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략과 후진성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러시아: 침략과 후진성

0 개 1,062 명사칼럼

‘침략’의 의도들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단순하고, 분석하기 쉬운 것은 ‘자원 확보’나 ‘전략적 요충지’ 확보형 침략들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략은 전자, 2001-21년 동안의아프간 점령 시도는 후자에 각각 속합니다. 바로 보면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컨대 일제의 1931년 만주 침략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죠. 침략을 군부가 단행한 거고, 상당수 관벌이나 민간 정치인 등은 이 침략에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군부를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군부나 침략에 적극적인 “혁신 관료”들은 만주를 이용해서 일본 중심의 자급자족형 경제 블록을 만들려고 했으며, 그 자원을 이용해서 일본의 (군사용) 중화학 공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만주부터 시작해서 군부 중심의, 자본주의형 계획경제를 실험하려 했으며, 나중에 이 경제 모델을 이용해서 세계 전체의 “나누어먹기” 과정에서 일제의 몫을 최대화하려 했습니다. 

하필이면 일제의 만주 침략이 지금, 이 순간 기억 속에서 뜨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그 침략에 동원된 군사력은 현 러시아 군사력과 비교가 가능한 규모이었기 때문이죠. 1931년 9월에 침략에 이용된 일제의 군사력 규모는 약 16만 명의 병사 정도인데, 이는 대체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의 “작전”에 참여하는 러시아군의 규모와 엇비슷합니다. 현재 작전의 무대가 된 동부 및 중부 우크라이나의 영토 면적도 대체로 중국 동북 삼성과 비교가 가능합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은 1931-2년 당시 마점산 (馬占山) 흑룡성 장군의 저항보다 훨씬 고도화돼 있지만, 지금대로 계속 가고 있다면 그 저항을 제압하는 데에 1931-2년 만주와 엇비슷한 기간 (약 4-5개월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만주 침략은 1933년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로 이어진 것처럼 지금도 러시아는 기존의 국제 질서로부터 본질적으로 ‘이탈’하는 것입니다. 표피적인 ‘유사함’은 이런 부분들부터 시작됩니다. 



한데 그것보다 더 깊이 파고들면 더 많은 구조적 흡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주는 석탄 채광, 그리고 요녕성 안산 (鞍山)의 그 유명한 제철소로 대표되는 철강 산업의 지대이었습니다. 일제는 만주의 석탄, 철석, 비철 등 자원을 손에 넣어 자급자족형 일-선-만 경제 블럭을 만들려 했던 것이죠. 


우크라이나도 중화학 공업에 필요한 ‘자원’들의 보고이며, 사실 이미 고도로 발달된 중공업을 보유하는 나라입니다. 우크라이나 강철 (pig iron) 생산은 세계의 10위 정도고, 러시아의 생산량의 약 40% 정도 됩니다. 그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 (숙련공 등등)만 해도 40만 명 정도 되는 것이죠. 이외에는 우크라이나는 망가니즈, 알류미늄, 심지어 우라늄 등을 생산하는 거고, 그 생산을 러시아의 군수 공업을 포함한 중공업은 상당히 필요로 합니다. 실은 우크라이나 자국 내에서도 예컨대 드니프로시의 유즈마쉬 공장 같은, 미사일 생산까지 가능한 첨단 중공업 시설들이 있습니다. 그 공장들은 거의 다 러시아군의 작전 무대인 동부 및 중부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으며, 그 숙련 인련들은 대부분 구소련(식) 교육을 받아 러어를 (거의) 모어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푸틴의 속셈이라면, 그 자원과 그 시설, 그 인력을 손에 넣어,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을 다시 러시아인으로 “국민화”, 즉 (강압적) “재교육”을 시킨 뒤에 우크라이나까지 포함한 소련식 중공업 복합체를 복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침략’을 사실 ‘이윤’ 차원에서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우크라이나 자원, 공업, 인력 등을 다 손에 넣는다 해도, 러시아 외환 보유고 상당 부분의 구미권 중앙 은행에서의 동결, 외자 기업 철수, 구미권 투자 중단, 그리고 전쟁의 직접적 비용 등을 상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즈니스 플랜’ 차원에서는 침략은 일단 도박에 가깝기도 하고, 부대 비용이 많아 제 정신이 있는 ‘사업가’라면 피하는 편은 좋습니다. 


즉, 여기에는 단순한 단기적 ‘비즈니스’ 이상의 부분들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저는, 이번 침략을 -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과 마찬가지로 - ‘발전 궤도’ 선택의 차원에서 연구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대공황 시절의 일본처럼, 오늘날 러시아도 ‘열강’의 축에 들지만, 상대적으로 ‘후진적’ 열강이죠. 러시아는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예컨데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니면 華爲나 小米같은 최첨단 아이티 기업 하나 키우지 못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대 은행의 랭킹에서는 러시아의 최대 국유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60위밖에 되지 못합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데아보다 더 작은 규모인 거죠. 글러벌 경제 속에서는 러시아는 아무리 시도해봐도 미국이나 중국 내지 EU를 상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일단 군사력을 이용해 완결된 영토적 제국을 건설한 뒤에 서방과의 경쟁으로부터 차단된, 즉 보호 받는 경제 영토 안에서 은행 자본과 IT 자본 등을 키우려는 게 러시아쪽의 장기적 계획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한 국유” 대신에 “국가 주도의 시장 경제”긴 하지만, 이 “블럭 경제” 건설 계획은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총동원 전쟁 시절의 일본도 그랬고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도 그랬지만, 이런 “자급자족형 블럭 경제” 건설은 보통 엄청난 대민 탄압, 국가적 폭압을 수반했습니다. 과연 푸틴의 새로운 “완결된 제국” 안에서는 힘 없는 피착취 대중과 재야 인사, 정권의 반대자, 비판적 지식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 정말 걱정됩니다....


■ 박 노자


ae9e06a682607db975c7aab2daff5a4c_1649810888_563.png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댓글 0 | 조회 261 | 3일전
▲ 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된 생애를 담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의 작가 김학철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고 김학철(1916~2001)의 인생을 다룬… 더보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댓글 0 | 조회 153 | 3일전
언젠가 TV에선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미국에 얼굴 없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아이입니다. 태어난 지 2년 반 쯤 되었는데 얼굴이 없답니다… 더보기

11월의 기도

댓글 0 | 조회 133 | 3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주님!올해 겪은 놀란 일을더 여유롭게 견뎌내지 못해부끄럽습니다당신 손 놓치지 않을나를 뽑아 견디게 하셨으니슬펐지만 아름다움이었습니다기차역에서… 더보기

대자유의 맛, 다선일미의 차 명상

댓글 0 | 조회 117 | 3일전
예로부터 스님들은 차를 마시며 수행을 했다. 차가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저자인 송대 원오 극근(圓悟 克勤:1063~1135) 선사의 다선일미… 더보기

욕실 리노가 망설여지는 이유

댓글 0 | 조회 560 | 3일전
최근 몇 주 동안 잘못된 욕실 설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신 고객분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욕실은 단순히 깨끗하고 예쁘게 마감하는 것을 넘어서서, 안 보이는 곳… 더보기

사랑

댓글 0 | 조회 98 | 3일전
시인 정 호승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모든 애인들이 … 더보기

아오테아로아 (멀고 긴 흰구름의 나라)

댓글 0 | 조회 182 | 3일전
식물 줄기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삼각 돛,큰 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통나무 배,긴 나무를 균형지게 본체 좌 우측으로 동여맨 카누에 몸을 싣고,가족과 친지들을 뒤로…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182 | 5일전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모이면 노후의 삶을 어디에서 살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했었지요.서울에서 나고자라 나이먹은 사람들끼리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막연한… 더보기

지피지기 백전백승! 뉴질랜드/호주 의대 제대로 도전하기

댓글 0 | 조회 783 | 5일전
의대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심상치 않은 요즘, 뉴질랜드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전문직에 대한 직업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의대 치대 약대 등의 … 더보기

고요할 수록 밝아지는 것들

댓글 0 | 조회 161 | 5일전
경남대학교에서 86년부터 18년까지, 33년을 일 하다가 은퇴한 지 6년이 되어간다. 어느 사이 고희(古稀)에 들었고 앞만 보고 가려하는데, 원고 청탁을 받아 잠… 더보기

35. 몸의 진액 부족이 가져다 준 소화 불량과 다양한 문제들

댓글 0 | 조회 454 | 5일전
몸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물,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의 진액과 관계된다. 그래서 진액이 고갈되면 다양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기계의 그리스나 윤활류가 부… 더보기

(A2+) 프리미엄 우유가 온다

댓글 0 | 조회 1,305 | 8일전
완전식품(完全食品)이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갖춘 식품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아닌 가공하지 않은 원료 상태로 섭취해도 사람에게 필요한 영…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 2

댓글 0 | 조회 324 | 10일전
11월 14일 2025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수시전형은 11월 현재 진행중이며 내년 1월 정시전형을 앞두고 있다.2025학년도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변화가 … 더보기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댓글 0 | 조회 344 | 2024.11.06
시인 헨리 나우헨그리우면 그립다고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불가능 속에서도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애쓰는 사람이 좋고다른 사람을 위해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 더보기

작가 한강의 노고를 기리며

댓글 0 | 조회 367 | 2024.11.06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훌륭한 번역을 통해 세계의 독자들이 비로소 한국문학이라는 두꺼운 책의 한 … 더보기

받아 적고 읽어 주고

댓글 0 | 조회 167 | 2024.11.06
나는 타자(打字)가 서툴고 느리다. 재주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타자하는 수고를 벗어나게 되었다. 말하면 그걸 글자로 바꾸어 주고(STT; Speech t… 더보기

달이와 함께 만난 동물 부처들

댓글 0 | 조회 143 | 2024.11.06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용과 사슴, 영덕 장육사 대웅전 사자와 코끼리사찰 곳곳에서 만나는 동물들은절을 아름답게 하고 이야기를 담는다.아이가 처음 세상을 배울 … 더보기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댓글 0 | 조회 425 | 2024.11.06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 훈화 중 “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에 대한 내용이 생각난다. 4촌이 논을 사면 기뻐할 일인데 왜 배가 아파야… 더보기

Panic Attack

댓글 0 | 조회 495 | 2024.11.05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감이 나타나는 정신적 증상입니다. 이 발작은 보통 예기치 않게 발생하며, 몇 분 안에 극심한 공포나 불안이 솟구치는 특징이 있습니… 더보기

New NCEA

댓글 0 | 조회 436 | 2024.11.05
대부분의 학부모님께서 이미 알고계시듯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사교육의 천국입니다. 대형입시학원은 말할것도 없고 입시학원 입학을 위한 또 다른 입시학원, 취업… 더보기

34. 소화기관의 병은 이런 순서로 치료해 보세요

댓글 0 | 조회 324 | 2024.11.05
몸의 각종 부위 중에 피부와 점막들은 손상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외부 세계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을 자주 접하는 신체 기관들이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손상… 더보기

아플수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댓글 0 | 조회 237 | 2024.11.05
장영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제가 이 분 글을 인용하면서 참 좋아했는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환하게 사진을 찍었더군요. 열두 번 예정된 항암… 더보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댓글 0 | 조회 883 | 2024.11.02
한국인 232만명이 고혈압(高血壓), 당뇨병(糖尿病), 고지혈증(高脂血症)을 모두 앓고 있는 복합 만성질환자이다. 이 세 가지 질병은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며, 나이… 더보기

한국의대 입시 어디로 갈 것인가? 파트1

댓글 0 | 조회 494 | 2024.10.31
대한민국은 4대 개혁 의료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그 중 의료개혁을 추진하며 2024년 2월 초 20여년동안 정원 변화 없이 한… 더보기

33.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의 축

댓글 0 | 조회 410 | 2024.10.30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장건강을 지배하고, 장건강은 뇌에 바로 영향을 준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음식, 식습관, 장건강, 심성 그리고 영성이 하나의 축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