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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운 스님과 함께 만드는 제철 사찰음식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경운 스님은 스스로를 ‘음식 수행자’라 부른다. 좋은 재료로, 바르게 만들어 여러 사람과 나누는 일은, ‘음식은 곧 양약(良藥)’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과 마음을 만든다’는 사찰음식에 깃든 정신을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을 울린 한 마디, ‘음식은 생명입니다’
경운 스님은 한때 건강을 잃었다. 8년 전, 운문사 승가대학 3학년을 마칠 즈음이었다. 기침이 한 달 이상 계속되자 ‘감기가 오래 간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고, 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는 이미 림프를 타고 흉부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급히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세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 기간도 1년이 넘게 걸렸다.
항암 주사를 맞고 돌아오면 한동안 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그저 기도하고, 공부하며 그 힘겨운 시간을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사찰음식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을 만났다.
“우연히, 선재 스님이 스님들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사찰음식 연수’를 진행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체력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음식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의를 신청했어요. 그런데 첫날, 큰 깨달음이 왔어요. ‘음식은 생명’이라는 선재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서 박히더라고요.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과 마음을 만들고, 출가수행자로서 건강한 육체가 없이는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이었죠. 연수 기간 동안 열심히 사찰음식의 정신과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배웠고, 수행 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덕분에 암도 완치 판정을 받았고, 건강도 좋아졌어요.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받고 있습니다.”
제철 재료 풍성한 충남 서산에서 시작된 ‘음식 수행’
그는 13년 전,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아홉에 울산 석남사로 출가했다. 이후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은 충남 서산의 작은 절 ‘광천사’에서 지낸다. 전혀 연고가 없던 이곳으로 오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승가대학 마지막 학년을 남기고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당시 운문사 주지였던 일진 스님은 그를 서울 양지암에 머물게 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운문사가 있는 청도에서 서울의 병원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지암은 일진 스님의 속가 언니인, 성업 스님의 사찰이다.
“일진 스님이 ‘우리 학인스님 좀 살려달라’고 성업 스님에게 부탁하셨대요. 성업 스님은 일면식도 없던, 게다가 위중한 환자였던 저를 흔쾌히 받아주고, 돌봐 주셨어요. 항암치료가 끝나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공기 좋은 곳에서 몸을 돌보며 수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광천사를 소개해 주셨어요. 함께 지내는 동안, 면역력이 떨어진 저를 위해 과일도 익혀서 줄 정도로 정성을 쏟으셨던 성업 스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평생 열심히 수행하면서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광천사로 온 후 그는 직접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작은 장독대에는 올해 담근 것부터 길게는 7~8년, 짧게는 3~4년 묵은 된장과 간장·고추장이 담긴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는 “사찰음식의 기본인 된장, 고추장, 간장을 내 손으로 만들게 되면서 사찰음식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고 익힐 수 있었다.”며 “나만의 사찰음식 공간이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농사짓는 분들이 많으니 제철 재료를 구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요. 한번은 길을 지나다 표고버섯 농장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길래 번호를 보고 전화했더니 저희 절에서 가까운 곳이더라고요. 사찰음식에서는 버섯을 많이 쓰는데, 싱싱한 버섯을 바로 옆에서 구할 수 있어 좋아요. 텃밭에서 키운 상추, 깻잎, 고추 같은 채소들을 갖다 주는 분들도 많고요. 그걸로 음식을 만들어 다 같이 둘러앉아 먹어요. 자연스럽게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법을 일깨우다
이처럼 사찰음식을 매개로 불자들과 교류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서산에서 지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로 향한다. 불교문화사업단 사찰 음식 교육관인 ‘향적세계’에서 강의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절을 나설 때 설렐 정도로 강의하는 게 재미있어요. 보통 몸이 안 좋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힐링이 될 만한 것들을 찾는다고 하잖아요. 저에게는 이 사찰음식 강의가 큰 위안이고 행복입니다.”
그는 조리법 외에도 그 음식에 담긴 사찰음식의 정신을 알려주기 위해 경전에 나오는 구절이나 부처님 말씀을 종종 인용한다. 그만큼 강의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사찰음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한다.
“요즘 텔레비전에 넘쳐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맛이 주는 쾌감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음식을 맛의 추구 대상으로 생각할수록 놓치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저는 밥 먹는 걸 ‘약처럼 먹는다’고 이야기해요. 하루 세 번 때에 맞추어, 소박한 밥상이지만, 재료를 내어준 농부와 자연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챙겨 먹어요. 사찰음식을 통해 음식에 대한 예의와 감사함을 일깨워주는 것도 음식 수행자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전문적인 음식 수행을 위해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건강학과에 입학, 새로운 공부도 시작했다.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영양성분과 이것이 몸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끔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평소 이론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마침 그 학과에 제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들이 많았어요. 게다가 온라인 과정이라 선뜻 등록했는데, 교과 과정 중에 한의학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어 어렵더라고요. 결국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계속 반복해 들었죠.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내년 2월이면 졸업입니다. 이미 졸업시험도 합격했고요. 쉽지 않은 공부였는데, 무사히 잘 마쳐 뿌듯합니다.”
사찰음식을 널리 알리는 일에 기꺼이 힘 보태고 싶어
이밖에도 그는 스님들이 만든 비영리법인 ‘마인드푸드협동조합’ 설립에도 참여했다. ‘올바른 식문화와 전통문화 계승, 취약계층 및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인드푸드협동조합은 사찰음식을 매개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지역 주민들에게 사찰음식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서울 성북동 수월암 주지인 혜범 스님을 중심으로, 사찰음식에 관심 있는 스님들이 함께 모였어요.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었고, 조합원 스님은 현재 8명 정도입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사찰음식 강의는 주로 수월암에서 진행하지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봉사는 지역을 가리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경남 거제에 있는, 스님들이 운영하는 지역 아동센터를 다녀왔어요. 아이들에게 건강한 밥상과 관련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음식도 함께 만들고, 밥도 같이 먹었어요. 아이들이 평소 안 먹던 음식도 직접 만드니 잘 먹더라고요.(웃음)”
그는 이러한 형태의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어, 사찰음식을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바른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면, 그 구성원들이 보다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음식은 생명을 존중하는 자연친화적 음식입니다. 또,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 재료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어요. 음식을 단순히 ‘맛있는 것’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좋은 약으로 생각했던 이 훌륭한 불교의 전통을 안내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