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세상, 별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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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세상, 별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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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의 위대함을 알았다는 한 무명 소설가는 인생의 호시절을 부모님 돕기와 시집살이, 육아로 다 보내고 이제 골병만 남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3식이’ 남편을 쫓아 내버리지도 못하고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단다. 허리가 아파 글쓰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소설에 피치를 올리는데 보고 있자니 안타깝다. 무얼 어찌 거들까 싶다. 간절한 소망과 야무진 각오로 작품이 나올 것 같지만 어디 즐기면서 하는 것만 하겠는가? 그 사람에게 걸어가야 오래간다고 말해드렸다. 아픈데 달리면 어찌 되겠는가? 강박도 스트레스니 가능하면 여유를 가지고 즐겨보시라 했다. 아픈데 그게 쉬울까? 애처롭다. 안타깝다. 나는 내가 소설가나 시인 또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정하지 않았으니 스트레스는 없다. 그래도 꾸준하게 일기라도 빠뜨리지 않고 해보자고 적고 있다.


사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는 가사와 육아에 정신이 없었고 글재주가 있어서 소설을 써 보려 했는데 그걸 마음 놓고 써 볼 형편이 아니었는데다가 며느리를 보니 손주까지 생겨서 시어미와 할머니로서 또 바쁘다는 것이다. 당신이 며느리였을 때와는 달리 이제 며느리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세상이라 은퇴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영감님만 그간의 시집살이가 미워 구박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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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페북을 알게 되고 소설을 써서 올리니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아이디어를 주어서 고맙다는 글을 올렸는데 친구의 친구로 보게 되어 나도 한마디 거드는 처지가 되었다. 어느 날 힘든 일을 한 며느리에게 온천을 가자고 호의를 베풀었더니 머뭇거리며 답을 안 하더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자기도 시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며느리는 결코 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차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 나는 목욕을 하고 싶지 않아 근처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테니 너는 온천욕을 하고 나와서 함께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하니 좋아하더란다.


그 글을 보고 배려심 깊은 시어머니에게 무얼 도와줄까 하다가 쓰지 않고 몇 번을 연장한 스타벅스 쿠폰을 쓰라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바코드가 있으니 그거면 커피 두 잔에 부드러운 생크림 카스텔라를 즐길 수 있다. 그 사람이 거북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지만 그 정도야 고맙다고 받아 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사양한단다. 솔직하게 말해서 좋다. 그걸 안 쓰면 도로 내가 쓰면 된다. 그래서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쓰려는데 글이 안 들어간다. 그 사이 차단을 한 모양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차단해 버렸다. 사람들 많다.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이는 사람과는 더 할 필요가 없다. 내 페북에는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100명 정도는 된다. 다 좋아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아닌 줄을 안다. 나도 그냥 눈에 익은 사람들의 글은 무심코도 누르고 좋아서도 누른다. 그냥 우리들이 알고 지낸다는 표시이다. 간혹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공개된 공간에서 무얼 어쩌겠는가? 아는 사람에게는 안부도 인사도 한다. 


오늘 아는 사람의 페북에 글이 올라 좋아요를 누르는데 튕긴다. 댓글을 달아 보았더니 빨간 느낌표가 붙으며 거부당했단다. 그림으로 잡아 두었다. 페북이 잘못한 것인지 그 사람이 막은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싸게 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허 참. 다정도 병이런가 싶다. 내가 외로운가보다. 먼 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가 들리니 말이다.



적절하게라는 말이 참으로 부적절하다는 말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하게 하는 것일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 하고 경이원지(敬而遠之)라는 말도 있다. 쉽게 근접해 오는 사람은 또 쉽게 떠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적절함과 어중간함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을 두고서 리듬보다 박자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 리듬도 중요하겠지만 박자, 그게 엇박자 나면 안 되는 것이구나. 


송강호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영화 ‘브로커’를 시사회에서 보았다. 미리 듣고 가면 김이 샐까봐 챙겨보지 않았다. ‘브로커’라기에 막연히 폭력과 관련된 액션인줄로 알았다. 보는 내내 어떤 반전을 기대했지만 밋밋하게 진행되어 아쉬웠다. 그래서 좋은 작품인지는 몰라도 내 같으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첫 장면에서 과거의 어느 현장을 소환하고 그 이야기를 다 전개하고는 마지막에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와 정리하는 것이 많다. ‘브로커’는 이런 저런 이유로 안 되는 세탁소보다는 어차피 내다 버리는 아기를 주워서 돈 많이 받고 파는데 재미를 붙인,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게다가 입양이 필요한 사람들로부터는 천사대접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시작된 시사회는 감독과 배우들이 나와서 한마디씩을 했는데 일본 사람이 감독인 줄은 통역을 보고서야 알았다. 짧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나니 지하철이 끊어졌다. 집 쪽으로 간다는 버스를 타고 보니 신촌을 지난다. 그쪽 길이 아니다. 갈아타야 한다. 내려서 보니 12시 반이 넘었고 집 가까운 곳으로 가는 버스는 온다해도 내려서 20분을 걸어야 한단다. 버스 정류소 안내판을 들여다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거들어 준다. 아저씨 어디로 가세요? 그녀가 택시를 불렀던 모양이다. 늦은 밤에 둘러서 나를 내려주고 가겠단다. 이런 고마울 데가? 차 안에서 알고 보니 그녀도 그 영화를 보고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다 내가 기사님께 묻고 내리니 따라 내렸던 것이다. 택시비를 내가 내겠다고 해도 안 된단다. 혹시 연락하면 갚을 수 있을까 하여 명함 한 장을 주고 내렸다. 


나처럼 바보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그리 쓸쓸하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무얼 도와줄까 하고 거들어 준다. 잘 못 알아들으면 따라오라고 하고는 앞서서 알려주기도 한다. 주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과잉한 친절이 맞다. 가끔은 경계를 받거나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도 그게 마음 편하다. 그러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를 닮은 한 ‘과잉친절’을 만난 것이다. 자그마한 남의 친절도 싫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울 때 도움을 받고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돕는 사람들로 넘쳐나면 좋겠다. 의심을 받아도 차단을 당해도, 자정을 넘긴 늦은 밤에 낯선 남자를 태워주고 둘러서 가는 아가씨를 보면 용기를 내어야 겠다. 또 누군가가 어디선가 그녀를 도와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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