 해변의 쓸쓸한 일몰, 어머니의 꽃상여가 나가던 봄꽃의 동산, 그 허무한 낙화, 이렇듯 마음에 있는 곳에 정감이 담긴다.


천하의 절경일지라도 내 추억이, 내 가슴이 담기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또 의미가 있는 곳은 기존의 의미로 인해 가슴에 닿는다.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고 노래했기에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격스러워한다. 난정(蘭亭)도 우군(右軍, 왕휘지)이 없었다면 무성한 숲, 긴 대나무 밭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어느 해 봄, 목포 근방 항구였던가?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조그마한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벚꽃은 꽃비로 흩어져 내리고 햇볕은 따뜻해 나는 꿈을 꾸듯 몽롱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평화롭고 아름답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누구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시(詩)라도 쓰고 싶었다. 아니 누구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그때 나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부둣가에 앉아 따뜻한 햇볕에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거기가 어딘지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데쟈뷰(deja-vu)다. 가끔 꿈속에서 그런 풍경들이 보인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분명 가 보았던 기억이 나던 곳인데 말이다.


나는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잊지 못할 장소가 몇 군데 있다. 채석강의 석양이 그렇다. 지금은 방파제가 생기고 그 주변으로 포장마차들이 들어서 많이 망가졌지만 그 옛날의 채석강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채석강에는 바다로 향해 많은 동굴들이 나 있다. 대패로 깍은 듯한 바위를 겹겹이 쌓아 형성된 절벽의 기이함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동굴에서 지는 해를 보면 가히 절경이라 할만하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줌렌즈로 당겨 석양을 찍을라치면 동굴 입구를 꽉 채운 해가 이글거리며 바다 위로 ‘첨벙’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들고 나는 물길로 인해 조금만 물때를 놓쳐도 물길에 갇히고 말기 때문에 익사할 위험도 많다. 지금은 동굴 속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망을 쳐 놓아 그 비경을 감상할 수가 없지만 <산곡의 백합> 이라는 작품을 촬영할 때 나는 그 석양에 반해 시간을 놓쳐 익사할 뻔한 일이 있어 기억이 새로운 장소다.


108dc9f4e181b79d53b90c7fe67b4676_1645475826_3954.png
 

일출이 아름다운 곳은 동해 추암이 단연 으뜸이다. 추암의 일출은 그냥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다. 추암은 바다 가운데 바위군(群)이 있다. 이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태양과는 다른 장엄미가 있다.


이 봄에는 섬진강가로 갈 일이다. 매화마을에 들러 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서 술이라도 한잔 마셔 보라. 세상 근심은 다 사라지고 신선이 될 것이다. 수십만 평에 조성된 매화나무 어디에 앉아도 흥취는 그만 그만일 것이다. 연인과 함께한다면 더욱 좋으리라.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시라도 한 수 읊어 본다면 시인이 따로 있을 소냐. 그대들이 시인일 것이다.


고즈넉한 절로는 주왕산의 주왕암이 으뜸이고 그 위로 자리잡은 학소대도 절경이다. 그러나 나만 알고 남들이 모르는 절경이 하나 있다. 두타산의 두타산성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늦여름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을 때였다.


비안개가 산허리를 감돌아 산 전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지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기암 절벽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절벽 위로는 겹겹의 바위들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이 전신을 훑으면서 머리끝이 곤두섰다.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이처럼 우뚝한 산은 많지 않다. 물론 금강산이나 설악산 같은 유명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서 이런 절경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산은 드물다. 그러나 올라가는 코스는 난코스다. 로프를 잡고 한 시간은 올라가야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동진강의 갯벌, 만경강변의 갈대숲, 소쇄원의 바람 소리와 대나무 향기에 잠시 사색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에 가서는 부족한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을 채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절경들이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닭볶음탕 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어떤 여행가가 추천을 하면 금세 사람들이 몰려 술판과 노래판이 벌어지는 등 단숨에 세속화되어 버린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심각한 회의가 생겼을 때나 삶이 고통스럽고 생이 지루하고 하루하루가 권태로울 때도 사람들은 바람처럼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서 어떤 희망을 찾고 구원을 얻는다.


신혼여행도 그렇다.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고 어떤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행은 삶의 구원행위다. 그 장소가 비록 하찮은 장소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어떤 구원을 얻었다면 그곳은 그의 인생에서 절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이 닿지 않으면 절경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 없는 곳의 풍경은 그냥 스쳐 간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절은 절, 경치는 경치, 도토리묵에 술판이나 벌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마음 있는 곳에 추억이 생기고 뜻이 생길 것이다. 여행은 좋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곳을 마음에 담는 행위다. 그래야 아름다워진다.


■ 장 기오(전 KBS 대PD, 수필가)  
108dc9f4e181b79d53b90c7fe67b4676_1645475874_2005.png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61 | 3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된 생애를 담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의 작가 김학철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고 김학철(1916~2001)의 인생을 다룬…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3 | 3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미국에 얼굴 없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아이입니다. 태어난 지 2년 반 쯤 되었는데 얼굴이 없답니다…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3 | 3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놀란 일을더 여유롭게 견뎌내지 못해부끄럽습니다당신 손 놓치지 않을나를 뽑아 견디게 하셨으니슬펐지만 아름다움이었습니다기차역에서…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7 | 3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했다. 차가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저자인 송대 원오 극근(圓悟 克勤:1063~1135) 선사의 다선일미…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61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신 고객분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욕실은 단순히 깨끗하고 예쁘게 마감하는 것을 넘어서서, 안 보이는 곳…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모든 애인들이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2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돛,큰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통나무 배,긴 나무를 균형지게 본체 좌 우측으로 동여맨 카누에 몸을 싣고,가족과 친지들을 뒤로…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5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모이면 노후의 삶을 어디에서 살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했었지요.서울에서 나고자라 나이먹은 사람들끼리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막연한…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3 | 5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은 요즘, 뉴질랜드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전문직에 대한 직업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의대 치대 약대 등의 …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5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33년을 일 하다가 은퇴한 지 6년이 되어간다. 어느 사이 고희(古稀)에 들었고 앞만 보고 가려하는데, 원고 청탁을 받아 잠…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54 | 5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의 진액과 관계된다. 그래서 진액이 고갈되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기계의 그리스나 윤활류가 부…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8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갖춘 식품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아닌 가공하지 않은 원료 상태로 섭취해도 사람에게 필요한 영…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4 | 10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수시전형은 11월 현재 진행중이며 내년 1월 정시전형을 앞두고 있다.2025학년도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변화가 …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4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불가능 속에서도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애쓰는 사람이 좋고다른 사람을 위해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훌륭한 번역을 통해 세계의 독자들이 비로소 한국문학이라는 두꺼운 책의 한 …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재주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타자하는 수고를 벗어나게 되었다. 말하면 그걸 글자로 바꾸어 주고(STT; Speech t…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3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영덕 장육사 대웅전 사자와 코끼리사찰 곳곳에서 만나는 동물들은절을 아름답게 하고 이야기를 담는다.아이가 처음 세상을 배울 …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5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 훈화 중 “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에 대한 내용이 생각난다. 4촌이 논을 사면 기뻐할 일인데 왜 배가 아파야…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나타나는 정신적 증상입니다. 이 발작은 보통 예기치 않게 발생하며, 몇 분 안에 극심한 공포나 불안이 솟구치는 특징이 있습니…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6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사교육의 천국입니다. 대형입시학원은 말할것도 없고 입시학원 입학을 위한 또 다른 입시학원, 취업…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4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손상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외부 세계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을 자주 접하는 신체 기관들이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손상…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7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분 글을 인용하면서 참 좋아했는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환하게 사진을 찍었더군요. 열두 번 예정된 항암…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당뇨병(糖尿病), 고지혈증(高脂血症)을 모두 앓고 있는 복합 만성질환자이다. 이 세 가지 질병은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며, 나이…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4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그 중 의료개혁을 추진하며 2024년 2월 초 20여년동안 정원 변화 없이 한…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10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강을 지배하고, 장건강은 뇌에 바로 영향을 준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이 하나의 축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